특집1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한겨레21

신화에 도전하는‘유아독존'

(사진/지난 6월22일 통일성전건립미사에서 다른 용들과 함께한 이인제 지사. 연대제의를 거부한 이 지사는 끝까지 `나홀로 전략'으로 심판을 받겠다는 각오.)

이인제 지사는 지난 6월20일 밤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린 비주류 예비주 자 회동에 불참했다. 박찬종 고문과 이한동 김덕룡 의원 등 선배들로부터 참석 요청을 받았는데도 가지 않았다. 함께 하기를 은근히 희망했지만 박 고문과 김 의원쪽의 부정적 반응에 부딪혀 끼어들지 못한 이수성 고문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배짱을 단단히 튕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 쨌든 이 지사의 ‘홀로 서기’ 전략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대통령은 한명,소신껏 뛰겠다

이 지사는 이날 불참 배경에 대해 “뭐 딱히 합의할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자꾸 일방적으로 언론 플레이만 하니… 어쨌든 나는 별 관심이 없고 갈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비주류 예비주자 3인이 이날 구축한 이른바 ‘HDRP 3자 연대’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HDRP는 이한동(HD), 김덕룡(DR), 박찬종(P)의 영문 이니셜을 따온 신조어로, 3인이 합쳐 전당대회 2위 득표자에게 표를 몰아주자는 경 선전략이다. 즉 이 지사 입장에서 볼 때 세불리함을 느끼는 이들 3인과 달리 혼자 힘으로도 최소한 1차 투표 2등을 차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비친 셈이다.

그의 자신감은 최근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이해될 법도 하다. 텔레비전 토론이 끝난 직후인 6월14일 일반 국민을 상대로 서울방송과 <한국일보> 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는 김대중 총재의 21.8%에 이어 17.9%로 성큼 도약했다. 여당 주자만 놓고 한 물음에서도 이회창 대표의 22.9%에 이어 22.8%를 차지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 조사에서도 이회창 29.5%, 박찬종 26.3%에 이어 이 지사는 20.3%로 수위권에 들었다. 대의원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6월16일자 <한겨레>에서 이회창 36.6%, 이인제 17.7%, 6월19 일 문화방송 이회창 28.5%, 이인제 11.4%가 나왔고 6월21일자 <조선일보> 에서는 이회창 19.3%, 이인제 8.3% 등 고루 2등을 차지했다.

다른 비주류 주자들을 상대로 한 이 지사의 콧대 세우기는 사실 이보다 1 주일 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박찬종 고문이 “민주화세력끼리 뭉쳐 야 한다”며 김덕룡 이인제, 자신 등 3인의 연대를 강력히 추진하던 무렵 이었다. 박 고문은 이 무렵 “우리 3인이 곧 뜻을 함께 하게 될 것”이라 고 여러 차례 밝혔다. 이들 세 사람은 실제로 계룡산에서 열린 민주산악 회 등반대회에 나란히 참석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3자 연 대’의 성사 가능성에 대한 관측을 낳기도 했다.

이 지사는 그러나 6월16일 기자간담회에서 ‘박찬종-김덕룡-이인제 연대 설’을 묻자 “연대란 말이 뭘 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합종연횡을 한다 는 것이냐. 그렇다면 공동 대통령이 가능하냐. 각자 소명의식을 갖고 뛰 다가 막판에 힘이 부치는 사람이 알아서 사퇴하면서 다른 사람을 지지하 거나 아니면 그냥 들어가거나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박 고 문이 제기한 연대론을 ‘한방에’ 날려버린 것이다.


'흡수대상 아니다' 나홀로 부각

이 지사의 최근 모습은 분명히 여론조사의 상승세에 자신감을 갖고 홀로 서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잘 나가는 마당에 굳이 ‘찌그러 드 는’ 다른 주자 틈에 끼어 남좋은 일 시켜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그의 홀로 서기는 이보다 뿌리가 좀더 깊다. 우선 이 지사는 3월24일 경선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차차기를 겨냥하고 나섰다가 중도포기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여기서 이 지사는 “내 정치 사전에 차차기란 말은 없다. 여러분들은 끝까지 분전하는 나의 모습을 보 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출사표를 던지면서부터 ‘나홀로 끝까지’ 를 유난히 강조한 것이다.

이 지사의 측근들에 따르면 경선 초반전의 ‘나홀로’ 전략은 요즘의 그 것과 달리 자구책 차원이 훨씬 강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래서 채 여물지 않았다는 평가마저 받는 마당에 다른 강자들 주변을 기웃거리는 것으로 비쳤다가는 독립변수가 되지 못하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 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선 초반전부터 이 지사를 둘러싸고는 ‘결국 김덕룡과 합칠 것 이다’ ‘이한동 김덕룡 이인제가 경복고 출신인데 최고 선배 이한동 중 심으로 단일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인제 캠프 사무실 개소식에 참 석한 의원 누구누구는 김덕룡이 배려해서 보내준 사람이다’ 는 등의 뒷 말이 끊이지 않았다. 한결같이 이 지사는 세가 없으니 다른 주자에게 흡 수되리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는 관측들이었다. 이 지사 입장에선 의도적 으로라도 ‘나홀로’를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

이 지사쪽은 나름대로 홀로서기의 정치철학도 정리하고 있다. 캠프 사무 실의 이창우 실장은 “연대니 합종연횡이니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봉건적 발상이자 척결돼야 할 정치개혁 대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자기 영지를 갖고 있는 봉건영주끼리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 만 요즘 정치가 어디 그래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3김시대가 끝 나가는 마당에 상대적 ‘도토리’들인 대선주자들이 아무리 합종연횡해봤 자 지지하는 국민들이 자동적으로 따라오지도 않는다는 설명이다.


혼자 힘으로는 2등 한계 넘을까?

그러나 이 지사쪽의 고민은 역시 이 지사가 전당대회 1차 투표에서 설령 2등을 한다 해도 혼자 힘으로 본선 티켓까지 쥘 수 있겠느냐는 데 모아진 다. 이회창 대세가 계속 유지될 경우 자신이 1등과의 격차가 꽤나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HDRP 연대 불참 등 때문에 빚어진 다른 비 주류 진영과의 서먹함은 2차투표에서의 지원가능성을 더욱 불투명하게 한 상황이다.

이 지사의 홀로서기 전략은 실험적 성격도 강하게 띠고 있다. 그리고 적 어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7월21일 전당대회를 앞둔 당 내 역학관계는 복잡하다. 따라서 그의 실험이 어디까지나 실험으로 그칠 지, 아니면 신화를 탄생시킬지 가늠하기는 아직 조금 이르다. 주의깊게 좀더 지켜볼 일이다.

박창식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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