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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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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민의 손을 잡은 이인제 지사. 이 지사 쪽은 상승세를 국민이 요구하는 변화의 바람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인제 경기지사가 끝없이 ‘뜨고’ 있다. 이 지사는 최근 일반 유권자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나 대의원 대상의 각종 조사 결과 다른 쟁쟁한 선배 주자들을 제치고 이회창 대표에 이어 2위를 달리는 등 ‘깜짝 놀랄 만한 ’ 정도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이 지사는 이제 다른 선배들을 제 치고 선두를 달리는 이 대표의 유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선배주자들은 반대로 이 대표와의 경쟁은 커녕 이 지사를 따라잡는데도 힘겨운 형편이 다.
<한겨레>의 6월16일자 대의원 대상 조사에서는 이회창 대표 36.6%에 이어 이 지사 17.7%, 이수성 고문 14.9%, 박찬종 고문 9.0% 순으로 이 지사가 2위로 나타났다. 6월 21일자 <조선일보>의 대의원 상대 여론조사에서도 이 지사는 이회창 대표의 19.3%에 이어 8.3%로 2위를 차지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표 누르기도
이 지사는 일반유권자 상대의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심지어 이 대표를 누 르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시사월간지 <윈>이 6월13일 실시한 유권자 9백 명 상대의 조사에서는 박찬종 고문 26.4%, 이 지사 18.7%, 이 대표 17.7% 로 나타났다.
지난 3월24일 당내 경선 출마선언 당시 소위 8룡 가운데 꼴찌에 머물렀던 지지도와 당 안팎의 냉대를 감안할 때 대단한 약진이다. 이러한 약진에 힘입어 이 지사에 대한 당내 인식은 불과 3달만에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그를 ‘차차기용' 주자일 뿐이라는 주장은 쑥 들어갔다. 오히려 민주계 안에서는 이수성 고문 대신 이인제 지사를 차라리 밀자는 ‘이인제 대안 론’이 힘을 얻어가는 형편이다.
사실 최대 다수파인 정발협이 그를 지원하면 그의 대선후보 가능성은 매 우 높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정발협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수성 고 문이 한자리 숫자의 지지도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그를 지지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민주계 의원 사이에서는 차라리 이 지사를 내세우자 는 주장이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지사를 지지하는 김학원 의원도 “정발협의 분위기가 최근에 완전히 달라졌다” 며 “이 지사 지지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형우 고문계도 이 지사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다. 지난 6월 21일에는 최 고문계의 원외 지원그룹인 정동포럼이 이 지사를 초청해 토론회를 가졌으 며, 23일에는 최 고문의 자문교수팀이 이 지사 진영에 공식 합류했다.
이 지사는 이제 신한국당 경선주자들에게 잠재적인 위협이 아니라 현실적 인 위협으로 부각됐으며, 야권도 이 지사의 급부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야의 대선주자들 모두 이 지사가 몰고올 세대교체의 바람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사의 약진은 물론 그의 개인적인 능력 못지않게 한국정치의 변화와 직결돼있다. 즉, 국민이 원하는 바람에 근접해있고, 그 바람을 적절히 이 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차례의 텔레비전 토론회 이후 인기도가 급 상승했다는 사실로 뒷바침된다.
이제 유력인사들이 밀실 흥정이나 세를 이용한 계보정치 시대는 가고 국 민이 직접 선택하는 국민정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이 지사는 자신의 지지도 상승 이유에 대해 “ 그동안 나를 잘 몰랐던 국민들이 텔레비전 토론회 등을 통해 알게 되고 또 주자간 우열에 대해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동연설회는 제2도약 발판
이 지사가 7월5일부터 시작되는 시도별 합동연설회에 최대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표권이 있는 전체 대의원들을 상대로 벌이는 합동연설회야말로 ‘상품’을 비교 선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는 판단 에서이다. 다른 주자와 다른 차별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킬 경우 2단계 도 약에 성공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결코 차차기 주자가 아니라 바 로 이번에 쓰일 주자임을 대의원들에게 인식시켜 7월21일 경선에서 승리 한다는 당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가 이한동 박찬종 고문과 김덕룡 의원의 ‘3인회동’ 등 ‘반이회창 주 자 연대모임’에 기웃거리지 않고 있는 것도 그의 ‘신세대 정치’와 맥 이 닿아있다.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갖고 국민과 대의원의 선택을 받으 면 되는 것이지 정치적 담합이나 거래를 할 성질이 아니다”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올해 49세의 이 지사는 지금 한국정치의 변화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 다. 이는 이 지사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는 우리 정치문화에 대한 평가일 수 있다. 그를 띄우고 있는 게 바로 변화하는 우리의 정치문화이기 때문 이다. 그는 이 변화에 착안, 능동적으로 이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실천에 옮긴 셈이다.
먼저 그는 3김씨가 수십년간 뿌려놓은 파벌이나 계보 등 패거리에 의존하 지 않았다. 이 지사는 물론 민주계 출신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는 출마 선언 이전이나 그 이후 민주계 큰 형님들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오히려 ‘막내가 건방지게 설친다’는 민주계 중진들의 질시와 냉대만 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오로지 국민과 대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으로 맞섰다.
이와 관련해 그의 ‘솥뚜껑론’은 이제 꽤나 유명해졌다. 즉, “물을 끓 이려면 솥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지 솥뚜껑에 불을 피워서 무슨 소용이 있 느냐”는 것이다. 대선주자들이 국민이나 대의원들이 아니라 의원들이나 지구당위원장을 상대해서 세몰이를 하는 ‘상층부 정치’를 비판한 것이 다.
국회의원 재직 시절 5공 청문회 등으로 장래 촉망은 받았지만, 무명에 가 까웠던 이 지사가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던 것은 95년 10월 김 대통령이 일본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깜짝놀랄 만한 젊은 후보”를 언급하고 난 뒤부터였다. 그의 등장에 보스의 도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셈이 다.
두번째로 그는 한국정치의 최대 고질병인 뿌리깊은 지역주의와도 무관하 게 일정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여당의 전통적인 표밭인 영남권 출신이 아니면서도 티케이(대구 경북)를 연고로 주장하는 이수성 고문이나 피케 이(부산 경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박찬종 고문을 이미 앞질렀 다.
세번째는 서열주의를 파괴했다는 점이다. 그의 정치경력은 재선 의원에 도지사 2년이라는 게 전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치 입문의 은인이자 직계 선배인 김덕룡 의원을 여론 지지도면에서 앞서고 있다. 김 의원이 그동안 계보 관리를 통해 원내외 위원장 40여명의 지지를 받는 소계보 보 스인 데 비해 이 지사는 추종 의원이나 위원장이 거의 없는 혈혈단신이었 던 점을 비교하면 이 지사의 성장은 ‘청출어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김학원 의원은 “이 지사 경험에서 앞으로 젊은 도전자들은 그에게서 용 기와 희망을 얻을 것”이라며 “이제 우리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30대의 윌리엄 헤이그 보수당수와 같은 젊은 정치지도자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후보당락 떠나 한국정치에 새 바람
이 지사의 정치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가 몸담고 있는 정치권에서는 솔직히 낙관론보다 회의론이 더 우세한 게 사 실이다. 지역주의와 연공서열 등의 낡은 기준이 여전히 강고한 힘을 갖고 있다. 대의원들의 지역적 정서는 다른 선택 기준에 앞서며, 중진 의원 등 은 이 지사가 몰고올 세대교체의 파장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사가 신한국당 후보경선에서 성공하건 못하건 일반 국민에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관심은 우리 정치의 변화 가능성에 쏠려있 다. 그것은 탈계보와 탈지역주의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