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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성 큰 기쁨 |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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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문가 김영웅(31)씨는 지금도 ‘베를린의 나무젓가락’을 잊지 못한 다. 지난 91년 대학 3학년 때 그는 홀로 두달간의 일정으로 유럽 배낭여 행을 떠났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해 7월 베를린역에서 그는 건너편 플 랫폼에 선 한국 학생들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학생들은 심드렁했고, 뒤쪽에서 서툰 우리말이 인사를 받았다. 짧 게 깎은 머리에 차범근을 빼닮은 모습의 40대 초반 여인이었다.
70년대 초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와 독일인과 결혼한, 영주 박 벨페르트라 는 이름을 지닌 이 여인은 한사코 사양하는 그의 손을 끌고 집으로 데려 갔다. 일면식도 없는 학생에게 이런 친절을 베푸는 탓에 김씨는 어리둥절 하기조차 했다. 훗날 알고보니 박씨는 한국 학생들을 만나면 늘 이런 식 의 친절을 베풀어왔다. 그는 그날 박씨의 각별한 대접을 받으며 밤새 정 담을 나눴다.
김씨는 며칠간 선배 집에서 묵다가 베를린을 떠나는 날 인사차 박씨의 집 에 들렀다. 박씨는 “이곳을 내집처럼 생각하고 여행길에 아무 때나 들러 달라”며 동생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아쉬워했다. 정중히 사례하고 집을 나서는데, 박씨는 한국산 사발면 5개를 그의 배낭에 넣어주며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다시 홀로 된 김씨는 역에서 프랑크푸르트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박씨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아닌가? 그를 본 박씨는 다짜고짜 “깜 빡했어요” 라는 말만 반복하며 나무젓가락을 내밀었다. 사발면을 주고 젓가락을 주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박씨는 조바심을 일 으키다 4살된 딸과 갓난 아이를 재워두고, 집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의 기 차역까지 달려온 것이다. 젓가락을 전해주며 안도의 표정을 지은 그는 “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났을지도 모른다”며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김씨는 박씨에게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젓가락을 붙들고 한동안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 지금까지 내가 사랑이라고 말한 건 다 거짓이었구나.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내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배려를 베풀지 않았다면 사랑이 라 부르지 말자.’ 당시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그는 지금 박씨를 누나라고 부르며 편지를 주고 받는다. 이따금 유럽에 들를 때마다 베를린을 찾아 젓가락이 맺어준 인연을 잇고 있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