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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7월03일 제 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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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삼성 이건희 회장이 지난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비가종식에 참가해 98년 3월 출시될 KPQ 시승을 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자동차광’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에 대한 그의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한다. 또 자동차에 대한 지식 도 웬만한 전문가 뺨칠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95년 2월 미국 LA전략회의에서 자신은 앞으로 반도체, 자동차, 사회공헌 등 3가지 만 챙기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 95년 4월 부산 신호공단 자동차공장 기공식, 96년 11월 완공식에 이어 올 5월 설비가동식에 직접 참석했다. “이 회장은 한번 다녀 온 현장을 다시 찾는 일이 거의 없다. 그가 자동 차공장을 매년 한번씩 찾았다는 건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 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 투자비 5조원 훨씬 넘어설듯
이 회장은 삼성의 승용차사업 진출을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93년 2 월 미국 LA를 시작으로 도쿄,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15차례에 걸쳐 해외 현지회의를 열고 “한국경제 이대로는 안 된다”며 “마누라와 자식을 빼 고는 몽땅 바꿔보자”고 외쳤다. 그는 ‘질경영’ ‘초일류’ ‘신경영’ 등을 주창하면서 ‘이건희 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의도 했든 안했든 이런 이 회장의 이런 행보는 취임 뒤 ‘변화와 개혁’ ‘신 한국 창조’의 기치를 높이 쳐든 김영삼 대통령과 맞아 떨어졌다. 이 회 장은 93년 8월 재벌총수로는 처음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독대를 했고, 그 여세를 몰아 기존 자동차업계의 반대와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뚫고 94 년 12월 승용차사업 인가를 받아냈다.
이 회장이 승용차사업에 뛰어든 지 이제 만 2년6개월. 삼성은 부산 신호 공단 50만평 부지에 연간 생산능력 24만대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고, 지난 5월12일에는 공장 가동식과 함께 시작차에 대한 주행시험까지 마쳤다. 98 년 3월28일에는 닛산의 맥시마를 기본으로 한 첫차 KPQ(배기량 2,000cc와 2,500cc)가 나온다. 삼성은 98년 8만대, 99년 19만대, 2000년 20만대를 생산해 내수시장 및 수출시장에 내놀 계획이다. 동시에 2000년 이전에 2 단계 공장건설에 착수해 2002년까지는 생산규모를 50만대까지 늘릴 계획 이다.
그러나 지금 삼성의 승용차사업에 대한 전망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자동차 구조조정 보고서 파문의 뒤에는 자동차로 인한 ‘삼성의 위 기의식’이 깔려 있다는 지적까지 있다. 기아자동차는 “삼성이 자동차 공급과잉과 수요감소 등을 이유로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을 주장하 는 것은 자동차사업에 필요한 개발, 생산, 부품조달, 판매, 애프터서비스 등 필수적 경영자원의 절대 부족에서 오는 어려움을 전가하려는 것”이라 고 몰아붙였다.
삼성으로서는 막대한 투자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지난해까지 쏟아부은 투자비만 2조원 정도. 올 한햇동안 8천억원이 더 들어간다. 생산규모가 5 0만대로 늘어나는 2002년까지는 총 4조5천억원 정도가 투자될 예정이다. 삼성차의 부품업체로 나선 삼성전기, 항공, 전자의 관련 투자비 5천억원 과 삼성물산의 판매망 구축비 3천억원을 포함하면 실제 투자비는 5조원을 훨씬 넘는다. 한보철강의 투자비보다 많은 돈이다.
투자비 자체 조달에 안간힘
삼성차는 투자비 조달을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막대한 빚을 끌어들여 지 난해 말 현재 부채가 1조5천9백억원에 이른다. 자기자본비율과 부채비율 은 각각 26.2%와 281.9%로 아직은 괜찮은 편이지만 회사설립 첫해인 95년 에 비해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됐다. 아직 상품이 나오지 않아 아무런 매 출실적이 없는 처지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 은 외화차입금을 합쳐 8천9백81억원으로 은행권 여신이 5천9백69억원, 제 2금융권에는 3천12억원에 달한다. 은행별로는 산업은행이 1천3백82억원으 로 가장 많고 상업 1천3백76억원, 한일 9백15억원, 조흥 5백억원 등이다. 회사채도 지난해까지 4천6백억원을 발행했고 올 들어서만도 이미 다섯 차 례에 걸쳐 1천5백억원 어치를 발행했다. 이와 별도로 지난해 11월에는 산 업은행을 상대로 전환사채 1천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연간 금융비용만 1천 5백억원에 이른다. 삼성차 임원은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신규사업 을 하는 마당에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삼성은 계열사 출자 이외에 임직원들의 주주참여 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현재 삼성차의 자본금은 8천54억원. 현대, 기아, 쌍용 등 기존 완 성차업체의 2∼4배에 이르는 거액이다. 계열사로서는 지금까지 삼성전자 가 1천7백억원(지분율 21.1%)을 출자한 것을 비롯해 삼성전관이 6백억원( 7.4%), 삼성전기가 4백90억원(6.1%), 삼성중공업이 2백억원(2.5%), 중앙 개발이 1백억원(1.2%)을 각각 갹출했다.
삼성은 지난 95년 30여개 계열사와 산하재단을 총동원해 삼성차 주식 1천 2백25억원어치를 사들인 뒤 전 임직원들에게 특별보너스로 나눠주었다. 삼성차는 이어 지난해 12월29일 임직원 주주들을 상대로 100% 증자를 실 시해 1천2백억원 정도를 조달했다. 이 때문에 삼성차는 비상장회사임에도 개인주주 지분이 30.6%에 달하는 독특한 지분구조를 가지고 있다. 삼성차 의 이재한 전무는 “이 회장은 처음부터 삼성차를 포철과 같은 국민기업 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이었다”면서 “임직원들의 증자 참여는 자발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그만큼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반영 해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 정부에 대해 계열사 출자한도 확대, 보 험사의 계열사 투자한도 확대 등을 요청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 석하고 있다. 삼성차는 앞으로 2조원 정도를 추가로 증자할 계획이지만 그동안 삼성차의 돈줄 노릇을 해온 삼성전자 등 계열사들이 반도체 가격 하락과 경기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첫차 출시 뒤가 진짜 문제다
부산 신호공단 공장이 연약지반이어서 침하 우려가 있다거나 땅값 및 부 지조성비로 평당 1백20만원 이상(타업체의 경우 평당 30만원)의 거액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또 부품업체나 기술인력 확보에 차질을 빚 고 있고, 후속차량 개발도 닛산이 기술이전을 꺼려 늦어진다는 이야기도 끊이지 않는다. 94년 말 승용차 진출 당시 이 회장 이름으로 정부에 제출 한 “현대, 대우, 기아 등 기존업체의 인력이나 계열 부품업체는 스카우 트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삼성이 깨리라는 예상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
삼성은 이런 지적을 모두 “기존업체의 음해”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구조 조정 보고서 파문을 계기로 기존업체들의 반 삼성 연대 분위기는 더욱 강 화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내년 첫차 출시를 계획대로 이뤄낼 수 있다 고 자신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5월 KPQ를 직접 시운전한 뒤 “조금 더 노력하면 해외에 나가 명차들과 경쟁하는 데 손색이 없을 것같다”며 만족해 했다. 하지만 좋은 차를 내놓더라도 다른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고민이 있다. 오히려 승용차사업의 성패는 그 이후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채산 성을 맞출 수 없다. 공장건설에 과잉투자비가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다. 닛산에 지급한 기술료만 이미 8백억원이 넘는다. 또 중형차 하나로는 경 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후속차량 도입이 차질을 빚을 경우 치명적이 다.” 국내 완성차업체의 한 임원은 삼성이 내년 첫차를 내놓더라도 계속 고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금융기관들 “2004년께나 흑자가능”예상
삼성차는 “초기에는 적자를 보겠지만 오는 2001년부터는 흑자를 내고 20 03년 이후에는 상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삼성차에 대 출을 해준 금융기관들은 2004년에야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또 오는 2001년까지 삼성차의 누적적자가 6천7백억원에 이르리라는 예 상이다. 삼성차의 흑자전환 시점이 늦어질수록 누적적자는 커지고, 2002 년 이후에는 연간 5천억원의 이자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또 증시상장도 2 007년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 회장은 평소 “경영자가 무능하면 기업은 망한다”면서 “중장기적으 로 명확한 목표와 비전을 설정하고 전략적인 판단 능력으로 미래의 자사 모습을 항상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경영자의 역할과 자질을 강조해 왔다. 이 회장은 지난 87년 12월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의 총수로 취임한 지 만 10년째를 맞고 있다. 삼성이 반도체에 이어 ‘제2의 삼성신 화’를 이뤄낼지 아니면 위기를 맞을지는 이 회장이 씨뿌린 승용차 사업 의 성패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