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만화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한겨레21

재일유학생 만화가 고경일의 풍자마당

지난 6월2∼8일 일본 교토 기쿠갤러리에선 <상실된 기억>이라는 제목의 만화전시회가 열렸다. 일본유학중인 한국인 만화가 고경일(29)씨가 개최 한 이 전시회는 정신대 문제,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그리고 일본 우익들 에 대한 신랄한 풍자 등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주제였다.

망령이 된 옛 일본 군국주의 군대를 이끄는 일본 총리, 전쟁 피해자들이 흘린 피와 유해 가운데 서서 “증거를 대봐, 증거를 대봐”라고 노래를 부르는 우익인사들과 그 머리 위에서 분노를 내지르는 ‘나눔의 집’ 할 머니들, 가미가제식으로 연이어 망언을 남발하는 일본 고위 공직자 등 그 의 만화는 일본 우익들의 정곡을 직격탄으로 찔렀다.


전시회에 빗발친 우익들의 특별한 관심

그의 전시회는 일본에선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든 전시였던 탓에 개막 전부 터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교토신문 등에서 크게 보도됐다. 맨 먼 저 반응을 보인 것은 일본 우익들이었다. 개막 당일 팩스 30여통이 쏟아 졌다. “종군위안부는 사실무근이다. 강제는 없었다.” “언제까지 일본 사회에 반감을 가질거냐? 언제까지 일본사회에 폐를 끼칠거냐? 참정권! 웃기는 소리 마라. 그전에 사죄가 먼저다.” “강제연행으로 끌려왔다는 거짓말을 해가며 정주 외국인이라고 자칭하지 마라. 일본에 살고 싶으면 다른 외국인 같이 조용히 참고 살아라. 아니면 빨리 고국으로 꺼져라.” 이런 팩스 탓에 고씨는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전시회 기간 동안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아야 했다.

이렇듯 일본사회에 파문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국내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청주사범대학(서원대) 미술교육학과에 입학, 학교 신문사에 서 4컷만화와 만평을 연재하며 시사만화에 첫 걸음을 내디딘 그는 홍성 지역신문에서도 3년간 시사만화를 그렸다. 94년 일본 교토 세이카(精華) 대학 만화학과에 편입학해 현재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일본인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위기 감을 느끼고 있던 친구들이 먼저 전시회를 제의했다. 처음 그는 “한국사 람이 또 일본을 비난하는 형태로 비쳐지는 점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망설였다. 그러던 중 종군위안부 교 과서 게재 문제로 토론이 벌어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일본 우익인사들 이 나와 “당시 종군위안부 중에는 돈을 목적으로 온 사람도 있었고 강제 로 성행위를 했다는 군의 문서적 증거가 없다”는 등의 망발을 일삼는 것 을 보고 그는 전시회 개최를 결심했다. 그날 새벽 그는 토론회에 참석한 일본 만화가 고바야시와 후지오카 도쿄대 교수를 소재로 만화를 그렸고 이 만화는 전시회 팸플릿 표지에 실렸다.


“만화는 메시지 충실하게 전달하는 매체”

그는 오는 8월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 부설 평화미술관 주최의 <반전(反 戰) 미술전>, 난징대학살 60주년을 맞아 12월 중국 난징에서 열리는 기념 미술전 등에도 작품 요청을 받았다. 그는 또 ‘우리만화발전을 위한 연대 모임’(대표 박재동) 주최로 6월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아라가야에서 열리는 <6월항쟁 10주년기념 풍자만화전-“맙소사, 문맹정부!>(문의 02 -325-6525)에도 참여한다.

“자기 메시지를 강하고 충실하게 담는 매체로선 구체와 추상이 가능한 만화가 최고”라는 그는 “21세기 세계의 주도권을 쥐게 될 한국과 일본 이 친구가 되려면 먼저 과거가 깨끗하게 해결돼야 하는데 한국과 일본 양 쪽 모두 너무 쉽게 잊으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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