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한겨레21

벽화가 박찬국

벽은 커다란 캔버스다. 거리를 걷다 반듯한 벽을 보면 손가락이 근질거린 다. 거기에 새와 나무와 개울과 사람들을 그려넣고 싶다. 여기 혹처럼 튀 어나온 곳엔 사슴의 뿔을 그려야지. 그러면 진짜 우람한 뿔처럼 보일거야 . 저기 움푹 팬 곳엔 옹달샘을 그리면 딱 어울리겠군. 옹달샘 옆엔 옛날 어머니가 우물에서 물긷던 모습을 그려넣으면 될 것이고. 그래! 버드나무 도 하나 집어넣자. 마음은 이미 한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얼핏 보면 영락없는 낙서

박찬국(39). 그의 말을 빌리자면 혁명가요, 평론가요, 정치가요, 화가다. 어느 한 가지로는 온전히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단다. 그래도 사람들 틈에 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만든 명함이 공공미술가란 이름이다. 공공이란 두 글자에 그의 복잡한 정체성이 녹아든 셈이다. 하 지만 조금만 더 세속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는 그냥 화가다. 그것도 벽화 만을 그리는, 혹은 벽화만을 만드는 그런 그림쟁이다.

그에게 벽은 복잡한 자의식만큼이나 복잡하다. 단순히 건물의 안과 밖을 가르고, 사람들의 교류를 막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당이고, 시장판 이고, 학교이고, 놀이터다. 그는 벽에서 거꾸로 사람들의 왕성한 만남을 꿈꾼다. 간단한 덧칠로 삭막한 도시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도 벽이다. 매연으로 찌든 거리에서 문득 한폭의 산수화 같은 벽화를 상상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가 벽화를 만드는 방식은 통상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 다르다. 화가가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면, 그는 보는 사람들의 세계를 표현한다. 그 자신의 감성이나 상상력은 중요하긴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그는 항 상 벽화가 들어설 곳의 지역성이나 풍토 따위를 먼저 고려한다. 벽 가까 이에서 사는 사람들의 심성에 어울리는 벽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재료도 그곳에서 동원할 수 있는 것을 쓰려고 애쓴다. 그게 나뭇조각이나 돌멩이 가 될 수도 있고, 폐타이어가 될 수도 있다.

수원시 우람아파트 들머리 옹벽에 그려진 벽화 <우리 동네>는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벽화는 얼핏 보면 영락없는 낙서다. 벽 여기 저기에 선과 면으로 단순화된 새와 물고기가 그려져 있다. 한켠에선 로켓 이 날아오르고, 증기기관차도 달린다. 꽃은 한결같이 별사탕을 닮았다. 유치원에 다니는 동네 꼬마들의 그림을 토대로 구성했기 때문이란다. 유 심히 보면 정교한 그림도 숨어 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 호랑이 같은 통장 할아버지, 작업복을 입은 청소부 아저씨는 실제 아파트에서 사는 사 람들이 모델이다. 벽화는 제목 그대로 동네를 담았다.

그런 벽화를 그리게 된 사연이 재밌다. 아파트는 지은 지 15년이나 지난 낡은 서민아파트였다. 시에서 도시환경을 정비한다며 옹벽에 벽화를 그릴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벽은 운동장만 한데 보수는 쥐꼬리만 했기 때문이다. 소문은 돌고 돌아 그에게 까지 닿았다. 그는 벽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곳 사람들의 애 환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벽화 속의 할머니 옆에 그려진 낙서는 그 런 그의 소망을 대변한다. “우리 할머니는 허리가 안 좋으십니다. 그래 도 항상 웃으시며 오냐 내 손주 어서 오너라 하십니다. 할머니는 젊어서 전쟁나서 고생하시고 먹을 것이 많지 않아서 아주 열심히 일을 하셨답니 다. 할머니 힘내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포기하고…

그의 벽화는 생활 속에서 태어난다. 그건 그가 그림을 배우며 체득한 것 이기도 하다. 광주에서 고교를 마친 그는 삼수까지 했지만 대학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군대에 들어갔고, 제대를 하고서야 대학생이 됐 다. 그 뒤의 운명은 그야말로 공공적(?)이다. 늦깎이 대학생도 80년대라 는 시대적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학생운동을 기웃거리며 팸플릿에 만화 를 그리거나 학생회관에 걸릴 걸개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때 예술이 현 실이고,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동의 무기로 배운 만화가 졸업한 뒤에 밥줄이 됐다. 노동에 지친 소년 이 다니던 공장에 불을 질렀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만화로 그려본 게 제법 호평을 받았다. 검열이 심해 발표는 못했지만 만화학원에서 교재로 쓸 정 도였다고 한다. 만화잡지사에 발탁돼 남들이 가져온 콘티를 손봐주며 겨 우겨우 먹고 살았다. 그러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배울까 해서 일본으로 날랐다. 앞으로는 컴퓨터가 중요한 매체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학비가 너무 비쌌다. 벽화를 택한 건 그런 생활상의 이유였다.

그는 단지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화사한 벽화를 거부한다. 그보다는 재밌 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벽화를 그리고 싶다. 그게 만화라도 좋다 . 그런 벽화는 사람들의 오감을 자극해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기 때문이 다. 벽화를 그리기에 앞서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는 것도 그 때 문이다. 벽의 상태나 위치를 고려해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아이디어를 붙잡으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그는 그런 재미가 사람들에게 추억거리 가 되기를 바란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벽화는 골방에서 그리는 회화와 다르다. 거리에서 벌이는 작업이기에 거치적거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계절 과 날씨의 간섭은 특히 심하다. 습기와 일사량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곰팡이나 자외선이 안료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업실에서 갑자기 거리로 나오면 색채 감각이 균형을 잃는다. 지나치게 강한 색을 써 두고 두고 마음에 걸릴 때가 많다. 벽화는 한번 그려놓으면 적어도 일년을 가 는 것이니 속이 상할 대로 상한다.


그의 벽화 사이를 걷는 우리들

그에게 요즘 도시는 참 엉터리다. 폼도 안 나고, 살맛도 나지 않는다. 아 파트나 빌딩을 보면 주인의 욕심을 네모나게 똑 잘라낸 것 같다. 평수와 돈만 생각할 뿐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예전엔 하다못해 대문 문고리에도 뭔가를 장식했는데, 요즘은 그런 문을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 사람들에겐 그런 게 죄다 귀찮은 일일 뿐이다. 그 는 생활 속에서 기능하는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게 못내 안타깝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의 벽화 사이를 걷는다. 푸르른 창공을 헤치고 갈 매기가 날아오르는 빌딩 외벽, 은행나무가 우거진 구치소 담벽, 폐수에 찌든 강물이 흐르는 초등학교 담장. 그리고 거울조각과 동물그림이 모자 이크된 놀이터 벽. 그는 그 벽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이 벽을 넘어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라고….

사진 정진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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