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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지성 |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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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4년부터 본격가동에 들어간 허블망원경. 별의 탄생과 성장 등 우주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영화처럼 볼 수 있다.)
과학사의 대발견 뒤에는 망원경이 그림자처럼 붙어다녔다.
갈릴레이는 1609년 최초로 망원경을 만들어 하늘을 본 뒤 지동설을 체계 화해, 수천년 동안 인류의 사고를 지배해왔던 천동설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늘날 많이 쓰이는 반사망원경을 발명한 뉴턴은 행성들의 운동을 관찰하 면서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허블망원경 이용은 하늘의 별따기
하지만 망원경의 발명 이후 지난 3백50년 동안 천문학자들은 ‘가시광선 의 창’을 통해서만 별을 볼 수 있었다. 가시광선 즉 3천∼1만옹스트롬의 파장을 가진 좁은 영역의 빛으로 우주를 보는 것은, 단추 구멍으로 세상 을 내다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맹렬한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는 별과 은 하들, 그리고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면서 죽은 별들의 잔해 즉 성간물질은 가시광선 외에도 X선·자외선·적외선·전파 등 모든 파장의 빛을 뿜어내 기 때문이다.
1950년대 전파망원경의 등장은 ‘전파’라는 새로운 우주의 창을 열었다. 벨연구소의 펜지아스와 윌슨은 지난 65년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했다.빅뱅 직후 우주공간을 꽉 채웠다가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서서 히 식어가고 있는 이 빛을 전파로 포착함으로써, 빅뱅의 최초 증거를 발 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X선·자외선·적외선은 전파망원경으로도 여전히 볼 수 없었다. 이들은 대기권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시광선도 지표면에 도달하기는 하지만, 대기권에 의해 산란·반사되기 때문에 우주공간에서 볼 때보다 매우 흐릿하다.
이런 이유로 천문학자들은 1940년대부터 우주공간이나 달에 망원경을 설 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미국과 유럽은 각각 60년대와 70년대부터 지 금까지 X선과 자외선 등을 관측하기 위한 소형망원경을 탑재한 과학위성 을 수백개 발사했다. 특히 지난 90년에는 가장 먼 우주까지 볼 수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이 발사되면서 천문학계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허블망원경은 94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서 보이지 않는 상상 속의 천체인 블랙홀의 실존 증거를 잡은 것은 물론 별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의 전 과정, 은하와 은하의 충돌, 목성과 혜성의 충돌 등을 마치 영 화처럼 선명하게 찍어 지구로 전송했다. 허블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본 천 문학자들은 우주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탄복했다.
허블망원경은 작은 지상망원경에만 의존해온 한국 천문학계에도 큰 충격 을 주었다. 마침내 국내 천문학계에서도 우리의 우주망원경을 쏘아올리자 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김상준(경희대)·김영하(충남대)·이명균(서울대) 등 3명의 국내 천문학자들이 허블우주망원경의 관측시간을 할당받아왔다. 그러나 전세계 천문학자들과 경쟁해 관측시간을 할당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반드시 미국의 학자들과 팀을 짜야 관측 신청이 가능했다.
“제작기술 사오려면 엄청난 비용”
최근 한국천문학회와 한국우주과학회는 우주망원경의 제작과 발사를 공동 으로 추진키로 합의했다. 이들은 각각 별도로 두고 있던 두 학회의 우주 관측위원회를 통합해 올 봄 연합우주관측위원회(위원장 연세대 최규홍 교 수)를 구성했다.
두 학회는 원래 하나의 학회였지만, 서울대 출신이 주도하는 천문학회에 반기를 들고 연세대 출신들이 탈퇴해 우주과학회를 만들면서 천문학계는 지난 10여년 동안 양분돼왔다. 그렇지만 그뒤 젊은 교수들이 학회를 주도 하게 되면서 학계 분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마침내 통합의 첫걸음으로 우주망원경 발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경희대 김상준 교수(45·행성천문학)는 “지금까지 두 학회의 회원 4백명 으로부터 의견을 받은 결과, 가장 만들기 쉽고 선호도도 높은 자외선망원 경을 쏘자는 쪽으로 의견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항공우주국 고다드우주센터에서 12년 동안 우주망원경과 과학위성을 계획하는 일을 하다가 지난 94년 귀국한 뒤 우리 우주망원경 계획 입안을 주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우리별1·2호를 쏘았던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최순달 교수와 우리별4호를 우주망원경으로 계획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 다”고 말했다. 이 센터는 내년에 우리별3호를 쏘아올리는 데 이어 오는 2000년께에 본격적인 과학위성인 우리별4호를 쏠 예정이다.
한편에서는 미국의 우주망원경을 개조해 쏘아올리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 다. 이 망원경은 미국항공우주국의 지원 아래 존스홉킨스대학이 우주왕복 선을 이용해 지난 90년과 95년에 쏘아올려 잠시 사용했던 홉킨스 자외선 망원경(HUT·일명 아스트로망원경)이다.
이 망원경은 당시에는 사진 필름을 이용했으나 이를 최신의 전하결합소자 로 바꾸고, 태양전지판, 전송장치, 자세제어 장치 등을 달아 로켓으로 쏘 아올리자는 것이다. 허블망원경이 버스만하지만, 이 망원경은 그 3분의 1 정도인 택시 크기이다.
존스홉킨스대에 있는 허블우주망원경연구소에서 3년 동안 일했던 연세대 이영욱 교수는 “미국이 절반, 우리가 절반을 부담할 경우 우리가 지불해 야 할 비용은 개조비 1백60억원, 발사비용 1백60억원 등 모두 3백20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존스홉킨스대학은 이 망원경을 개 조하는 계획서를 내년에 미국항공우주국에 제출할 예정이지만, 우주과학 예산의 동결로 한국의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망원경 제작 기술을 상업적으로 사오려면 엄청난 돈이 들 뿐 아니 라 군사적 이용 가능성 때문에 들여오는 것 자체도 어렵다. 그러나 순수 한 천문학에서 학자들 사이의 교류가 훨씬 자유로워 첨단 우주기술을 이 전받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영욱 교수는 말한다.
이런 학계의 움직임과 관련해 천문대도 올해 초 우주과학연구그룹(그룹장 한원용 박사)을 만들어 최근 과기처에 우주망원경에 대한 제안서를 만들 어 제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군사기술과도 밀접한 관계
천문대는 러시아의 미르우주정거장에 장착됐으나 고장나 쓰지 못하고 있 는 글라자르-2 망원경의 카메라를 수리해서 쓰는 것을 추진해왔었다. 이 망원경의 수리는 지난 94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국제천문연맹 총회에서 러 시아와 아르메니아가 제안해, 박홍서 천문대 대장 등이 직접 현지에 가서 기술을 검토하고, 95년에는 아르메니아의 책임자가 오는 등 구체적 논의 단계까지 갔었다.
그러나 과기처와 사전 의견 조율없이 추진됐다는 이유로 괘씸죄를 받아 이 사업은 백지화되고 말았다. 또 이 과정에서 추진 사실을 언론에 알린 박홍서 천문대장이 물러나는 진통을 겪었다. 과기처 장경철 항공우주
조정관은 “우리별4호는 무게 1백㎏ 정도의 소형이어서 우주망원경 탑재 가 가능할지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며 “99년 항공우주연구소가 발사할 1호기에 이어 오는 2003년에 발사할 5백㎏급 다목적위성 2호기에 어떤 임 무를 부여할지에 대한 조사가 98년 하반기부터 시작되므로 우주망원경의 탑재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망원경은 군사기술과도 매우 밀접하다. 우주망원경을 1백80도 돌려 지구를 보면 초고성능 군사첩보위성이 된다는 것은 천문학계에서는 공공 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일본은 전후에 군사목적의 우주개발로 제재를 받 자, 천문학과 대학원생 등을 미국 나사에 많이 보내 기술을 전수받았으며 , 이를 발판으로 해서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는데 성공했다.
90년대 들어 무궁화위성과 우리별1호의 발사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우 주개발 시대가 열렸지만 이를 주도하는 것은 공학자들이었고, 천문학자들 은 그동안 소외돼왔다. 천문학자들이 이런 차별을 극복하고 우주망원경 발사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 관심거리이다.
신동호 기자/한겨레 생활과학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