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주장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한겨레21

좌파를 짓밟는 국가경영

얼마 전 잇따라 치러진 영국과 프랑스 총선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 크 다. 여러 식민지 지배를 바탕으로 제국주의에서 자본주의의 탄생을 이끈 자본주의 종주국이라 할 나라에서 좌파 사민주의 정당이 그 나라 의회의 다수당으로 선택됐다는 사실에 한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동시에 노동자의 권리가 그들 나라에 비해 한없이 작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할 때 노동자의 권익을 최고의 지향으로 삼는 사민주의 정당의 출현을 우리 정치현실에서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영국과 프랑스 총선에서 좌파가 승리함으로써 유럽연합을 이루고 있는 15 개국 가운데 독일과 스페인을 제외한 13개 국가에서 사민주의 정당이 의 회의 다수당을 차지하게 되었다. 옛 소련, 동구에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를 바라본 지 불과 몇해 만에 그야말로 유럽은 좌파의 깃발로 펄럭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가 곧 사회주의의 궁극적 폐기 를 의미하지 않음을 대변해 주는 사실이라 하겠다. 또한 이것의 극복방안 으로 사회주의가 탄생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자본주의 모순이 날로 심 화되고 그 폐해가 극심하게 현실로 드러남과 동시에 한번의 사회주의 실 패를 교훈으로 삼은 유럽의 선진국가들은 그 대안으로 오늘의 사회주의 모습을 띠게 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면 오늘의 사회주의는 사 회민주주의 성격으로써 자본주의 경제 생산양식을 바탕으로 한 정치 사회 주의의 길을 택한 셈이다.

이처럼 좌파의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세계정세 속에 유독 우리나라에서 만은 그 어디에서도 ‘좌파’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나라가 OECD에 가 입하여 선진국 반열에 올랐음을 자축하며, 늘 자유민주주의의 첨병임을 외치는 우리나라에 어떻게 시대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 사민주의의 모습 은 그 꼬리조차 찾아볼 수 없는지 아리송하다. 이는 지배층 정서에 깔린 ‘레드 콤플렉스’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상과 사고를 원천적 으로 가로막는 반민주적 국가경영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민 주주의의 최대 강점은 각자 의사의 자유로운 표현과 다수에 의한 그것의 논의와 선택에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에서는 사회주의를 논하는 것은 고 사하고라도 노동자란 말이 나오는 것도 쉽게 용납되지 않는 현실이다. 걸 핏하면 색깔론 운운하며 지배층의 정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사회주의의 ‘사’자만 꺼내도 단숨에 빨갱이로 매도하는 우리의 정치현실은 그들이 늘 내뱉는 민주주의와는 멀어도 한참 멀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회 내에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하는, 아니 조금이라도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해주려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전향각서’에 날인 을 하지 않았다는, 즉 자신이 믿고 실천하려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0.9평 독방에 수십년간 갇혀 있어야 하는 유일한 자유민 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지배체제 유지 이데올로기 이외의 어떤 사상의 표 현도 허락하지 않는 국가보안법. 이 모든 것들은 대한민국에 과연 ‘민주 ’가 존재하는 것인지 설령 존재한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새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하는 대목들이다. 어디 이것뿐인가. 국가에 의해 침해 되는 민주적 권리의 훼손 사례가….

작년 이맘때 시민들의 자전거 이용이 교통소통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자전거 이용을 제한하는 법안에 반대하여 스위스 시민들이 주택가 창틀에 자전거를 내걸어 그들의 의사를 표현한 사진이 신문에 실린 것을 본 기억 이 있다. 빽빽이 들어선 주택가 창틀마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걸려 있는 자전거들을 보고는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생 각했다. 우리나라 시민의식이 그쯤되리라 기대하는 것도 어려운 노릇이지 만 설령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당장에 정부에서는 인력을 동원해 자전 거를 철거하느라 수선을 피웠을 것이다.

언제쯤이나 각자의 의사를 여러 방법으로 표현하고 또 그것이 권력에 위 협으로 다가설 수 있을까. 초보적인 민주주의마저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연기/ 인천시 부평구 십정2동 493-49 17/4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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