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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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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리사(23)는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1학년 학생이다. 카자흐스탄이 고 향인 그는 지난해 가을 할아버지 땅에 유학을 왔다.
그런데 말하는 폼이 함경도 사투리를 빼닮았다. 말할 때마다 북한 지역의 독특한 억양이 드러난다. 라리사가 전하는 까닭은 이렇다. “카자흐스탄 의 한인들이 사용하는 말은 6진 방언을 모체로 하고 있습니다. 조선 세종 때 정착한 회령, 종성 등 두만강 경계의 여섯 지역에 살던 분들이 직계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라리사의 가계도를 따져 올라가면 구한말 이후 우리 민족이 겪어온 수난 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라리사의 4대조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1860년대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6진 지역의 한인들이었다. 이들은 황무지를 개간 하고 한인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등 이국땅 정착에 어느 정도 성 공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한인들 은 중앙아시아 각 지역으로 흩어지게 됐다. 라리사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1백30년의 시간을 에둘러 고국땅을 찾아왔지만 모국어에 대한 그의 능력은 범상치 않다. “고교 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어와 카자흐스탄 말만 알았어요. 아직도 부모님은 한국말을 하지 못해요.” 그럼에도 라리 사는 91년 첫 강의를 시작한 카자흐스탄 알마아타국립대학 한국어학과에 진학해 1회 졸업생이 됐다. 졸업후 이 대학 한국어과에서 1학년을 상대로 강의했다. 이론에 부족함을 느껴 고국으로 유학온 것이다.
“내년 말 학위를 받으면 알마아타대학에 돌아갈 거예다. 한국에 오기 전 보다 더 알찬 강의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라리사는 학위논문으로 ‘카 자흐스탄 한인들의 경어법’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 람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경어 사용도 흔적을 잃어가고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한국에 도착해서 공부도 너무 어렵고 음식도 맵고 짜 ‘왜 이 고생을 하나’ 하고 수없이 물었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조선의 핏줄이 느껴져요. ” 라리사는 “특히 어렸을 적 할머니한테 들었던 우리말을 듣거나 국악 을 들을 땐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말했다.
김창금 기자/한겨레 문화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