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한겨레21

‘콜로라도 한국 뿌리찾기 캠프’를 가다

(사진/캠프 개막식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애국가를 부르는 카운슬러들. 미국에서 자라났지만 자신들은 한국인임을 굳게 믿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을 동서로 가르며 길게 누운 로키산맥. 여름의 문턱을 막 넘겼지만 하늘 가까이 닿은 봉우리들은 여전히 만년설을 이고 앉아있다. 미국 로키 국립공원의 관문인 콜로라도주 덴버시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을 내리달려 도착한 ‘윈터파크 YMCA 캠프장’은 걸어서는 도저히 돌아볼 염 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넓었고 캠프장 곳곳에는 노란 민들레가 한창이었 다. 그곳에선 또하나의 작은 한국이 자라고 있었다.


부모들 자원봉사로 1년 동안 캠프 준비

6월14일 금요일 아침. 캠프장의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강당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인사를 나누는 파란눈과 금발의 어른들 사이로 전혀 낯설지 않은 검은머리 검은눈의 아이들이 강당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며 장난이 한창이다. 덩치 큰 아이들은 서로 뺨을 비비며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한 국에서 입양된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한국에 대해 공부하고 배우며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한국인 뿌리찾기 캠프’(Colorado Korean Herita ge Camp)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캠프의 개회식은 미처 도착하지 못한 가족들을 기다리느라 시작시간을 넘 기고 있었다. 그러나 예정된 시작시간이 늦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 이지 않는다. 연단 뒤편에서는 어른들 몇몇이 모여 무언가를 만드느라고 골몰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가족, 대한민국…. 한글카드를 만들고 있었 다.

마이크 소리가 마침내 반가움에 달뜬 장내를 정리했다. 6년 전 이 캠프를 만드는 데 첫삽을 떴던 팸아줌마가 소개되었다. 뒤를 이은 한국관광공사 로스앤젤레스 지사에서 일하는 재미동포 정유진(25)씨의 부채춤이 끝나자 강당 뒤편에서 사물놀이 소리가 들려왔다.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 이후 급증하는 덴버시의 재미동포 위문공연을 마친 국악단 ‘슬기둥’이었다. 지난해 두명의 단원을 캠프에 파견했던 슬기둥은 이번 캠프에는 전원이 참석했다.

힘찬 사물놀이 소리보다 더 큰 박수가 끝나자 20여명의 어른들이 불리는 이름 순서대로 연단에 오른다. 올 캠프를 위해 자원봉사를 맡은 부모들이 었다. 매년 캠프가 끝나면 다음해 캠프를 준비 할 자원봉사자들이 정해지 고, 이들의 1년에 걸친 준비 끝에 매년 6월 캠프는 열린다.

이어서 ‘카운셀러’로 불리는, 이제는 어른이 된 한국 입양아들과 그들 의 친구들인 재미동포 젊은이들이 소개되었다. 캠프 기간동안 아이들을 돌볼 이들은 자신들이 입양아로서 겪어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많은 고민들을 스스로 풀어내는 열쇠를 전해주고 부모 들의 상담에 응하게 될 것이다. 우르르 몰려나온 30여명의 카운셀러들의 자기 소개가 끝나자 강당 뒤편에서 태극기를 들고 서있던 두명이 연단에 함께 올라섰다. 애국가를 부르자는 제안이 나오자 강당에 모여앉은 3백여 명의 캠프 참가자들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슬기둥 단원으로 참석한 강호 중 교수(39·추계예술대 국악과)가 마이크를 잡았다. 객석의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한 아버지는 열살 정도 돼보이는 자신의 아들에게 귓속말을 건넨 다. “잘 듣고 잘 보거라.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이 노래가 네 어머니 나라의 국가이고 저 깃발이 네가 태어난 나라의 상징이란다.”


한국음식으로 나누며 한국알기 공부

개회식이 끝나자 카운셀러들이 자신이 돌보게 될 아이들을 모으고 서로의 얼굴을 익히는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어른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점심 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캠프기간 동안 점심은 한국식으로 만들어진 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부모들의 몫이다. 오늘의 메뉴는 쌀밥과 불고기 에 오이소박이를 비롯한 김치종류가 함께 나왔다. 김치는 덴버시 한인상 점에서 구입했지만 불고기를 굽는 것은 아버지들의 몫. 미국식 바비큐통 에는 벌써 고기 굽는 연기가 가득하다. 3백여명의 배를 채워야 하는 양인 만큼 만만찮은 일이다. 미국식 바비큐처럼 고기가 구워져 나오자 한 아버 지가 참견하고 나온다. 양념된 고기를 굽는 요령을 열심히 설명하지만 아 버지들의 얼굴은 심각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한국의 맛이 안 나온다는 것 이다.

한쪽에서는 부부가 김치를 작은 그릇에 더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 다. 아버지는 연신 김치를 입에 넣으며 “굳” 소리를 연발한다. 맵지 않 느냐고 묻자 전혀 아니란다. 한국에서 온 아이를 위해 가끔씩 집에서 김 치를 먹는다고 엄마가 거든다.

접시 하나에 밥과 불고기가 얹어졌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한쪽에는 핫도그가 준비했지만 기우였다. 가족단위로 혹은 아이들끼리 삼 삼오오 식사를 나눈다. 잡기 힘든 나무젓가락이지만 젓가락질이 어색하지 않다. 한 아이가 김치냄새가 익숙지 않은지 코를 막았다. “가만히 기억 해봐, 우리에게 오기 전에 네가 먹던 음식이다. 이 냄새를 잊으면 안 된 다.” 젓가락에 작은 김칫조각을 들고 아이 입에 건네던 엄마의 목소리가 다정하다. “노 마미”를 외치던 아이가 그제서야 김치 한조각을 입에 넣 고 오물거리리고 엄마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아이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싶지만 자신은 한국음식을 만들지 못한다고 설명했 다. 이웃에 한국인이 있다면 배울 수도 있을 텐데 자신이 사는 곳은 아주 시골이라 한국인이 없다고 한다. “한국음식을 만드는 법이 담긴 책을 구 할 수 없느냐”는 질문이 진지하기만 하다.


내 아이에게도 친부모를 찾아주고 싶다

점심식사가 끝난 후 본격적인 캠프가 시작됐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자신 의 뿌리를 배우는 ‘뿌리’ ‘풍습’ ‘한글 배우기’ ‘한국음악’ ‘태 권도’ ‘도장파기’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온 슬 기둥 단원들과 콜로라도 거주 재미동포 젊은이들과 유학생 단체인 콜로라 도 한인JC 회원들이 강의를 맡았다. 부모들을 위해서는 대부분 입양아들 을 키우면서 겪게되는 경험들과 고민들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들이 준비돼었다.

95년 한국을 방문해 부모를 찾는 데 성공한 웨인베리(29·한국명 오지수) 가 자신의 가족찾기 과정을 설명하는 ‘모국의 가족찾기’반에는 20명 남 짓한 부모들이 참석했다.

그들의 걱정은 친어머니가 양부모인 자신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였다. 한 어머니는 “한국의 친어머니와 계속 연락을 갖고 싶어 편지를 몇번 띄 웠지만 답장이 없는데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미혼모에 대한 한 국사회의 편견에 대해 설명이 이어지자 비로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 인다.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탄식에 가까운 한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또다른 반에서는 사춘기 자녀들의 일탈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 아이가 갑자기 모든 일에 반항적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하느냐” “화장실 휴지를 몽땅 풀어 버리는데…” “왜 나를 미국으로 데려왔느냐고 항의를 한다” 따위의 고민들이 터져나왔다. 한 부모의 질문에 먼저 경험한 다른 부모가 어떻게 대처했으며 결과가 어떠했다라는 식으로 답변하면서 서로 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었다. 부모가 먼저 자기 자식이 한국에서 온 입양 아라는 편견을 지워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편견은 지나친 사랑을 낳 고 아이의 자립심을 해친다는 거였다. 반항하거나 불만이 많은 아이일수 록 자아가 분명하니 자기 스스로 고민을 해결하고 스스로 서도록 지켜보 는 것이 부모된 도리라는 말에 참석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젊은 입양자들과의 시간’에서는 2명의 흑인혼혈아를 포함해 이제 성인 이 된 다섯명의 입양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느 날 자기 와 부모가 다를 수밖에 없는 까닭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 그리고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분노, 학교에서 아이들의 놀림 같은 이야기들이 부모들에 게 전해졌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던지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어 떻게 답변해야 할지 물어왔다. 솔직하게 답변하라는 것이 성인 입양아들 의 충고였다.

어른들의 프로그램이 진지하게 진행된 반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놀 이판이었다. 특히 인기를 끌었던 것은 슬기둥의 김영호(29)씨와 진도북춤 전수자인 임수정(34·중앙대 강사)씨가 진행했던 우리노래와 춤을 배우는 순서. 제주도 민요 <너녕 나녕>과 함께 소고를 이용한 간단한 춤동작을 선보였다. 김영호씨의 넉살과 함께 지난해 이어 두번째 참석한 임수정씨 의 배려가 어우러져 캠프기간 내내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에게 인기가 가 장 높았다.

‘한글 T-셔츠’ 시간은 아이들이 한벌의 T-셔츠에 서로 돌려가며 자신의 이름을 써넣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 르쳐주려는 부모들의 배려로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 을 위해 이미 명찰에 영문이름과 함께 한글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림 그 리듯이 한글이름을 T-셔츠에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아이들은 한글 한자한자를 적어갈 때마다 강사들에게 발음을 요구해왔다.


"20살이 되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했어요"

코너 드가(11·Conner Dega)는 강사를 붙들고 자기의 이름은 신기호라고 똑똑히 말하며 어떻게 쓰느냐고 물어왔다. 강사와 함께 신.기.호 석자를 써내려 갈 때마다, 자신은 두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으며 엄마는 서울에 살고 있다고 말을 했다. 두살 때의 일이지만 엄마가 자기와 헤어질 때 “ 아이 러브 유”라고 말한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20세가 되면 훌륭한 엔지니어가 돼 엄마를 만나기로 약속했다고도 했다. 카운셀러는 아마도 신기호라는 이름은 입양카드에 적혀있었던 것이고 지금 아이가 하 는 말은 양어머니가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라 덧붙인다.

87년 쌍둥이 자매를 입양했다는 신디 레이(51·Cindy Ray)가 이야기를 거 든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출생에 대해 물어보지만 답변하기가 너 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입양된 사실을 물어보면 자신이 버려진 아이냐고 되묻는데 아니라고 말을 하려면 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양어머니들은 친어머니 에대해 모른다는 것이었다. 자기 도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국의 문화와 생활을 공부하지만 워낙 에 미국과 달라 자기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강당에 마련된 ‘한글배우기’시간에는 가장 많은 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먹을 갈아 붓으로 글씨를 쓰느라고 아이들 얼굴이 온통 먹물투성이가 되 곤 하기 때문이다. 벽에 부쳐놓은 글씨를 그대로 보고 옮기는 시간이었지 만 시간을 마친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안녕하십니까?”라는 한국어로 인 사를 건네기도 하였다.

‘종이접기’을 통해 바지저고리를 접어보는 아이들은 처음해보는 탓인지 마냥 신기해했다. 함께 참석한 부모 가운데는 집에 돌아가 아이들과 함게 접어보겠다며 접는 순서를 꼼꼼히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하였다. ‘한글배 우기’ 순서는 오히려 아이들보다 부모들의 공부시간이 되곤 하였다. 바 로 옆에서 벌어지는 노래와 춤판에 아이들의 신경이 온통 쏠리는 탓도 있 었지만 변변한 한글교재를 구하기 힘든 때문이기도 했다. 먹을 벼루에 갈 아 먹물을 만드는 과정도 신기했다. 가장 인기 있었던 글씨는 ‘안녕하십 니까’. 캠프가 종반에 들어서부터는 오가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안녕하 십니까?”라고 인사를 쉽게 해올 정도였다. ‘가족’ ‘아버지’ ‘어머 니’ 같은 단어들이 인기를 끌었다.

캠프 둘쨋날 오후에 치러진 ‘한국 음식 맛보기’ 시간은 마치 한복 경연 장 같았다. 콜로라도 한국JC가 현지 교민들의 도움으로 만든 갈비와 전 같은 전통음식을 통해 한국을 배우는 시간이었지만 캠프의 마지막 순서이 기도 한 탓에 아이들이 온갖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나왔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등 한국인 밀집지역 상점에서 구입하거나 한국을 방문할 기 회에 부모들이 구입해 아이들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캠프가 아니고서는 한복을 입혀 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는 캠프 때마다 한복을 갖고 온단다.

음식을 만드느라 참석한 재미동포 한분이 옷고름을 고쳐 매주는 모습을 바라보던 부모들은 옷맵시가 한결 살아난다며 빙 둘러앉아 옷고름 매는 법을 배우느라고 법석이다. 엄마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레이시(11·Lac ey Sweetser)는 아무래도 어색한 한복 사연을 묻자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 고 자랑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몇가지 거들어 주었을 뿐 디자인도 재봉질 도 레이시가 직접 했다고 거들었다.


서툰 한국어로 부르는 “우리 만남은…”

2박3일간의 일정으로 벌어진 한국 뿌리찾기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임을 깨 우치고 한국인에 대해 알리며 마지막 밤을 맞고 있었다. 고등학생들과 카 운셀러들이 마지막 밤을 댄스파티로 지낸다며 부풀어 있을 때 강당에서는 아이들의 장기자랑이 준비되고 있었다.

두명의 아버지가 음향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겸 사회자로 나섰다. 노래부 터 춤, 피아노 연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장기를 가진 아이들은 모두가 무대에 서는 듯했다. 북부 콜로라도 한글학교에서 온 북춤으로 장기자랑 은 시작됐다. 덴버에서 50마일 정도 떨어진 그릴리에 자리잡은 한글학교 가 입양아 부모들의 부탁으로 시작한 한국배우기의 작은 결실이었다. 흑 인 혼혈인 리사(14·Leeha Bebo)와 미국인 아빠를 만나고 싶어하는 백인 혼혈 크리스티(17·Christie Bebo)도 미국생활 17년을 맞는 김나자(68) 선생의 장단에 맞춰 북춤동작을 해내고 있었다.

생김새가 똑 닮은 두 형제가 똑같이 디자인 된 옷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서툰 한국말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피아노에 앉아 2인 연주를 훌륭하게 해내기도 했다.

장기자랑 중간에 한국에서 캠프를 위해 찾아온 슬기둥의 연주시간이 마련 됐다. 임수정씨의 진도북춤에 이어 <꽃분네야>가 불려졌고 ‘그저녁 무렵 부터 새벽이 오기까지’라는 제목의 해금연주가 이어졌다. 우는 듯한 해 금소리에 조용해진 분위기가 <너녕 나녕>이라는 민요 순서가 되자 분위기 는 일순 바뀌었다.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노래였고 배운 춤 장단이었다.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고 앉았다 일 어섰다 아이들의 몸놀림과 손동작이 바쁘다. 사진을 찍는 부모들의 박수 에 노래는 두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리고 사물놀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스러질 듯 일어서는 북, 꽹과리, 장고, 징과 태평소의 소리가 입양아들의 혼을 깨워나가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어깨장단을 맞추는 모습이 눈에 들 어왔다. 소리가 마지막 힘을 모으며 크게 강당을 휘돌고 멈춘 자리를 박 수소리가 채워나갔다. 공연은 끝났지만 캠프에 참석한 사람들 가슴에 울 림은 비로소 시작되는 것 같았다.


내년에도 다시 우리를 찾아오라

슬기둥의 CD를 든 사람들의 사인요구와 사진 촬영 요구가 줄을 서는 한쪽 으로 한글 이름이 가득한 하얀 T-셔츠를 입은 여자 아이가 해금을 연주했 던 정수년씨를 뒤쫓아나왔다. 조심조심 입을 뗀 아이는 해금을 배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다. 12년 동안 배웠다는 정수년씨의 답변 에 아이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내년에도 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 또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아이가 정씨 품에 잠시 안기더니 다시 강당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콜로라도 밝은 달빛은 밤이 깊어갈수록 자신이 한국인임을 배워가는 아이 들과 자기 자식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하려는 파란 눈의 부모들 얼굴 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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