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한겨레21

나의 성공은 아이들 것입니다

(사진/6월19일 63빌딩에서 열린 동방아동복지회 창립 25주년 기념 입양아 모국 방문 행사에 참석한 로렌스씨 가족.)

“나는 수영을 안합니다. 물론 골프를 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지도 않죠 . 아이들을 돌보는 게 유일한 취미라면 취미죠.” 로렌스 비보는 대가족 의 가장이다. 로렌스의 피를 이어받은 2명의 자녀 외에도 베트남과 인도 그리고 한국에서 온 22명의 자녀가 로렌스를 아버지라 부른다. 모두가 입 양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로렌스의 가족이 되었다.


돈을 벌면서부터 입양, 교육도 직접

“28년전 결혼할 당시 50달러가 전 재산이었습니다. 몇해동안 봉급에 의 지해 생활했죠. 그때는 입양을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결혼 후 6년 만에 잔디깎기 대행회사를 세우면서 그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도로건설, 전원 주택, 비디오 숍…. 벌이는 사업마다 실패란 없었다. 부자가 되었다.

“형제가 많았죠. 모두가 7남매였는데 내가 6번째예요.” 대가족이 갖는 인간적인 면이 그리웠던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애를 더 낳을 계획을 세웠 었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과 부를 좀더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는 편이 좋 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좋아하기는 그의 부인도 마찬가지였 다. 입양을 선택했다. 아이들은 잘자라 주었다. 한명 두명, 식구가 늘어 났다. 83년 3형제를 한꺼번에 입양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만 17명. 가능하면 형제를 함께 입양해 아이들이 외로워 하지 않도록 했다.

식구가 늘어날 때마다 방을 늘리다 보니 이제 집 복도는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다. 워낙에 대식구이다 보니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비도 만만치 않 다. 부인이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가정을 돌보지만 힘이 달려 가정부도 채용했다. 한달에 들어가는 생활비만도 1만달러 안팎. 7개의 사업체를 운 영해서 벌어들이는 수입 대부분이 아이들의 생활비에 들어간다. 모국의 음식맛을 잊지 않도록 김치와 김과 고추장은 식당에 상비해 둔다. 쌀밥을 한국식으로 지어낼 수 있는 전기밥통 두개도 마련돼 있다. 특히 김치는 자신의 자녀 가운데 한 아이의 할머니를 집으로 초대해 손맛을 전수받은 로렌스가 직접 담근다.

공립학교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로렌스는 6년전 교사 2명을 채용해 홈스쿨을 개설했다. 고등학교 과정까지의 수학이나 물리 같은 기초과목은 집에서 직접 가르치고 체육이나 음악 같은 실기 교육은 인근의 공립학교 를 통해 해결한다. 집 한편에 조그마한 강의실도 개설했다. 그러나 자수 성가한 로렌스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덕목은 정직과 성실. 아이 들에게 자신이 처음 잔디깎는 회사를 세웠을 때 1주일에 70시간 이상 일 을 했다는 것도 꼭 일러준다. 성공이라는 것이 돈을 많이 벌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고 작은 일에도 스스로가 만족할 정도로 열심히 할 때 찾아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고등학교까지는 그가 아이들을 철저히 보호하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아이들 스스로 설 수 있게 하는 데 만족하려고 노력한다. “고등학 교를 졸업하면 자동차를 선물합니다. 대학에 입학하더라도 학비는 절반 정도만 보조하죠. 나머지 학비와 생활비는 스스로 벌어서 쓰도록 합니다 ”


친부모 미국으로 초청해 아이들과 만나게 하기도

로렌스는 지난 6월19일 10명의 자녀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아이들에게 친부모도 만나게 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일지라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한번 본다는 것이 아이들 성장에 반드시 필요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친부모를 만나게 되면 로렌스는 꼭 양부모나 친부모나 조금도 다를 것 이 없다라는 말을 해줄 생각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계속적으로 연락도 취 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세차례 방문을 통해 만난 자기 자녀들의 친부모들 과는 이제 친구처럼 지낸다. 그중에는 미국 콜로라도 자신의 집을 방문한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로렌스에게는 미국 양자회 이사장이라는 새로운 직함도 생겼다. 사회사업가들이 하다보면 허투루 쓰이는 비용이 많은 것같아 자신이 직접 뛰어들었다.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보호의 손길 밖에 있다. 한명이라도 더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 ”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5년전 입양한 3형제가 이미 돌아가신 친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울던 그 슬 픈 울음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는 로렌스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도 꼭 나머지 아이들의 친부모를 찾겠다는 계획이다.

윤승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