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1997년07월03일 제 164호 한겨레21

“언니들이 무서워요, 죽고 싶어요”

(사진/동료들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고층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중학생 조아무개양의 빈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여학생들이 더 희생될지 모른다.)

지난 6월18일 오후 5시30분께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한 아파트 옥상. 이 아파트단지에 사는 조아무개양(16·ㅅ중 3년)은 벌써 한시간이 넘도록 혼 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괴로워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수치심과 절 망감은 커졌다. 조양은 결국 옥상 난간에 오른 뒤 40여m 아래 잔디밭으로 몸을 던졌다.


1/3이 여학생 폭력

조양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학교 동료들의 지속적인 폭력이었다. 경 찰 조사결과 조양은 이날 오전에도 교실에서 동료학생들에게 집단 폭행당 했다. 조양과 동급생인 이아무개(17)양 등 대여섯명이 이날 오전 3교시 뒤 쉬는 시간 동안 그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주먹과 발로 뭇매를 가했다 . “이간질쟁이, 사과해라” “왜 우리를 헐뜯느냐”는 욕설과 함께 주먹 질이 쏟아졌다. 이들의 폭력은 “다음에 보자”라는 협박으로 끝났다. 이 들이 조양을 집단 폭행한 이유는 조양이 일주일 전 극기훈련을 떠나기에 앞서 다른 급우들에게 “걔들과 같은 날라리들 하고는 수련회에 가지 않 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쪽지를 돌렸다는 것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반친구들 앞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한 조양은 점심 시간 학교를 빠져나와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를 만나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조양은 친구에게 “그 애들에게 계속 시달려 괴롭다. 애들한테 맞아 죽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며 울먹였다. 조양은 친구 집에 잠시 머 물다 밖으로 나와 다시 옆동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탈출구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한 것이다. 사실 학교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여러 조처들이 실시되고 있지만 아직도 학교폭력은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특 히 최근에는 여학생들에 의한 폭력도 부쩍 늘고 있다. 여학생들의 폭력사 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청소년폭력예방 재단 상담실에 지난 한햇동안 접수된 피해사례 9백23건 가운데 여학생 상 담건수가 3백26건으로 35.3%를 차지했다. 여학생이 가해학생인 경우는 24 .3%를 차지했고, 남녀가 함께 폭행에 가담한 것도 4.4%였다. 이런 폭력은 이제 감수성이 민감한 여학생 피해자들을 잇따라 죽음으로 몰아넣는 지경 에까지 이르렀다.

지난 5월26일 대구에서도 ㅎ여중 3년 권아무개(14)양이 불량학생들로부터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리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자살했다. 권양은 이날 학교에서 3교시 수업을 마친 뒤 “후배에게 맞아 창피하다”는 쪽지를 같 은 반 친구에게 전하고 학교를 나갔다. 권양을 폭행했던 같은 학교 후배 인 김아무개(13)양 등 동료 여중생 3명이 김양의 남자친구인 중학교 중퇴 생 이아무개군의 집으로 권양을 불러낸 것이다. 이어 “왜 가출한 친구의 소재를 가족에게 알려줬느냐”며 집단구타가 이어졌다. 이군도 가세해 “ 지금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위협했다. 권양은 이런 폭력을 견 디지 못해 베란다로 도망가 14층 아래로 뛰어내렸다. 권양은 이전에도 이 아파트 계단에서 후배인 김양한테 옷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고, 이 사실을 학교에 알렸다는 이유로 또다시 보복 폭행을 당한 것 으로 밝혀졌다.


“너희들이 술상을 봐야지”

지난 3월10일에도 부산의 한 여중에서 1학년 학생이 자신들의 흉을 봤다 는 이유로 상급생들이 교실로 찾아와 괴롭히자 3층과 4층 계단 사이 창문 에서 뛰어내려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여학생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학교폭력은 이제 일부 문제학생들의 비 행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성인 폭력조직 못지 않게 조직화되고 있는 것 이다. 여학생 폭력서클들은 행동강령을 만든 뒤 후배들을 끌어들여 조직 을 유지해 나간다. 또 학교단위로 결성되던 양상을 벗어나 지역을 무대로 하는 광역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한 중학교 인근을 무대로 폭력을 휘둘러온 여학생 폭력조 직 ‘일진회’는 이런 경우의 대표적 사례이다.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모 인 이 조직의 보스격인 이양(ㅇ고 1년)은 중학생 때부터 '폭력세계'에 발 을 들여놨다. 조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이양은 자신의 중학교 1년 선배( ㅅ고 2년)에 의해 대를 이을 ‘짱’으로 지목됐다. ‘짱’은 싸움을 가장 잘하는 사람을 일컫는 이들 사이의 은어다. 이양은 지난해 3월 초순 대부 분 중학교 동창인 고교1년생 친구 4명과 함께 제2기 ‘일진회’를 조직했 다. 이들은 △배신하지 말고 의리를 지킬 것 △선배에게 90도로 인사할 것 △술과 담배를 할 때 규칙을 지킬 것 등을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이들 은 또다시 세력 확대에 나서 동네에서 ‘잘 나가는’ 중3 여학생 7명을 끌어들여 3기를 구성했다. 2기들은 지난해 11월14일 밤 이들 후배들을 집 으로 불러 돈을 빼앗은 뒤 “너희들이 술상을 봐야지”라며 주먹과 발로 3시간에 걸쳐 뭇매를 가했다. 지속적인 금품갈취와 폭력을 당한 3기들은 분풀이와 상납을 위해 또다른 희생양을 찾아 나섰다. 3기 일진회원들은 지난 3월15일 한 노래방으로 같은 학교 후배 7명을 불러내 1인당 1만원씩 을 빼앗고 “돈을 제대로 가져오지 않는다”며 30분간 폭행했다. 학교 화 장실과 매점, 복도는 물론 동네 노래방과 오락실, 주택가 골목, 자신들의 집 등 거의 모든 곳이 이들의 활동무대가 됐다. 이런 금품갈취와 폭력은 최근까지 40여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학교폭력이 조직화되면서 조직의 확 대재생산과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수많은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진회’는 이제 보통명사가 되다시피 했다. ‘학교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애들이 모였다’는 뜻의 일진회는 ‘제 1진’ ‘일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웬만한 배짱과 힘이 있는 학생이 라도 감히 맞서지 못한다는 것을 자부심 삼아 폭군으로 군림한다.


남자친구 동원해 성폭행도

(사진/후배들에게 지속적으로 금품을 갈취하고 폭력을 휘둘러온 여학생 폭력조직 `일진회' 학생들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

일진회원인 한 여중3년생은 “그냥 몰려 다니면서 놀고 남자들과 미팅하 고 술·담배·본드 등 남들 하는 것은 다해 보죠. 그러나 다른 학교애들 과 부닥치면 짱끼리 1 대 1로 ‘맞짱’을 뜨는데 패싸움을 벌이기도 해요 . 우리가 맞으면 선배언니들에게 일러 다음 기회를 노리고, 언니들로도 불안하면 남자친구 패거리들에게 지원을 부탁하기도 해요. 거의 모든 애 들이 남학생들과 연계돼 있어 여자들끼리 싸움이 남자들 싸움으로 번지기 도 해요”라고 털어놨다.

이들이 폭력을 가하는 방법도 남학생 빰칠 만큼 흉포화하고 있다. 드라이 버나 몽둥이, 칼 등 흉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손발을 묶고 때리거나 피해자끼리 싸우게 강요하는 등 가학적인 방법도 사용한다.

군포시 한 중학교의 일진회 회원인 박아무개(13)양은 “지난 6월7일 자신 들과 사이가 멀어진 학교 동료 2명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왜 우리를 무 시하고 따로 노느냐”며 가죽혁대와 드라이버로 때리고 찌르는 등 폭력을 휘둘렀다. 이들은 또 피해 학생들에게 “지는 사람은 맞아 죽을 줄 알라 ”며 서로 싸움을 하게 했다. 피해 학생은 “집에 가서 부모님들이 왜 다 쳤냐고 묻자 집으로 오던 길에 불량학생들을 만나 맞은 것이라고 거짓말 을 했다”면서 “도망쳐도 같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맞 을 것같기에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폭력 여학생들은 자신의 조직에 가입을 거부할 경우 견디기 힘든 폭행과 협박을 가한다. 조직을 이탈한 여학생들에 대해서는 ‘배신자’로 찍어 보복한다. 친구들 사이에 소문을 퍼뜨리고 친한 친구들을 위협해 철저히 따돌림을 당하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남자 친구를 동원해 성폭행을 가 하는 잔인성까지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성아무개양은 자신이 가입한 학내 폭력서 클을 탈퇴하기 위해 아예 학교를 휴학하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는 등 나 쁜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폭력배들은 어떻게 알 았는지 학원까지 찾아와 “우리를 배신할 수 있느냐”며 협박하는 등 계 속적으로 괴롭혔다. 학교에서도 이 서클의 존재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별 다른 조처가 없었다고 한다. 이들을 피해 가출해 지방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그는 “이곳이 좋다. 서울엔 다시 가고 싶지 않 다”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중학교 1년인 주희(가명)는 초등6학년 때부터 중학생 언니들로 이뤄진 서 클에 들어오라는 협박을 받아왔는데 그때마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중 학교에 올라와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계속 폭력에 시달렸다. 그 뒤 언니들이 노래방으로 나오라고 해서 나갔다가 언니들의 남자친구들에 게 성폭행당했다.


‘재수없다’는 이유만으로…

(사진/학교폭력 피난처. 서울 강남구 영동중학교 앞의 학교폭력 지킴이 업소. )

한때 학내 폭력 서클에 몸담았던 강아무개양(18)은 “애들이 우리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끼리 스스로 위대하다고 느끼며 폭력의 맛에 길들여진다”면서 “그러나 이런 친구들은 아무리 서로 떼지어 다니 며 의리를 떠들지만 폭력의 도구로만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진정한 우정이나 서로간의 믿음 따위는 찾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여학생 폭력의 표적은 소극적이고 심약한 학생뿐만 아니라 잘난 척하거나 이기적인 학생, 교사들에게 인기가 있는 학생 등 광범위하다. 또 특별한 이유 없이도 ‘기분 나쁘다’거나 ‘재수없다’는 등의 이유만으로 집단 폭행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울 강남의 한 인문계 여고 2학년인 김아무개양(17)은 지난 4월말 학교 화장실에서 10여명에게 집단 구타당했다. 이날 체육시간이 끝난 뒤 화장 실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있는데 잘 모르는 동급생들이 화장실에 들어 섰다. 이들은 김양이 “빨리 비켜”라는 말을 듣지 않자 10여명이 돌아가 면서 주먹과 발로 무차별 구타했다. 김양은 “당시 친구들이 화장실에 들 어서다 내가 맞는 장면을 보고서도 아무도 말리려 나서지 않았으며 선생 님께도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이 일을 알게 돼 김 양이 학생부에 불려간 사실을 알고 3일 뒤 다시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 그동안 한번도 학교폭력을 당해본 적이 없었던 김양은 ‘창피하다’ ‘죽 고 싶다’는 생각에 아파트 옥상에도 올라가는 등 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은 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지난 6월20일에는 서울 ㄷ여중의 ‘12지장파’ 학생 12명이 학교 근처 공 원에서 후배 8명을 집단폭행했다. 폭력을 휘두른 이유는 “평소에 선배를 몰라보고 버릇없이 굴었다”는 것이었다. 지난 19일에는 길거리에서 만난 여중생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으로 끌고가 전깃줄로 묶고 7 시간 동안 감금한 채 몽둥이로 폭행한 윤아무개(14·중학교 제적)양 등 1 0대 3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집단 따돌림도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흔한 폭력의 한 형태다. 초등학교 5 학년인 수미(가명·12)는 선생님들에겐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로 인 정받고 있다. 그러나 수미는 친한 친구가 거의 없다. 이런 따돌림은 3학 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미술과 음악을 잘하는 수미는 그러나 이 과목시간이면 오히려 괴롭다. “그림을 그리려면 친구들이 도 화지나 물감을 발로 차고, 음악시간에 노래를 부르려면 야유를 보내요.” 점심시간에도 체육시간에도 수미는 외톨이다. 몇몇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 에게 “수미랑 놀지 말라”고 위협하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등 집요한 괴롭힘을 당했다. 그는 따돌림을 주도하는 친구들에게 “친하게 지내자” 고 했으나 친구들의 대답은 “넌 재수없으니까 싫어”였다. 수미는 엄마 와 선생님께도 이런 사실을 하소연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지메도 부쩍 늘어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김승한 상담간사는 “학교폭력이 성인범죄조직을 모 방해 집단화·흉포화되고 있으며 여학생 폭력도 예외가 아니다”면서 “ 특히 여러 학생이 집단적으로 한명을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이지메 현상이 여학생들 사이에 부쩍 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간사는 또 “현재 상담 건수는 중학생-고등학생-초등학생 순으로 고교생보다 중학생의 사례가 더 욱 많은 등 학생폭력이 연소화하는 추세”라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적극 적인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창은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7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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