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1997년06월19일 제 162호

래리 플린트

최미애/ 영화평론가

감독 밀로스 포먼/출연 우디 해럴슨, 커트니 러브

성조기로 만든 팬티를 입고 여자의 음부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형상 으로 매달려 있는 벌거벗은 남자의 모습. 이 도발적인 포스터는 세계적으 로 악명높은 포르노잡지, <허슬러>의 발행인이며, 음란물 간행죄와 종교 지도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법정모독죄 등등의 죄목으로 기소돼 20여년 동안 법정 투쟁을 벌여온 포르노 황제의 일생을 그린 영화, <래리 플린트 >의 것이다. 이 영화는 포르노와 같은 주변부, 하위문화에서 제기되는 쟁 점을 본격적으로 대중영화의 영역 안에 끌어들이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일단 주목을 받았다. 거기다가 이 영화의 제작진이 미국 내의 민 감한 정치적 사안에 계속해서 날카로운 촉수를 뻗쳐온 올리버 스톤과 체 코의 망명감독 밀로스 포먼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더욱 고 조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어떤 소설가가 외설시비로 법정에 끌려가고 모든 문화예술적 표현물들이 법률과 제도의 심의와 제한을 받아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적 포르노스타가 된 이승희가 금의환향이라는 수식어 로 장식된 채 모든 방송매체를 점거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사태가 벌어 지고 있는 이 섹슈얼리티 혼란의 시대. 포르노그라피는 이 성적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에 또하나의 묵직한 짐을 얹어 놓는다.

<래리 플린트>를 통해서 만약 포르노가 무엇인가, 포르노가 어떤 문화적 충동에 의해 발생하는가, 그리고 포르노가 정말 성적 폭력과 직접적인 관 련이 있는 것인가, 포르노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은 무엇인가 등과 관 련된 전반적인 포르노 현상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할 단서를 찾아낼 수 있 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아마 실망을 금 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래리 플린트>가 포르노를 다루는 방법은 지나 치게 선명하고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래리 플린트>는 포르노를 둘러싼 복잡하고 다양한 논쟁들을 단 하나의 충돌지점, 즉 비록 그것이 형편없이 저속한 포르노라고 할지라도 자유로 운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법과 제도와 도덕의 이름으 로 규제와 제한을 가해야 할 것인가라는 지점으로 집중시킨다. 그래서 섹 스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속물적인 래리 플린트와 미국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수정헌법 제1조 의 수호를 위해 투쟁하는 치기어린 젊은 변호사 앨런 아이삭맨이 함께 연 대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그들이 공동으로 대치하고 있는 적은 건전한 도덕과 가치를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창조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차단하며 모든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판정관 노릇을 하 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포르노그라피라는 논쟁을 다루는 영화의 이런 관점 때문에 영화의 전체적 인 구성은 래리 플린트와 보수적인 정치인, 법조인, 종교인 사이에서 벌 어지는 기나긴 법정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찌됐든 영화의 결말은 래리 플린트의 눈물겨운 승리와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승리, 그리고 미 국식 민주주의의가 거둔 또한번의 위대한 진보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 와 더불어 타고난 선동가 래리 플린트의 포르노를 위한 설득력 있는 항변 이 깊은 잔상을 남긴다.

그러나 우리는 <래리 플린트>를 통해서 ‘왜 항상 지배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포르노에 대한 마녀사냥에 가장 앞장서는가’를 재고할 기회를 가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것은 이 영화가 포 르노를 둘러싼 다양한 쟁점 중의 한 측면, 그것도 어쩌면 부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측면을 지나치게 부각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래리 플 린트>의 법정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순진해서 포르노를 둘러싼 복잡 다기한 논쟁들을 오히려 감추고 둔화시켜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포르노그라피를 둘러싼 진정으로 유의미한 논쟁은 대부분의 포르노그라피 가 성적 소비와 폭력, 차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여성이나 게이, 레즈비 언 등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논쟁과 일부 포르노그라피가 새롭게 제기하 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성적 쾌락을 둘러싼 논쟁을 전개시킬 힘을 내장시 키고 있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