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6월19일 제 162호

프랑스 공산당의 좌절과 재기

“프랑스 공산당이 전체 유럽의 발목을 잡고 있다.”

총선 결과 프랑스공산당(PCF)이 조스팽 내각에 3명의 각료를 진출시키면 서 프랑스 일각에서 나온 평가다. 이번 총선에서 9.9%를 얻은 공산당이 사회당과의 연정을 통해 유럽통합 등 유럽 전체 정치현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음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과반 확보를 위해 공산당 의 38석이 반드시 필요한 사회당으로서는 현재의 유럽통합에 적대적인 공 산당의 눈치를 봐야 한다. 이에 따라 ‘통화중심의 유럽통합’이 아닌 ‘ 노동자 연대 중심의 유럽통합’을 주창하는 공산당의 이념은 공산당의 득 표율 이상으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프랑스공산당은 동유럽·소련의 공산주의 블록이 붕괴한 뒤 유로코 뮤니즘이 줄줄이 자기 변신을 할 때도 고집스레 ‘공산주의 공동체’란 이상을 지켜왔다. 물론 프랑스공산당도 일당독재나 폭력혁명 등 ‘스탈린 주의적 폐해’를 없애는 데는 동의했다. 하지만 당명 변경 등 원론적 공 산주의 강령에 어긋나는 어떤 수정도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좌파의 지형이 이미 사민주의 위주로 바뀐 상태에서 프랑스공 산당이 현실정치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 드골 대통령 시절 30% 이상 유지하던 득표율도 옛 소련·동유럽의 ‘현 실공산주의체제’가 붕괴하면서 10%에도 훨씬 못미칠 정도로 떨어졌다. 또 “프랑스 지식인치고 공산당원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였던 대중성도 퇴색했다. 비판적 지식인이 대량 탈당하는 등 프랑스 공산당은 대중으로부터도 유리된 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는 옛 소련 공산당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며 모순이 많았던 소련 체제를 옹호했던 ‘오류’가 빚 은 결과이기도 하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대 초. 20여년간 ‘스탈린주의적’ 으로 당을 이끌던 당수 조르주 마르쉐가 물러나고, 젊은 신세대 개혁주의 자 로베르 위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로베르 위는 공산당의 민주화를 위한 정풍운동을 주도했다. 나름대로의 개혁시도지만 그 개혁은 공산사회 건설 이라는 원칙 속에서의 개혁이라는 점에서 다른 개혁좌파와는 다른 것이었 다.

이후 공산당은 선거 때마다 근소하나마 1~2%포인트씩 지지도를 회복해 나 갔다. 이번 총선에서는 9.9% 득표를 해 그간 목표선이었던 10%선에 거의 도달했고, 이런 지지도 상승에 힘입어 의석도 24석에서 38석으로 늘어나 다시 주요정당으로 재기했다.

하지만 국제화시대에 좌파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강한 상태에 서 프랑스공산당이 앞으로도 계속 이런 강령을 지켜갈 수 있을지는 미지 수다. 그러나 로베르 위는 자신있게 대꾸한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를 구현하는 일입니다. 이 이상은 지금까지 현 실정치에서 실현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공산주의의 실패니 뭐니 하 는 얘기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파리=최연구 통신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