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어린이 정책 시혜가 아니다

이기범 교수(숙명여대 교육학, 어린이.청소년의 권리 연대회의 실무대표)

-어린이·청소년 권리에 대한 인식은 어느 수준이라고 보는지.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든지, 학생의 체벌을 막으려는 움직임 등이 있긴 하다.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변화가 산발적이고 개 별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베푸는 시혜적인 차 원으로 이뤄지는 것도 한계다. 아직 조약이 정책추진의 방향이나 근거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보다 후진국이라고 하는 코스타리카나 필리핀 같은 나라에도 어린이 권리를 위한 옴부즈맨이 있다. 각 부처의 협조와 조정을 맡아 하는 중앙정부에 심의조정기구(국가위원회)도 있다. 우리나 라는 부처별로 업무가 나뉘어 있고, 업무를 맡더라도 공무원들의 인사이 동이 너무 잦아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업무를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조약의 내용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조약을 비준했다는 것은 홍보와 교육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뜻이다. 국민 에게 홍보해야 하고, 권리의 당사자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교육해야 한 다. 또 어린이들의 교육과 삶에 관련된 전문가들, 예를 들면 교사, 의사, 간호사, 복지사, 공무원, 법관 등에 교육시켜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아직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다만 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책자를 만들고 94년과 95년에 교육한 적은 있다. 대부분의 어린이 청소년들은 조약이 있 는지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다른 나라를 보면 텔레비전을 통해 조약 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린 예가 많다. 공익광고 형식으로 하면 영향력 있는 교육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공영방송이 강력하니까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쉽게 할 수 있다. 널리 알려지게 되면 어린이나 어 린이의 후견인들이 조약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조약이 판단의 지렛대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의적, 편의적으로 된다 . 국제법상 구속력을 가진다는 사실이 자꾸 알려져야 한다.

-조약이 너무 이상적이라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조약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렵다. 선진국들도 완벽한 조 약 준수에 자신감을 갖지 못해 비준을 늦춘 사례도 있다. 그러나 국제적 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는 정부의 몫이다. 국가위원회 설 립 등 정부부처의 이행계획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 권리를 제대로 지키 지 못해 생기는 문제를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이나 비행청소년의 문 제라는 식으로 몰아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 에 있다.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해 생기는 사회문제라는 인식을 가져 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부분을 먼저 실천할 수 있는가.

=미국에서는 아동의 자결권이나 표현의 자유에 중점을 두고 북유럽에서는 양육권 등 복지권을 더 강조한다. 한국은 기본적인 생존권, 성장을 위한 복지, 인격형성에 대한 지원 등이 시급하다. 아직도 남녀차별로 세상에 나오지도 못해보고 죽어가는 아이들이 무척 많다. 낙태율이나 성비의 불 균형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이들의 교통사고 사망률도 무척 높다.

-연대회의의 사업 계획은.

=어린이 지표를 만들까 한다. 예를 들면 장애아동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자료가 없다. 실태가 파악 안 되니 대책이 세워질 수 없다. 어린이의 의 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에 맞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일상생활에 대한 분석적인 실태파악이 시급하다. 학교에서의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사회봉사교육이나 환경교육은 되고 있는데 인권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 다. 아동학과, 아동복지학과, 교육학과 등 대학의 관련학과에서도 조약에 대한 교육내용은 없다. 변호사, 복지학자, 교육학자 등에서 조약에 대한 전문가들은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