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실종된 한보대출 ‘몸통’

지난 1달여 동안 국회 한보특위와 검찰이 한보사건의 `‘몸통’을 캐기 위한 청문회와 수사를 벌였지만,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현재까지 `몸통은 커녕 몸통의 꼬리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몸통을 자처하는 `‘가짜 몸통 ’ 즉, 깃털만 판치고 있을 뿐이다.

한보 청문회는 청문회의 제도적 한계와 의원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 내는‘성과’를 건졌을 뿐 한보 몸통의 실체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몸통의 일부로 지목받은 현철씨를 청문회장에 불러냈지만, 현철씨의 빼어 난 연기에 속수무책이었다.

김현철씨 한보 건에 면죄부만 준 꼴

현철씨는 청문회에서 정보근 한보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94년 가을 고교 선배인 청와대 오세천 비서관의 소개로 한번 만났을 뿐”이라며 친분설을 부인했다. 그는 심지어 “이성호 대호건설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박태중 이하고 보근이하고 술자리를 만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의사 박경 식씨의 진술을 부정했다. 현철씨는 또 “95년과 96년 현철씨와 보근씨가 술자리를 가졌다”는 역삼동의 한 룸살롱 마담인 C씨(34)의 증언을 확인 하는 국민회의 김경재 의원의 추궁도 “사실이 아니다”고 도리질쳤다. 그는 당연히 특혜대출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한보측으로부터 은행 대출 건으로 청탁받은 일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오히려 “한보쪽이 자신과 정보근 회장과의 친분설을 퍼뜨리는 것에 대해 새 정부 출범직후 당시 김무성 민정비서관이 한보쪽에 전화를 해 ‘현철이를 팔지말라’고 경고를 내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2천억원 리베이트설에 대해서도 “그 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현철씨 말대로라면 그가 한보 청문회에 증인 으로 불려나온 것 자체가 생사람잡기였던 셈이다.

검찰의 수사도 한보 몸통에서 벗어나 있기는 마찬가지로 보인다. 검찰은 외유중인 한승수 신한국당 의원과 임춘원 전 의원 그리고 한보특위위원인 김원길 국민회의 의원 등 3명을 제외하고는 `‘정태수 리스트 33명’ 가 운데 30명을 전원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대부분의 정치인으로 부터 한보 돈을 받았다는 자백을 얻는 `‘개가’를 올렸다.

검찰은 5월 초까지 보강수사와 나머지 3명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이들 중 돈의 대가성이 있는 정치인들을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많으면 10 명 정도가 구속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들의 수난이 또 한차례 뒤따를 전망이지만, 아무리 숫자가 많더라도 이들이 수조원에 이르는 한보 특혜 대출의 배후일 수는 없다. 2억원을 받은 문정수 부산시장을 빼고는 한보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의 수수액은 1천만원에서 5천만원 정도에 그치는 `‘사소한’ 금액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대출 압력을 행사했다는 흔적은 더더구나 없다. 검찰이 정치인들의 행위에 비해 지나치게 요란을 떨었다 는 회의감과 곁가지 수사로 몸통 수사를 비켜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만 더해주는 대목이다.

사법처리도 한보와 관계 없는 ‘별건’

현철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4월28일 현철씨의 최측근인 박태중 심우(주 ) 회장에 대한 소환을 시작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 역시 현재로서는 한보 대출의 배후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현철씨의 개인 적인 비리 등 미세한 ‘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몇몇 기업체로부터 현철씨쪽으로 돈이 흘러들 어간 꼬리가 잡히고 있다”며 “현재대로라면 그에 대한 사법처리는 문제 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현철씨의 사법처리는 한 보와 관계없는 `‘별건 구속’일 뿐이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박태중씨가 한보의 정보근 회장으로부터 최소한 1억5천만원 이상을 전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그러나 이 돈이 현철 씨에게 건너갔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나 더라도 현철씨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현철씨 골문지 기인 박씨는 검찰에 소환되기 전에 “문민정부 출범이후 현철씨가 이권 사업에 개입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검찰은 몇몇 정치인에 대한 구속과 현철씨에 대한 별건 사법처리 로 한보 사건을 종결지을 가능성이 크다. 한보 몸통 찾기는 물건너 가기 직전이다.

정권 바뀐 뒤에나 몸통 드러날 것

91년 한보의 수서택지 분양 특혜사건 때는 장병조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 이 몸통의 구실을 대신했다. 그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썼지만, 정권이 바 뀐 뒤에야 진실이 밝혀졌다. 지난 95년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수사 때 수서사건의 몸통은 91년 한보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1백50억 원의 뇌물을 받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었음이 드러났다.

수서사건 6년 뒤에 일어난 한보사건의 몸통은 현재 청와대 청무수석을 지 낸 홍인길 의원이 자처하고 있다. `불면 날아가는 ‘깃털에 불과하다’고 초기에 주장한 홍인길 의원도 청문회에서 “깃털없는 몸통이 어디 있느냐 ”며 몸통-깃털 일체론을 내세웠다. 그가 대신하고 있는 사라진 몸통은 누구일까. 그 역시 다음 정권에서야 밝혀질 것인가.

김종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