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바운드

최미애/ 영화평론가

감독 래리 워쇼스키, 앤디 워쇼스키/ 출연 제니퍼 틸리, 지나 거손

강렬한 여전사의 이미지를 지닌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이나 <에일리 언>의 시고니 위버가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남성적인 여 성, 남성 못지 않은 지적능력과 전투능력을 지닌 강한 여성이라는 사실만 으로도 충분히 흥미와 자극을 느꼈다. 이 새로운 유형의 여성 이미지를 둘러싼 당시의 논쟁은 이렇게 남성화되어가는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상이 라고 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런 논쟁들과는 무관하 게 그들이 지닌 여전사 이미지가 아주 매력적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래리와 앤디 워쇼스키 형제가 만든 <바운드>는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에서 보여졌던 여전사 이미지 위에다가 레즈비언 관계를 대담하게 부각시키면 서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들어내는 영화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할리우드에 서 20여년 동안 공동작업을 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어쌔신>과 같은 스릴러, 액션영화를 위한 시나리오집필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 동안 시나리오작업에만 집중해왔던 워쇼스키 형제의 장편 극영화에 데뷔 작인 <바운드>는 서스펜스와 스릴, 극적 긴장과 고도의 지적 게임을 즐기 는 워쇼스키 형제의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나 있는 영화다. 그러나 그들은 한편의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에 만족하지 않고 레즈비언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여자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실험을 한다.

이제 막 출감한 코키(지나 거손)는 과거를 청산하고 아파트 용역일을 하 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한다. 그녀는 우연히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 피아 조직원 시저의 정부인 바이올렛(제니퍼 틸리)을 만난다. 코키에게 첫눈에 반한 바이올렛은 그녀를 유혹하고 코키는 바이올렛의 유혹을 받아 들인다. 그러나 이 둘의 관계가 마피아 세계의 갈등과 암투와 뒤엉키면서 상황은 숨가쁘게 급진전된다.

워쇼스키 형제는 <바운드> 도입부분에서 관객에게 강한 충격을 가하고 시 선을 끌기 위한 장치로 코키와 바이올렛의 노골적인 섹스 장면을 설정해 놓고 있다. 일반 극장 상영용 영화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더구나 한국적 인 상황에서는 더욱 보기 힘든 이런 장면들은 보는 이들을 상당히 당황스 럽게 만들고 해석의 곤란함을 느끼게 만든다.

과연 코키와 바이올렛과 같은 유형의 동성애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한국 사회가 레즈비언이라는 성적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 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워쇼스키 형제가 영화의 도입부에 코키 와 바이올렛의 관계를 배치한 좀더 함축적인 의도는 무엇인가, 왜 관객들 은 코키와 바이올렛의 관계에서 영화적 쾌락을 느끼는가, 영화의 종결부 분에서 코키와 바이올렛이 마피아 조직을 멋지게 해치우고 애정의 도피행 각을 떠나는 장면이 왜 그처럼 색다르게 느껴지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레즈비언과 영화의 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레즈비언 에로티시즘과 포르노그라피에 대한 연구 성과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연구들은 레즈비언 필름메이커들이 레즈비언 사이의 섹스 장면을 스크린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포르노그라피들(남성관객을 소 구대상으로 한)이 여성들 사이의 성적 관계를 관습화된 포르노 코드로 사 용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엠마뉴엘> 같 은 영화가 레즈비언 섹스 장면을 포르노그라피적인 시각적, 음악적 코드 와 결부시키는 것은 단지 레즈비언이라는 성적 정체성을 가진 관객을 끌 어들이기 위한 상업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바운드>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흥 미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풀어내야 할 의문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된다. 코키와 바이올렛의 관계는 단순히 레즈 비언 포르노그라피의 코드만을 얄팍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인가, 아니 면 아주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의 형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성의 섹 슈얼리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