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3년 만에 2집음반 내놓은 꽃다지

“언덕길 비추는 저 하늘 별빛처럼 그렇게 살며시 세상을 밝혀야지”(`언 덕길' 중)

지난 연말 총파업 시민항쟁 당시 거리와 현장을 누비며 시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노래패 ‘꽃다지’가 또다른 모습으로 시민들을 찾아온다. 3 년 만에 발표한 2집 음반을 들고서. 꽃다지는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을 중심으로 5월2일부터 11일까지 마당세실극장(02-737-5773)에서 콘서트를 연다.

5명의 남녀가수, 6명의 연주자, 다양한 스탭들로 구성된 꽃다지의 노래는 얼핏 들으면 80년대 민중가요를 그대로 계승한 것 같지만 ‘민중가요’라 는 이름에서 풍겨지는 구닥다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꽃다지는 록, 발라 드, 컨트리, 풍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노동가요’라는 자신의 용광로에 집어넣어 나름대로 독창적(?)인 음악을 창출해 내고 있 는 것이다.

한명의 탁월한 리더싱어에 의해 이끌리는 일반 그룹들과는 달리 멤버 누 구나 독창이 가능한 뛰어난 가창력을 지녔다는 점이 다양성을 꽃피울 수 있는 바탕이다.(이는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이번 음반에도 화려하진 않지만 다채로운 음악성이 엿보인다. 안치환 작 곡의 타이틀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선 ‘이성’의 안정현과 ‘야 성’의 김용진이 멋진 앙상블을 보인다. 말을 달리듯 긴박하게 조여오다 후렴에서 시원스레 확 터뜨리는 대목에선 가슴이 시원하다.

어쿠스틱 기타의 8비트 아르페지오와 스트로크로 시작하는 <언덕길>은 컨 트리풍이다. 노동자가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끼는 정 감을 읊은 이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 라인에 노을진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 는 모습을 표현한 퍼쿠션의 경쾌한 리듬으로 인해 도시노동자들을 이야기 한 가사와는 달리 시골정경이 떠올려진다. 김미정의 편안한 보컬은 신형 원, 권진원과도 일면 비슷해 보이지만 나이 때문인지 김미정쪽이ㄴ 훨씬 청량감 있다.

도종환의 시에 곡을 붙인 <강>은 한국적 록이다. 민중의 삶을 흐르는 강 물에 비유해 단호한 어조로 형상화한 도종환의 원작시를 풍물 삼채장단을 바탕으로 표현했다. 가수 서기상의 굵고 거친(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포 효음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70년대 말 그룹사운드 분위기를 풍기는 단 순한 리듬이 곡의 맥을 이루고 있으나 풍물연주가 록음악의 증폭된 사운 드에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 힘차게 울린다. 날라리에 리더기타 하이포지 션의 현란한 주법, 북소리 같은 베이스 끝부분 ‘이야~’라는 긴 외침과 메아리처럼 ‘기잉’하는 기계음의 겹침은 마치 비장한 영화의 마지막 장 면과도 같다.

한곡만 더 소개하자면, <강>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접동새>.

아내에 대한 가슴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 철도노동자의 원작시에 김호철이 선율을 얹었는데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이 어우러져 서정적인 텔레비전 주제가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랑가를 배워 불러준다 고 고운 눈물을 삼키며 내밀던 작은 손/가로 막은 창살 사이로 짙은 어둠 이 밀려나오고”라는 순애보 가사와 가슴의 여린 결을 건드리는 윤미진의 처연한 노래를 듣노라면 금세 눈 가장자리가 시큰하다. <여명의 눈동자> 나 <모래시계>가 떠올린다면 난센스일까?

꽃다지는 이처럼 다양한 색깔 때문에 ‘노동가요’라는 한정된 이름으로 이들을 제한시키기가 아깝다. 이들이 ‘노동가요’라는 칭호를 얻은 이유 는 노래보다 그 몸짓 때문일 것이다.

꽃다지는 지난 4월23일부터 오는 5월31일까지 매주 수요일 낮 12시~오후 1시까지 여의도우체국 앞 증권가에서 ‘북녘동포돕기 거리공연’을 벌인 다. 꽃다지의 노래가 우리 가슴에 더욱 와닿는 것은 이들의 삶이 이처럼, 자신들이 부르는 노래처럼 우리 삶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내 작은 목소리로 다른 이들을 노래하고/너와 나의 목소리로 세상을 노 래하면/언젠간 이룰거야 노래만큼 좋은 세상/…/내 맘에 지지않는 별 하 나로 뜨지”(<노래만큼 좋은 세상> 중)

권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