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야기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금주령은 오래가지 않는다

`언터쳐블'이라는 영화에서 밀조단과 검사가 숨막히는 대결을 벌이던 장 면이 기억난다. 당시엔 미국 전역에서 시행된 금주법으로 술의 제조와 판 매가 일절 금지됐다. 술거래는 마치 마약거래와 같이 취급됐다. 자유의 신천지인 미국에서 어떻게 금주법이 생겨났을까?

1차대전 직후 미국은 대공황에 휩싸였다. 그때만 해도 여성들의 사회활동 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음주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아마 당시의 미국 남성들은 서부영화의 한장면처럼 바에서 위스키 병나발을 불고 난폭한 행 동을 일삼았나 보다. 남성들의 술주정과 경제난에 화가 난 여성들은 일치 단결해 금주법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그뒤 과연 여성들이 뜻했던 대로 됐을까? 술을 못 마시게 된 남성들은 우 울증에 걸렸다. 집에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가장이 늘어났다. 또 ` 언터쳐블'에서와 같이 주류밀매 조직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마약이 창궐 했다. 사회 분위기는 극도로 어수선해졌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자 여성 들은 옛날이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여성들은 이번에도 일치단결해, 금주 법은 폐지됐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역사에서도 금주령이 여러 차례 시행됐다. 세종대왕은 술을 경계하는 글(誡酒敎書)을 인쇄해 전국에 포고하기도 했다.

“술을 만든 것은 천지신명을 받들기 위해 제사를 지내거나, 손님을 대접 하고, 늙은이를 봉양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를 무시하여, 풍속이 심히 우려할 만큼 나빠져 술로 인한 화가 심하게 되었다. 그 폐해 는 곡식을 없애고 재물을 허비하며, 안으로는 마음과 뜻을 흐리고 밖으로 는 위신과 예절을 잃어서, 작게는 건강을 해치고 집을 망치며 크게는 기 강을 문란하게 하여 나라를 망친다. 그러므로 대소 신민들은 이전 사람들 의 득실(得失)을 보아서 술 마시는 것으로 일을 그르치지 말며, 지나치게 마시어 병이 되게 하지 말며, 각각 행동을 조심하여 예절을 잃지 말고, 술을 삼가해 좋은 풍속을 이루게 하라.”(`장헌대왕실록' 제62권)

이같은 포고문은 가뭄으로 흉년이 드는 해엔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했다. 사람이 굶는 판에 곡식으로 술을 빚을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러나 금주령은 얼마되지 않아 폐지되곤 했다. 아마 미국에서와 같은 상황 이 벌어졌던 것 같다. 나라법도 술을 막지 못한 것이다. 금주령이 지속되 지 않은 것은 음주가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이종기/두산씨그램 생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