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서울시 공덕동 주부 박영희씨

박영희(50)씨는 지난해 5월, 남편과 단둘이 백암온천을 찾았다. 결혼 30 년 만에 처음 떠난 여행이어서, 신혼여행 때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 나 막상 온천에 도착하니 맘에 드는 민박집을 찾기 힘들었다. 장터처럼 북적대는 분위기가 왠지 내키지 않았다.

박씨는 한적한 민박집을 찾아 산 아래로 한참 들어갔다. 그때 감나무 한 그루가 삐죽이 서있는 허름한 농가 한채가 눈에 띄었다. “대문도 없었어 요.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여든 정도 돼보이는 할머니가 혼자 도라지를 다듬고 있었을 뿐이었죠. 어릴 적 고향 생각이 나서 묵기로 했죠.”

행장을 풀고 막 저녁식사를 하려 할 때였다. 안방에서 고추장과 김치만 놓고 식사를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음식이 목에 콱 메이 는 것 같았다. “저와 남편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거든요. 갑자기 고생 만 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밥상을 통째로 들고 할머니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할미 ’ 냄새 난다며 어려워하던 할머니도 “모처럼 사람사는 집 같다”며 주 름살을 폈다. 그렇게 할머니와 ‘정’이 싹텄다. 다음날부터는 아예 부엌 에 들어가 할머니 밥까지 안쳤다.

할머니는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밭 한 뙈기없이 품앗이로 평생을 살았 다고 했다. 슬하의 6남매는 모두 객지에서 넉넉하지 못하게 살고 있고, 할머니는 도라지를 다듬어 관광객에게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간다고 했 다. 박씨 부부가 떠나는 날, 할머니는 빨간 앵두 한소쿠리를 배낭에 꼭꼭 챙겨줬다. “별것 아니지만, 차안에서 먹으라”는 말과 함께.

올 3월 초, 박씨 부부는 다시 그집을 찾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홀로 계셨 다. 다시 헤어지는 날, 할머니는 이번엔 메주 세 덩어리를 챙겨줬다. 자 식들에게 주려고 쒀놓은 메주라고 했다. “내년에 또 올라나. 아무래도 애기엄마 보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 할머니와 박씨 부부의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고 한다.

박씨는 용돈에 보태 쓰라며 3만원을 할머니 손에 꼭 쥐어주었다. 집을 나 서면서 뒤돌아 보고 또 뒤돌아 보았다. 할머니도 박씨 부부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가 준 메주로 간장을 담갔습니다. 장독에서 장을 뜰 때마다 할머니의 애틋한 모습이 겹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