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우리맛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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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경의 우리맛 기행 |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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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은 밥을 중심으로 하여 주식과 부식으로 나뉜다. 밥이 주식이고 , 부식 가운데선 국이 첫 순위에 든다. 그래서 반상차림에는 밥과 함께 반드시 국이 따라나와야 했다. 그 밖에 국물이 있는 부식으로, 상차림에 따라 5첩상이나 7첩상인 경우 찌개가 한가지 또는 두가지가 오른다.
국이나 찌개와 구별해 탕(湯)류가 있다. 탕이 국이나 찌개와 다른 것은, 국이나 찌개는 어느 때나 밥과 함께 부식으로 먹었지만, 탕은 일상식이 아닌 계절식이거나 보양식의 개념으로 ‘식약’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 문이다. 또 국은 갱(羹)이라 해서 맑은 장국의 개념으로 밥에 따라나오는 것이었고, 탕은 진국 또는 곰국의 개념으로 밥이 곁들여졌다. 따라서 탕 과 함께 먹는 밥은 탕반(湯飯)이라 해 탕을 앞세운다.
탕은 그 종류가 퍽 다양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곰탕과 설렁탕, 사골탕( 骨湯), 삼계탕, 백합탕, 토란탕, 애탕(艾湯), 용봉탕, 꼬리탕, 대구탕(魚 湯)등이 모두 탕류에 속한다.
조선시대 문헌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도 국과 탕을 구별해 “羹以菜爲 主 湯以肉爲主” 즉 국은 야채가 주고 탕은 고기가 주가 된다고 했다.또 다른 요리서에도 탕은 음료와 약용이라고 구별짓고 있다.
그만큼 탕은 국에 비해 국물이 진하고, 조리과정도 공이 많이 들어간다. 재료의 선택도 일반 국거리보다 진귀할 뿐더러, 약재가 포함되기도 했다. 이처럼 만들기가 까다로운 탓으로 그 가짓수가 점점 줄고 있고, 곰탕과 설렁탕, 해장국인 선지탕, 그리고 꼬리탕과 우족탕 등 대중화가 가능한 것들만이 그런대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나마 조리과정이 개선되면서 맛 역시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탕류 중에도 쉽지 않은 양탕을 예전의 맛 그대로 끓여내는 집이 있다. 서울 서교동, 홍익대학교 앞 동촌집(335-0066)이 그곳이다. 그 내 력이 십년이 넘는다.
양탕은 본래 양포탕이라 하여 궁중 탕류에도 들었고, 일반 서민들도 병후 쇠약해진 몸을 추스리거나, 환절기 가족들의 몸을 보양하는 보양재로 잘 알려진 음식이다. 그래서 끓이는 방법도 지역이나 집안의 가풍에 따라 격 식이 다양하다.
동촌집의 양탕은 그 격에서도 궁중 수라상에 오르던 정도의 수준에 해당 한다고 칭찬할 정도로 정성스럽다. 주인 조정강(趙靜江·60)씨는 임란 때 순절한 의병장 중봉 조헌(趙憲)의 12대 손으로, 집안에 내려오는 계절식 인 양탕과 양죽을 그대로 재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들면서 체력을 보하기 위해 큼직한 무쇠솥에 양탕과 양죽을 끓여 온 식구가 먹었다고 한다.
양탕은 끓이기 전 먼저 한우 암소의 사골을 구해, 잘 씻어낸 다음 20시간 가깝게 푹 고아 육수를 낸다. 우유처럼 뽀얗게 우러난 육수에 마늘과 밤, 대추, 인삼 등을 넣고, 다시 한번 푹 끓여 졸이면 말 그대로 진국이 된다 . 그리고 소의 양포(胃腸)를 뒤집어 굵은 소금으로 문지르며 깨끗이 씻어 팔팔 끓는 물에 데쳐낸 다음, 까만 포막을 걷어내 하얗게 다듬어진 건지 를 마련한다.
양탕은 이 진국에 준비된 양을 넣고 양이 푹 익도록 한소끔 더 끓여 상에 낸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깊은 맛이 소뼈로 한 느낌이 전혀 없다. 보들보 들하고 고소한 양도 버섯처럼 부드럽고 여느 고기에서 느끼는 질감과 다 르다.
이 국물에 찹쌀을 참기름에 볶다가 함께 넣어 까륵하게 끓이면 바로 양죽 이 된다. 고소하고 깊은 맛이 역시 더할 나위없는 보신제다.
양탕과 양죽을 먹을 때는 별다른 반찬이 필요없다. 짭짤한 장아찌나 무말 랭이 무침에 잘익은 김치가 따라나온다. 몸이 나른해지기 쉬운 봄날, 춘 곤증을 떨쳐버리기에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위장 보호하고 기력 돋운다
양은 소의 위 주머니로, 위포라고도 하는데 뒤집어 놓으면 마치 까만 타 올 같다. ‘간천엽’이라고 해 간과 함께 날로 먹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가까운 정육점에서 신선한 양을 알맞게 사다가 잘 씻어 맛깔 스러운 영양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굳이 사골국을 마련하지 않아도 양을 푹 고아 뽀얗게 우러나는 국은 위장을 보하고 기력을 돋우는 데 손 꼽히는 영양식이다.
동촌은 홍대 정문 앞 서울은행 건물 뒤쪽에 있다. 주차공간이 넉넉한 편 이지만 지하철을 이용해 홍대역에 내려 5분쯤 걸으면 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