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에게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중용의 미덕 보고 싶다

`한겨레21' 창간 이래 3년 동안 한호도 거르지 않고 구독해 온 독자다. ` 한겨레21'이 처음 창간했을 당시에 다른 주간지들은 사회문제에 변죽올리 기식의 비슷한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겨레21'의 참신하고 도 도전적인 문제제기는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고, 이 성원 이 짧은 시간에 `한겨레21'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믿는 다. 이제 창간 석 돌을 넘기고 한층 더 발전하는 `한겨레21'을 만들기 위 해 편집진들이 고쳤으면 하고 그동안 생각해 왔던 점을 몇 가지 적어본다 .

먼저 보도에서 다른 언론의 모범이 될 만큼 공정을 유지해 주었으면 한다 . 내가 `한겨레21'을 보는 이유는 다른 언론에서는 심각하지 않게 넘기는 문제들을 과감히 제기하고, 사회적 편견이나 기존의 가치관에 묻혀서 들 리지 않는 소수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갖는 모습 때문이다. 특히 환경, 통 일, 인권, 노동과 관련된 보도는 다른 매체에서 찾기 힘든, `한겨레21'만 의 시각이 돋보였고 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데 감사한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하는 의견을 좀더 강조해야 할 필요에서인지는 몰라도 , 서로 다른 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한겨레21'에서 한쪽의 의견 을 더 돋보이게 소개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되는 것 같다. 대립되는 쟁점 이 있을 때 여러 의견을 함께 소개해 독자로 하여금 문제를 좀더 정확히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도 기사에 더욱 신뢰를 갖게 한 다고 믿는다. 대립하는 두 의견 중 어느 한쪽의 의견이(또한 그다지 옳다 고 생각되지 않으면서도) 언론의 부당하리만치 일방적인 엄호 아래 우위 를 차지할 때, 다른 쪽의 의견이 상대적으로 무시되는 현실을 보면서 나 또한 분노하게 되고,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도 잘 알고 있다. 또한 어떤 이는 다수 언론에 의해 충분히 지지받고 소 개되는 의견을 굳이 `한겨레21'에서 나란히 실어야 할 필요가 무엇이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내가 아쉽게 여기는 점은 사건에 대한 궁극적 판단을 독자에 게 맡겨달라는 것이다. 물론 두 개의 다른 목소리가 진실을 놓고 대립할 때 어느 한쪽의 결백을 독자에게 호소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언론은 사회문제의 본질을 편견에 입각하지 않고 독자에게 공 정하게 전달하는 것을 제1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언론이 독자 대신에 모든 것을 판단해서 하나하나 일러주는 ‘모범 답안지’가 될 필요는 없 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국내정치와 관련된 보도에서 여전히 추측에 기댄 기사가 많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서구나라들 수준의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지 못하고, 지금까지 권력의 획득과 이양이라는 가장 기본적 인 수준에서도 매사가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처리되는 경우를 찾기가 쉽 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비록 이런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국내정치 관련 보도에서 추측과 예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한다 .

이 점은 특히 정치권의 인사나 최고통치자의 의중을 살피는 기사에서 더 욱 심해진다. 그러나 정치를 특정인의 심리나 행보위주로, 권력간의 흥미 진진한 파워게임을 보듯이 보도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극복하고 이뤄내야 할 과제를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 이에 따라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치기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마음에서 `한겨레21'이 기존 정치보도의 관행을 깨는 변화에 앞장서 주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란에 대한 의견이다. 독자의 소리를 싣는 이유는 `한겨레 21'의 기사를 보완해 주는 의견을 들어보고, 때로는 직접적인 반론을 살 펴봄으로써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하는 순기능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란에 실리는 내용은 이전 기사에 반영 되지 못했던 좀더 다양한 의견들 위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보도에 대한 반론과 반대의견은 이런 점에서 독자들에게 또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최근의 독자란은 `한겨레21'에 실렸던 기사를 읽고 서 독자들이 마음에 들었던 점, 좋았던 점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아서 아쉽다. 독자란이 이전 호의 기사를 다시 반복하면서 이를 긍정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면 굳이 독자란을 읽을 이유가 없으며, 이는 편집하는 분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조기정/ 서울 서초구 서초4동 유원아파트 103-1008·하이텔 EXPRESS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