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기자의 인물탐구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양아치 가문의 마지막 후예, 윤팔병

(사진/그는 고물로 먹고 산다. 남이 쓰다 버린 것들이 곧 그의 밥이 되고 옷이 된다.)

서울 영동다리 밑에 집이 하나 있다. 다리가 통째로 지붕이 되어 눈비를 막아주는 곳이다. 문패가 제법 그럴듯하다. 넝마공동체 자원재활용연구소 .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도무지 연구소와 거리가 멀다. 찌그러진 함석 으로 둘러친 마당엔 온갖 고물들이 쌓여 있고, 방이란 건 컨테이너를 개 조해 그럭저럭 살림을 갖췄을 뿐이다. 화장실은 아직도 옛날 뒷간 그대로 고. 이곳에서 우리나라 양아치(넝마주이) 가문의 마지막 후예들이 살고 있었다.

“내가 버려야 진짜 쓰레기”

윤팔병(57)씨는 이 가문의 큰형님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남이 버린 것에 기대어 산 덕에 오른 자리다. 환갑을 앞둔 나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고물 을 주우러 새벽잠을 깬다. 사람들이 쓰다 버린 종이며, 옷가지, 빈병 따 위가 모두 그의 밥줄이다. 양말에서 바지, 셔츠, 심지어 속옷까지도 돈주 고 사는 법이란 없다. 그가 보살피는 모든 물건은 오로지 고물이다. “넝 마주이란 게 원래 그런 거야. 남이 버린 것으로 먹고 사는 거지. 이 세상 의 모든 물건은 내가 버려야 진짜 쓰레기가 되는 거라고.”

그러고 보니 자원재활용연구소라는 문패가 괜한 게 아니다. 그는 넝마주 이를 “변변한 자원 하나없는 나라의 애국자”로까지 추어올린다. 그러면 서 “나라도 그걸 알아준다”고 너스레다. 그런데, 그게 참 기막히다. “ 넝마주이는 죽을 때 딱 한번, 나라의 신세를 지지. 살아선 나라의 구박과 냉대를 받지만, 죽어선 대접을 받는 거야. 넝마주이가 늙고 병들어 숨이 깔딱깔딱 하면 가마니로 둘둘 말아 파출소 옆에 뉘어놓고 내빼는 거야. 그러면 순경들이 툴툴거리며 시체를 시립병원으로 넘기지. 병원에선 후다 닥 화장을 시키고. 국장인 셈이야.”

넝마공동체란 문패 역시 빈말이 아니다. 넝마주이들은 6�25 직후 대한산 업이란 이름으로 처음 조직됐다고 한다. 이것이 5�16 뒤에는 재건대로 불 리며 명맥을 이었다. 그러다 전국 규모의 조직이 점차 사라지고, 곳곳에 막(고물을 부리는 사설 작업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마리(왕초)가 넝마 주이들을 거느리고 세를 뜯는 험악한 곳이었다. 넝마공동체는 그런 착취 를 공동의 이름으로 추방했다. “애초에 없는 놈들이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어.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굶어죽지는 않아. 남들하고 함께 사는 게 중요한 거야. 특히 없는 놈들일수록 더불어 살아야 고생을 덜 한다고.” 윤씨의 양아치 인생은 6�25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남매의 여덟째(그 래서 팔병이다)로 태어난 그는, 서울에서 전쟁을 맞았다. 형님들이 모두 가방끈이 길다보니, 사회주의물이 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인민군이 물러 가자 형님들은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독기서린 우익의 공격을 받았다. 총 에 맞아 죽고, 고문당하고, 그러다 행방이 묘연해지고. 재산 같은 건 애 시당초 지킬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식구들이 목포 로 도망쳐 왔을 때, 그야말로 남은 거라곤 달랑 목숨 하나뿐이었다.

화투짝 수만큼 단 ‘소년원 별’

(사진/헌책방에서 번 돈을 몽당 넝마공동체에 쏟아부었다. 요즘은 자릿세도 빠지지 않는 장사지만, 그때 공이 고마워 버리지 못한다.)

윤씨는 살길을 찾아 넝마주이로 나섰다. 동생과 함께 시장바닥을 돌며 돈 이 될만한 것은 닥치는대로 주워 추렁(넝마주이들이 어깨에 걸치는 바구 니)에 담았다. 그 동생이 얼마 전까지 충북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윤구병 씨다. 철학박사를 동생으로 둔 넝마주이(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3학년 중 퇴다)라니. 한데, 윤씨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히려 “티껍다” 고 한다. “난 배운 놈들 좋아하지 않아. 전부 사기꾼 같아 만나면 속이 편치 않다고. 구병이도 그래. 무슨 실험학굔가 한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교육보다 먼저 정치를 고쳐야지.”

윤씨의 인생은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이후에도, 계속 밑바닥을 굴렀다. 구두닦이에서 앵벌이, 펨푸, 노점상, 깡패짓까지 안해본 게 없다고 한다. 학교(교도소) 신세도 꽤 졌다. 소년원 별(전과)은 화투짝 수와 같을 정도 다. “법이란 게 참 우습더라고. 방범기간이면 경찰이 건수를 채우기 위 해 부랑아들을 잡아들였는데, 난 항상 같은 죄목이었지. ‘주거 부정, 직 업 무, 우범지대 배회하며 무위도식하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불안감 조 성’이라고 말야. 한데, 즉결에서 어떤 날은 무죄고, 어떤 날은 며칠씩 구류가 떨어지는 거야. 법이 정의의 저울이라는 거 새빨간 거짓말이야. 판사가 전날에 부부싸움이라도 하고 나오면 재수 옴붙은 거지.”

사기도박에 걸려 가진 돈 다 날리고, 부산으로 떴다. 마땅히 갈 데가 없 는 몸이라 선창가 거지합숙소에 들어갔다. 합숙소는 부둣가 깡패들의 먹 이였다. 그들은 합숙소를 안방처럼 드나들며, 거지들이 빌어온 동냥을 뜯 어먹었다. 소장까지 한통속이었다. 혼쭐을 내주리라 작정했다. “깡패 한 놈을 두들겨 패고, 합숙소 대표가 됐어. 그 얼마 뒤, 용두산 타워 준공식 이 열리더군. 거지 몇명과 함께 용두산으로 달려가 다짜고짜 부산시장을 만났지. 비서가 앞을 가로막는 걸 힘으로 밀어붙인 거야. 그날로 소장이 갈리더라고. 거지들도 힘을 합치면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 그래서 서 울로 올라가 넝마공동체를 꾸렸던 거고.”

넝마공동체는 처음엔 50여명의 식구로 출발했다. 헌책방을 하며 번 돈으 로 막을 사들여 공동체의 터전으로 삼았다. 넝마주이들의 호응에 힘입어, 식구들도 많아지고, 막도 3곳으로 늘었다. 그러나 금세 위기가 닥쳤다. 수입파지가 밀려들면서 종이값이 곤두박질쳤다. 1kg에 1백원하던 것이 80 원으로, 50원으로, 급기야는 15원으로 폭락했다. 종이를 쌓아두고도 비를 맞혀 썩힐 수밖에 없었다. 식구들도 하나둘씩 떠나갔다. 이제 영동다리 밑에 남은 집이 유일한 넝마공동체가 되고 말았다. “정부가 쌀값처럼 고 물값을 보장해줘야 해. 1kg에 1백원은 돼야 생활을 할 수가 있다고. 안 그러면 고물 먹고 사는 사람 다 죽어.”

난생 처음 장미꽃을 산 사연

그런 살림에도, 그는 얼마 전 북한동포돕기에 2천만원을 내놓았다. 공동 체 식구들의 보금자리인 18평짜리 아파트 두채의 전세금을 올려줘야 할 돈이었다. 동포가 굶어죽는다는데, 제 앞가림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 게 넝마주이의 사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모든 게 남의 것이었으니 까. 땅에 묻힐 때, 여벌의 옷이 남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 제가 생겼다. 아내에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마누 라가 무슨 죄가 있어. 양아치 만나서 좋은 시절 고물더미에 묻혀 보낸 불 쌍한 여자지. 2천만원 모으느라 허리뼈 휘도록 고생한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장미꽃을 샀다. 한 송이만 사려고 했는데, 그렇게 는 안 판다고 해, 큰맘 먹고 일곱송이 묶음을 샀다. 1천원짜리 지폐 일곱 장을 내밀 때, 손이 영 어색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 식탁 위에 낼름 꽃다발을 던졌다. “선물이야.” 그러자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쏘아붙이는 거였다. “참! 2천만원짜리 장미꽃을 다 받아보네.”

윤씨는 그런 아내가 너무 고맙다.

사진 정진환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