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진보진영 “우리는 국민후보!”

(사진/민주노총쪽은 국민후보의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중앙위원회 모습.)

　진보진영에서도 제3후보의 가능성에 한때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제3후 보라면 먼저 조순 서울시장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대부 분 인사들은 이제 제3후보론에 회의적이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생애 마지막 기회가 될 이번 대선에서 결코 출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 단에서 그렇다.

진보진영 안에서는 이번 대선에서 신한국당의 재집권을 막고 정권을 교체 해야 한다는 당면 목표에는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고 민이 있다. 하나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보수회귀가 갈수록 짙어간다 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DJP단일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제3후보는 물건너 간 셈

우선 “김 총재의 출마포기를 전제로 한 제3후보는 이제 물건너 갔다”는 시각이 진보진영 인사들 사이에는 지배적이다. 이를 추진할 중심주체가 과연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은 최근 `민주연합을 대표하 는 ‘국민후보’론으로 대선방침을 사실상 확정했다. 진보진영과 야권의 보수회귀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운동세력이 중심이 돼 독자적으로 대선후보 를 내는 방안이다.

국민후보론은 흔히 말하는 `‘독자후보론’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이 른바 `‘독자후보론’이 그동안 진보진영 안에서 “민주적인 야당세력과 연합하는 이른바 민주연합론”에 대립하는 논리였다면, 국민후보론은 더 이상 야권을 민주연합의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고, 대신 양심적 사회운동 세력가의 연합을 추진한다는 점이 다르다. 진보진영에서는 이를 `‘천하3 분론’으로 표현한다. 수구-보수-진보의 세 축으로 한국의 정치판을 재편 하자는 것이다.

김두수 전국연합 정치국장은 “국민들이 현 정권과 신한국당에 대한 강한 분노와 배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야당에 대한 지지율 상승 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이제 진보진영이 대안세력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동안 진보진영은 “대선방침과 관련한 모든 논의는 노동자와 민중의 독 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실현하는 바탕 위에서 이어져야 한다”고 입버릇처 럼 말해왔다. 진보진영이 사회·정치적 실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 어떤 후보전술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국민후보론의 뿌리는 여기에 있다. 전국연합은 조만간 `‘대국민정치개혁선언’을 시작으로 광범위한 선언자 운동을 벌이는 등 정치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현재로서는 전남 ·충남지역의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국민후보론에 반대하고 있지만 6월14일 로 예정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국민후보론의 채택은 확정적이다.

진보진영의 대선방침과 관련해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민주노총은 조만간 1만명의 정치실천단을 모집해 정치활동에 나선 뒤, 내년 지자체선거에서 는 직접 후보를 내는 정치일정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방침과 관련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동안 전국연합과 정치위원회 차원에서 서로 논의를 계속해온 만큼 행보를 같이 할 가능성이 높다.

정성희 민주노총 대외협력국장은 “제3후보론은 김대중 총재 지지보다 호 소력은 크지만,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기여하지 못하는 만큼 동의하는 사 람이 별로 없다”고 전했다. 물론 결정은 대중적으로 이뤄지겠지만 민주 노총쪽은 국민후보의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민주노총은 7~8월로 예정된 대선방침의 최종확정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강력히 일고 있는 만큼, 오는 5월7일 중앙정치위 원회에서의 간부토론을 거친 뒤부터 대선방침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선거전 막판엔 ‘정책연합’ 취할 수도

진보진영은 국민후보를 낼 경우 최소한 1백50만표에서 2백만표 이상까지 도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후보로는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이창복 전국연합 상임의장, 천영세 공동의장이 거론된다. 후보선 출방식도 국민회의 내 비주류가 제안한 바 있는 국민경선제가 거론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바람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이 국민후보를 내더라도 반드시 선거전에서 끝까지 간다 는 것은 아니다. 배석범 민주노총 중앙정치위원장은 이를 `‘정책연합’ 이라고 말한다. 선거전에서 얻은 득표잠재력을 바탕으로 정책에 진보진영 의 의견을 반영하고, 내각에도 자리를 일부 할애받기로 약속받는 방식이 다. 그러나 이는 정책연합을 통해 야권단일후보의 당선가능성이 확실할 때만이 가능하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