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자민련, 인내심 갖고 끝까지 타협할까

국민회의의 완만한 `‘내각제 선회과정’을 지켜보는 자민련의 반응은 매 우 시큰둥하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제시한 `대통령 후보단일화와 내각제 당론채택 ‘일괄타결’ 방식은 자민련이 애초부터 예상했던 수준의 `‘화답’이다. 국민회의가 당 안에서 내각제논의를 활성화하고 김대중 총재가 직접 구체 적인 제의를 했다는 점은 `‘성의표시’ 정도로 볼 수 있지만, 새삼스레 달리 대응할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5월 전당대회 ‘당론변경’을 압박해온 자민련의 기대치에는 물론 크게 못 미친다. 한영수 자민련 부총 재는 “당론을 내각제로 바꾸는 것은 양당의 노선을 조정하는 작업인데 대통령 후보단일화와 조건부로 연계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민련에서는 이처럼 국민회의의 내각제 당론변경이 후보단일화의 전제조 건으로 인식돼 있다. 국민회의가 5월 전당대회에서 내각제를 당론으로 채 택하지 않는 이상 단일화는 물건너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민련의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국민회의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지난 90년 3당합당을 예로 들면서 “(내각제)합의문서도 휴지조각이 되는 마당인데 어떻게 말만 믿을 수 있느냐”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는 실정이 다. 게다가 아직 단일화 협상이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서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요구수준을 낮출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이와 함께 자민련 내부에는 후보단일화의 명분에만 공감할 뿐 실현가능성 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상당히 많이 퍼져 있다. 한 고위관계자는 “ 어차피 안 될 걸 왜 국민들을 속이고 있나”라며 “빨리 제 갈길을 가야 할 것”이라고 드러내놓고 말했다. 국민회의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삼아 독자출마의 길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자민련의 태도는 매우 완강하다. 그렇지만 `‘조건반사적’ 대응 은 삼가고 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만큼 국민회의의 자세변화를 기 다리며 전당대회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국민회의 전당대회에 맞춰 자민련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다시 제시하는 등 분명한 `‘사전경고 ’가 필요하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국민회의의 5월 전당대회는 야권 후보단일화 논의의 한 ` ‘분수령’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자민련이 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정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낌새를 보이고 있는 대구경북지역(TK) 일부 의원들 의 태도도 당지도부에는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TK의원들을 대표해 ` 후보단일화 ‘매개역’을 맡은 박철언 부총재쪽은 “국민회의로서는 내각 제 당론변경이 쉽지 않은 만큼 자민련에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들은 또 단일화가 안 될 경우 마냥 당 지도부의 방침을 쫓아가기는 어 렵다고 밝히는 등 이탈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박준규 최고고문은 “ 후보단일화와 내각제가 안 된다면 당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라 고 말했다.

이런 복잡한 자민련의 당내 사정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김종필 총재의 최근 움직임이다. 김 총재는 국민회의에 대한 `‘내각제 공세’를 강화하 면서도 “상대방은 대통령을 꼭 하겠다는 사람인데”라며 단일화의 어려 움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김 총재는 이어 “단일화는 정권교체를 위한 절대명제이므로 마지막 단계까지 타협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자민련 한 관계자는 “김 총재가 국민회의 전당대회 이후 당 내부에서 제기될 `‘단일화 불가론’을 겨냥해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기 위한 사전포석”이라고 해석했다.

박중언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