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10일 제 156호

야권 대타협, 회심의 카드 나오는가

(사진/96년 9월 국민회의 창당1주년 기념식에 함께 한 두 야당 총재. 두사람은 이제 야권공조라는 워밍업 단계를 거쳐 정권교체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 작성에 들어갔다.)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의 거대한 ‘타협’이 본격 국면에 빨려들고 있다. 한보사건의 회오리 속에서도 야권은 최초의 정권교체를 위한 치밀한 물밑 작업을 벌여왔다. 오는 12월 대선에서 여당후보 격침시키기 위한 회심의 카드를 만드는 작업이 그것이다.

“여당을 포위 고립시켜라”

해방 후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리는 야권의 프로그램은 대타협에 서 시작된다. 야권을 중심으로 한 `‘반김영삼’세력과 `‘반신한국당’ 세력의 대타협을 통해 여당을 포위 고립시킨다는 전략이다.

야권은 현재 그동안의 야권공조라는 워밍업 단계를 거쳐 이제 정권교체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 작성에 들어갔다. 한보청문회가 마무리되면서 정 국이 급격히 대선국면으로 전환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사실 야권은 5월부터 사활을 건 전면적인 대협상을 피할 수 없다. 국민회 의가 전당대회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마련해야 하고 이 안을 바탕으로 자 민련도 국민회의와 대선 단일후보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양 당은 이런 실리적인 이유 이외에도 단일화를 요구하는 야당지지자들의 요 청을 외면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이같은 협상은 대중에 떠밀린 결과라 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DJ(김대중)와 JP(김종필)의 대연합 시도에 대한 역기류도 만만치 않 다. 당내 반발세력들은 서로 다른 성격의 두 김씨의 연합에 거부감을 나 타내며 이탈이라는 칼을 내세우고도 있다.

하지만 야권의 대타협 시도는 일단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주류는 이 흐름이 구체화돼 하나의 대하를 이루면 작은 물줄기 들은 결국 이 물줄기에 흡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물줄기를 하나로 이 루는 고리는 내각제. 두 세력은 이미 내각제를 공론화시키면서 본격협상 에 앞선 정지작업을 마쳤다.

DJ는 지난 4월24일 대통령후보와 총재 경선후보를 등록함으로써 본격적인 당내 경선운동에 들어갔다. 자민련과의 협상에 앞선 당내 비준과정이다. 5월 19일 전당대회를 계획대로 치룬다면 자민련과의 협상을 위한 전권을 위임받게 된다.

자민련도 6월24일 전당대회를 치른다. 그러나 현재 JP에 필적할 만한 당 내 경쟁자가 없는 데다 내각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어 전당대회 결과 는 국민회의와의 협상 전망을 보여주는 잣대로서 기능할 뿐이다.

DJ는 5월 전당대회 직후 곧바로 자민련과의 협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 대중 총재의 한 핵심측근은 “이미 자민련과 협상에 들어가기 위한 만반 의 준비를 끝낸 상태”라며 “전당대회에서 공식적인 야권협상 권한을 위 임받는 대로 자민련과의 접촉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DJ와 JP는 수십년의 정치역정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협상 테이블이 눈앞에 다가선 것이다. 물론 두 김씨의 협상의 성패 여부는 누구도 속단할 수 없 다.

하지만 두 김씨가 막다른 낭떠러지에 몰려 있기 때문에 공존의 길을 모색 할 가능성이 크리라는 점은 누구나 예측가능하다. 내각제라는 절충의 고 리도 있다. 이미 내각제 개헌에 대해서는 두 김씨가 이심전심으로 마음을 같이 하고 있다. DJ는 내각제가 썩 개운치 않으나 JP를 끌어들이기 위해 서는 내각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협상, 조건이 문제이지 자세는 돼 있다

JP도 자민련 혼자 힘으로는 내각제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신한국당과의 연대를 통한 내각제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번 YS(김영삼)와 여당에 눈길을 보냈으나 돌아오는 것 은 냉담한 반응 뿐이었다. 이제 내각제와 공동집권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DJ와 손을 잡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DJ와 JP는 이제 협상의 조건이 문제이지 협상을 위한 자세는 양쪽 모두 굴뚝같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야권단일화에 대한 두 김씨의 의욕도 대단하다.

김대중 총재는 최근 “자민련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공동의 목적을 위 한 연립정권은 가능하다”며 “5월 전당대회 이후 후보단일화와 내각제 채택여부, 개헌시점을 일괄타결하는 협상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집권 을 위해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한 자민련과의 연립정권을 기정사실로 받 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자민련과의 공조 명분은 물론 수평적 정권교체에 있다. 여야간 정권교체 는 이 시대 `최대의 개혁이자 진정한 ‘역사바로세우기’라는 것이다. 지 난 4월초 김 총재의 미국방문을 수행했던 국민회의 박지원 기획조정실장 은 “김 총재는 미국의 조야인사들을 두루 만나면서 자민련과의 공조와 야권후보단일화의 결심을 굳힌 것 같다”고 전했다.

김종필 총재 역시 독자출마 가능성을 내비치며 국민회의를 압박하고 있다 . 그는 최근 “국민회의의 전당대회가 후보단일화의 걸림돌이 될 수는 없 다”고 말했다. 국민회의 전당대회에서 내각제로 당론변경이 확정되지 않 더라도 야권 후보단일화는 별도로 계속 추진하겠다는 생각이다. 일부 부 정적인 인사들을 겨냥한 발언으로 읽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총재는 내각제 협상과정에서 한치도 양보없는 샅바싸움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누가 대통령후보가 되느냐와 ‘권력의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양보란 있을 수 없다.

김대중 총재의 요청은 하나다. 내각제를 통한 권력분점을 수용하되 야권 단일후보를 양보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헌 시점과 무관하게 약속의 징표로 국민회의 당론을 내각제로 바꿀 계획이다.

김종필 총재로서는 순순히 김대중 총재에게 대통령후보를 양보할 리 만무 하다. 자민련은 김종필 총재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대 선에 김종필 총재가 야권의 단일후보로 나서야 더 승산이 있다고 주장하 고 있다. 자민련 이동복 총재비서실장은 “김종필 총재를 중심으로 한 야 권 공조가 더욱 폭발력을 가질 것”이라며 “김종필 총재가 야권단일후보 로 나설 경우 전국적으로 고루 지지를 받아 여당후보에 압승을 거둘 것” 이라고 말했다.

양당 비주류 반발 만만찮아

(사진/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야권단일후보가 성사되면 신한국당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자연스럽게 엮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월10일 열린 합동의총.)

내각제와 함께 두 김씨의 타협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권력분점이다. 다음 정권은 누가 대선후보가 되든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집권이 될 수밖에 없다. 공동집권에서는 철저히 권력을 분담하게 된다. 대통령후보 를 낸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은 국무총리와 주요 장관직을 차지해 연립정 권을 구성하는 형식으로 권력을 균점한다. 벌써부터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권력분점에 대해 주요 장관직 기준으로 5:5, 또는 4:6 등의 배분비율이 거론될 정도이다.

물론 두 김씨의 연합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야권공조를 어렵게 하는 여러 고비들을 넘기더라도 각 당내의 반발이 만 만치 않다. 만약 두 김씨가 합의를 하더라도 당내 반발세력들이 따라오지 않고 이탈해버리면 두 김씨의 공조효과는 반감되고 만다.

국민회의에서는 김상현 지도위의장과 정대철 부총재, 김근태 부총재가 여 전히 자민련과의 공조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들 비주류는 일단 오는 5 월 전당대회에서 김대중 총재에 맞서 대선후보와 총재후보로 각각 출마하 지만 제3후보를 완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에 야 권단일후보가 실패하면 바로 제3후보론을 다시 강력히 추진한다는 생각이 다.

자민련 내에서도 TK(대구·경북)세력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TK세력 가운데는 국민회의와의 공조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많다. 박철언 부총재의 경우는 국민회의 공조에 적극적인 반면 독자적인 TK 몫을 요구하고 있다. 야권공동집권구상이 단순한 `‘DJ+JP’만의 연대 가 아니라 ‘`DJP(김대중-김종필)+TK’방식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TK가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우산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야권공조 의 한 축으로 참여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상황은 두 김씨의 연합을 추진하는 주류와 이에 반대하는 비주류의 일대격돌도 배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두 김씨는 공동집권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일후보의 성사와 함께 이런 당내의 반발세력을 무마하는 작업 도 병행해야 하는 셈이다.

박태준씨 ‘초대총리’ 발표 방안도

그러나 DJ와 JP만 합의가 되면 이런 당내의 일부 반대세력은 공동집권이 란 목표아래 흡수될 것이라는 것이 야권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야권단일후보가 성사되면 우세한 쪽으로 몰리는 `‘ 밴드웨건효과’에 의해 신한국당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자연스럽게 엮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DJ와 JP의 담판을 통해 야권단일후보가 성사되면 바 로 범야권을 묶는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스케줄을 갖고 있다.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깃발 아래 모든 야권을 묶는 `‘야권의 대타협’이 최종 목 적다. TK와 전 포항제철 회장인 박태준씨를 포용하는 전략도 여기에 들어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TK의 지분을 4:4:2로 한다는 권력배분비율도 이를 위한 책략이다. 박태준씨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국민회의와 자민련 연립정권의 초대총리로 박씨를 미리 발표하는 방안도 설득력있게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여권이 경선 분위기를 통해 한보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 하는 시점에서 야권은 ‘여권 후보=대선 승리’라는 등식을 깨기 위한 일생 일대의 대협 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보 추문으로 인한 신한국당 주 가의 폭락을 야권의 반사이익으로 흡수조차 못하는 야권으로서는 최후의 승부처일 수 밖에 없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