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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01일 제 155호 한겨레21

검찰, 우리는 정권과 한패 아니다


(사진/외압은 있어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대검 중수부는 거물 정치인들에게도 서슴없이 칼날을 휘둘렀다. 왼쪽부터 서석재 의원, 김수한 국회의장.)

한국 검찰이 다시 태어나는가.

검찰은 올해 초의 1차 한보 수사에서 다시 생각조차 하기싫은 치욕을 당 했다.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 다섯명을 구속시키고도 `‘권력의 시녀’라 는 비난을 뒤집어써야 했으며, 대검 중수부장이 수사중에 교체당하는 초 유의 사태를 당하고도 한마디 항변조차 하지 못했다.

그랬던 검찰이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앞만 보는 수사’가 희망의 싹을 틔운 것일까.


외압… 그러나 흔들리지 않겠다

국면 대전환의 계기는 정치인 수사였다. 정태수 리스트에 포함된 33명의 정치인들이 11일부터 줄줄이 대검청사로 불려왔고, 거짓말 정치인들의 돈 받은 사실이 하나하나 확인됐다. 김덕룡 서석재 등 민주계 실세의원들과 김상현 김용환 등 야권의 거물의원들도 검찰 조사를 피하지 못했다. 검찰 은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인 김수한 의원으로부터 5천만원 받았다는 시 인도 받아냈다.

그러나 검찰은 공개적인 정치인 수사의 칼을 빼기까지 심한 산고(産苦)를 겪어야 했다. 검찰 안팎에서 강한 수사 축소 압력이 밀어닥쳤던 것이다.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는 처음부터 공개 조사 자체를 반대했다. “정치자 금 받은 것은 현행법상 죄가 안 된다”는 게 이들의 논리였다.

중수부 수사팀의 고집에 밀려 공개소환 방침을 용인한 뒤에도 김기수 검 찰총장은 “형사처벌 대상이 없을 것”임을 여러 자리에서 강조했다. 청 와대에서도 “검찰 수사는 해명성으로 끝날 것”이라며 수사축소쪽으로 여론을 몰아갔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와 김기수 검찰총장이 마지못해 중수부의 33명 전 원 공개소환 방침을 받아들이되 대신 형사처벌 대상을 최소화하려 했으나 , 일단 공이 중수부 수사팀으로 넘어가자 수사 수위에 대한 상층부의 통 제는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한보사건에 연루된 은행장과 경제수석들 처리문제에서도 검찰의 수사 칼 날은 시퍼렇다. 검찰은 애초 정치인 수사착수 이전에 은행장과 경제수석 형사처벌을 마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청와대쪽의 `‘처벌 불가’ 압 력에 밀려 마냥 관련자 소환을 미루고 있었다. 검찰 수뇌부도 경제수석 1 명을 처벌하는 정도에서 끝내자는 소극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경제수석과 은행장 처벌 불가’라는 노골적인 청와대 목소리가 적힌 검찰 간부의 메모가 공개되면서 오히려 검찰 수사강도가 더 높아지 고 있다. 심재륜 중수부장은 “검찰 수사에 외압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며 외압사실을 사실상 인정해버리고는 “그러나 앞으로의 수사를 지켜보 면 외압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 작정했 던 대로 혐의가 드러난 경제수석과 은행장들을 모두 형사처벌하겠다는 의 지를 비친 것이다.


검찰 상층부도 중수부 통제 불가능

수사초기보다 몸놀림이 자유로워진 검찰은 김현철씨 수사에도 속도를 붙 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철씨 관련설이 나돈 기업이나 사람을 다 조사했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수사관이 손을 댄 경우만도 1백건이 넘 는다”고 말했다.

검찰의 이런 기류 때문인지는 몰라도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의 기류도 서 서히 김씨 처벌 불가피쪽으로 기울었다. 4월 중순 이전까지만 해도 청와 대의 분위기는 “김씨를 조사하되 뚜렷한 범죄혐의가 없으면 형사처벌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4월 말부터 여권 핵심부의 목소리가 `‘김씨 처벌 불가피’로 바뀌었고, 청와대도 “검찰이 곧 수사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라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위 사정관계자는 “김씨가 4월25일의 청문회가 끝난 뒤 검찰에 소환돼 형사처벌될 것”이 라고 노골적으로 흘렸다. 이와 함께 검찰 주변에서는 지역민방 선정 과정 에서의 금품 수수 등 일부 혐의가 구체적으로 나돌았다.

사실 수사팀은 김씨에 대한 수사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그러나 검찰 의 수사성과가 품을 많이 들인 만큼 알차지는 않을 것같다는 전망이 여기 저기서 나온다. 김씨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현직대통령 아들인 김씨가 독약인지 설탕인지 모르고 돈을 받았겠느냐”며 혐의 추적의 어려움을 토 로했다. 그는 또 “아직까지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가 남아있다는 게 수사 의 큰 장애물”이라며 “김씨와 가깝게 지낸 기업인들 중 누구도 김씨에 게 이권청탁을 했다거나 돈을 건넸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수부의 또다른 수사검사는 “4월 말까지 김씨를 확실하게 부를 수 있는 거리는 준비돼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그 또한 “국민들이 납득할 만 큼 덩치 큰 비리가 아니라서 다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서는 “청와대와 검찰이 사소한 혐의 몇개로 김씨 처리를 매듭지으려는 것 아니먀”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여 권 핵심부가 김씨의 과잉의욕에 따른 `‘실수’를 대의멸친(大義滅親)의 자세로 과감하게 형사처벌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김씨 비리가 대선자금 의 꼬리나 치명적인 국정개입의혹으로 이어지는 것을 서둘러 막으려 한다 는 것이다.


“현철씨 4월중에 소환한다”

이에 대해 대검 중수부의 한 중견검사는 “김씨가 한차례 처벌받고 말 것 인지, 아니면 두차례 세차례 처벌받을 것인지 스스로 결심해야 할 것”이 라고 말했다. 그는 “작은 혐의로 큰 잘못을 덮으려 했다가 정권이 바뀐 다음에 다시 불려나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덧붙 였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정권의 시녀에서 정권의 견제자로 서고자 하는 검찰 관계자의 간곡한 충고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김현대 기자/ 한겨레 사회1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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