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커스 |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민족지 논쟁은 물론 하다못해 마라톤행사를 놓고도 지리하게 싸워온 두 신문이기에 사소 한 갈등 따위는 눈여겨볼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선국면에서 특정 정치인을 둘러싸고 두 신문 사이에 흐르고 있는 미세한 기류는 얼핏 놓치기 쉽지만 흥미로운 대목이다.
당사자가 신한국당 고문 김윤환 의원이란 사실에 이르면 한결 눈길을 끈 다. 그를 둘러싸고 두 오랜 앙숙 사이에 소리없는 `‘김윤환 전쟁’이 벌 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윤환 고문 소환 `조선일보'만 누락
신한국당 김 고문의 소환이 언론에 감지된 것은 지난 4월12일이었다. 그 러나 13일치 `조선일보'에서는 무슨 까닭인지 이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 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다른 신문들이 김 고문의 소환을 1면 머리 또는 중간기사로 보도한 것과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14일치에도 이 신문은 그 의 소환을 1면에 보도하지 않고 2면에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상자기사로 다뤘다. 게다가 `조사받은 당일 김 고문을 다룬 상자기사의 표제는 “검 찰에 `‘빨리 소환해달라’ 요청”이었다. 김 고문의‘결백성’과 `‘정 직성’이 돋보이는 ‘의도된’ 편집이 아닐 수 없다.
김 고문이 검찰에 출두한 사진을 `동아일보'와 다른 신문들이 대부분 15 일치 1면에 크게 실었을 때에도 `조선일보'만은 같은날 소환받은 5명을 함께 실었다. 김 고문의 비중에 어울리지 않는 파격처리였다. 그뒤 조선 은 김 고문에 대한 기사를 더이상 내보내지 않았다. 반면 `동아일보'는 1 5일치 지면 이후에도 집요하게 김 고문을 물고 늘어졌다. 가령 16일치 1 면을 보자. ‘김윤환-김용환 의원 재소환’을 1면 머릿기사로 시커멓게 컷을 떠 보도했다. 동아는 2면에도 `‘김윤환 고문 재소환 결정 안팎’ 제하의 해설기사에서 `‘검찰 혐의입증에 강한 자신감’이라는 표제를 달 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아는 사설을 통해 김 고문의 재소환이 불 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신한국당 김윤환 의원의 경우는 재조사가 불가피 하다. 김 의원이 누군가. 집권당 전 대표로 차기 대선의 후보군 중 한명 이자 킹메이커로 알려진 중진이다. 검찰이 그런 정치인을 부를 땐 치밀한 사전준비를 했어야 옳았다. 그런데도 돈심부름을 했다는 박승규 한보문화 재단 이사장을 함께 불러 대질신문을 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고 강도높게 추궁했다. 다음날인 17일에는 5면 머릿기사로 “물새는 빈배 , 대쪽 몸빼나” 제하에 “이회창-김윤환 흔들리는 밀월” 기사를 내보냈 다. 그뿐인가. 사회면에서는 3단으로 “김윤환 고문 박승규씨와 통화/ 3 천만원 전달싸고 설전 벌여”를 내보내 김 고문과 박씨가 벌이는 설전의 내용을 그대로 내보냈다. 여기서 주시할 대목은 `동아일보'가 음모설을 제기하고 있는 점이다. 16일치 사설에서 동아는 “김 의원은 과거에도 여 러번 비리연루 의혹을 받았으나 매번 확인되지 않은 채 넘어갔다”며 “ 결국 첫 소환에서 금품수수 여부를 분명하게 확인하지 못한 채 귀가시켜 면죄부를 주기 위한 모양갖추기 아니냐는 오해를 받게도 되었다”고 나무 랐다. 그리고 바로 이어 “이러니까 음모설도 나오는 게 아닌가”라고 물 었다.
음모설은 한보사태 초기 `조선일보'가 연이어 검찰 소환자를 시내판에 특 종보도하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음모설을 간추리면 특정언론이 여권 내부 의 특정세력과 결탁해 여권에서 상대적으로 개혁세력이라 할 수 있는 `‘ 민주계 죽이기’에 나섰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물론 `조선일보'는 음모설 에 대해 특종보도를 헐뜯는 작태라며 정면으로 공격에 나섰다.
이런 반발은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민주계와 한보 사이에 `‘검은 거래’가 오간 것은 분명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 ‘정태수 리스트’가 선별작성돼 언론에 흘려졌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더구나 김 고문은 신한국당 내 민정계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리 경력을 지니고 있다. 조선이 과연 어디에 더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조선의 `‘김윤환 봐주 기’는 누가 보더라도 뚜렷했다는 점이다. 음모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당 사자로서야 불쾌할지 모르겠으나 지면이라는 `‘굴뚝’을 통해 스스로 ` ‘오해’ 받을 만한 연기를 모락모락 지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손석춘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