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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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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부실이라는 오명과 함께 12조원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으로 불린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이 단군 이래 최대의 부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내 탓이오’라는 책임 전가만 있고 ‘ 내 탓이오’라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 4월16일 미국의 건설안전진단 전문업체인 WJE사가 서울~천안 1개 공 구와 천안~대전 시험선 전 구간을 대상으로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점검 대상의 70%가 재시공이나 보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발표됐을 때 경부고 속철도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온 탄식이다.
한보사태가 두개 터진 것보다 크다
오는 200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경부고속철도 건설비는 모두 10조7 천4백억원(93년 불변가격 기준). 전문가들은 부실·졸속공사로 완공이 최 소한 3~4년 늦어지고 직·간접적으로 10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이 불가 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5조원이 넘는 금융 빚으로 나라 경제를 휘청거리 게 하고 있는 한보사태가 두개나 터진 셈이다.
정부는 부실공사를 한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재시공 비용부담은 물론 엄한 행정처벌을 내리겠다고 나섰다. 고건 총리는 감사원에 특별감사까지 지시 했다. 구조안전상 결함이 드러난 교량구조물 39곳을 재시공하고 콘크리트 균열, 콘크리트 내부의 철근배열상의 문제점 등을 보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5천억~1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건설업체들의 부실시공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시공 건설업체 들은 4월21일 공동으로 사과성명을 발표했지만 내심으로는 부실시공의 책 임이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돌아오고 있는 데 대해 억울해하고 있다. 사태 가 이 지경까지 치달은 근본원인은 계획과 시공의 원초적 부실에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사전준비를 한 기간은 89년 7월부터 92 년 6월까지 불과 3년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다. 이 짧은 기 간 동안 정부는 경부고속철도의 교통수요 및 경제성 분석, 노선 및 역사 위치 선정, 개략적인 기본설계 등을 포함한 기술조사(89년 7월)를 시작으 로 노선 선정(90년 6월), 노반 실시설계(91년 6월), 세부노선 확정(92년 6월) 등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해치워 버리고 92년 6월부터 천안~대전 시험선구간 4개 공구에 대한 착공에 들어갔다. 시공 건설사의 한 관계자 는 “기술설계가 기술조사의 일부 작업으로 진행된데다 기술조사 기간이 1년7개월에 불과해 허술하게 처리된 채 실시설계로 바로 넘어갔다”고 말 했다. 실시설계도 부실이기는 마찬가지. 시험선구간 착공을 위해 2년6개 월의 계획기간을 채우지도 못한 채 92년 5월 11개월 만에 서둘러 끝나버 렸다.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이 계획 확정 뒤 실제 공사에 들어가기까지 10년 내외의 준비기간을 가진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졸속이었는지 알 수 있다.
착공 당시 PC박스 형식으로 설계된 교량형식이 공사비 절감을 이유로 1년 만인 93년 6월 PC빔 형식으로 바뀌었다가 안정성이 문제가 돼 다시 94년 7월 PC박스 형식으로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도 바로 설계부실 때문 이다. 뒤늦게 노선 주위로 대형 폐광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노선 선정 을 다시해야 했던 상리터널의 경우도 지반조사 등 기초조사를 충실히 하 지 않고 졸속으로 노선을 선정한 결과다.
짧은 준비기간은 곧바로 잦은 사업계획 변경으로 이어졌다. 94년 10월에 는 애초 계획에 없었던 남서울역이 새로 신설됐고 대전·대구역사 건설도 지하에서 지상으로 다시 지하로 두차례나 계획이 바뀌었다. 문화계와 현 지 주민들과의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졸속으로 이루어진 경주통과 노선( 형산강 노선)은 4년간의 논란 끝에 지난해 6월 결국 전면 백지화된 뒤 올 1월 말 화천리 노선으로 변경됐다.
애초 국내 기술로는 무리했던 사업
시공이 설계에 맞춰 제대로 됐는지를 감독하는 감리도 부실하기는 마찬가 지였다. 고속철도공단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처음 시행되는 고속철도 공사를 제대로 감리할 수 있는 기술자를 보유한 감리업체가 국내엔 사실 상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설계부실 상태에서 완벽한 감리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물에서 숭늉찾기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시 노태우 정부는 무엇엔가 쫓기기라도 하듯 착공을 서둘렀다. 답은 착공 6개월 뒤 치러진 14대 대통령선거에서 간단히 찾아 진다. 집권 후반기의 치적과 대선 홍보용으로 노씨와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통령후보가 무리수를 쓴 것이다. 시공업체들로터 상당액의 리베이트가 정치권으로 건네졌다는 의혹도 무성했다.
경부고속철도 부실도 다분히 인재(人災)의 성격을 띠고 있다. 경부고속철 도 공사를 실무 총괄하고 있는 한국고속철도공단의 책임자는 현 이사장인 김한종 이사장(전 건설부 차관)을 제외하고는 경제기획원 등 전문성이 전 혀 없는 부처에서 낙하산식으로 임명됐다. 고속철도공단의 한 간부는 “ 이사장이 전문용어 하나 몰라 사업내용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만 몇달 씩 걸렸다”고 말한다. 공단 부이사장과 주요 간부들이 전문가보다는 힘 있는 부처에서 나눠먹기식으로 채워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공단을 감독한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부처통합 전에는 교통부) 장관도 지금까지 9명이 나 바뀌었다. 평균 재임기간이 1년 정도에 불과하다. 건교부의 한 직원은 “담당부서 간부나 직원들도 자주 바뀌어 책임질 사람이 누구인지 가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말했다.
책임자 규명 문제와 함께 중요한 것은 앞으로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이냐이다. 무엇보다 경제성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역사 신설이나 노선 변경 등에 따른 접근도로 건설비를 빼더라도 졸속·부실 추진에 따른 직접적인 예산낭비가 이미 1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51차례의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공사비만 4천5백억원을 넘는다. 대전·대구역 지하 화에 따른 추가비용은 4천3백36억원이다. 안전진단 결과 들어갈 재시공 및 보수 비용 5천억~1조원은 별도다. 공기지연으로 인한 간접적인 비용손 실은 더 엄청나다. 경주경유구간 착공은 애초 95년 4월에 들어갈 예정이 었으나 노선변경으로 99년 상반기에나 가능하게 됐다. 최소 3~4년의 지연 이 불가피하다. 국회 건설교통위의 임채정 의원(국민회의)은 “공기가 3 년만 지연돼도 간접적인 비용손실이 12조원에 달한다”고 말한다. 공기지 연에 따른 교통체증 등 사회·경제적 손실 7조2천억원, 건설지체 이자 1 조7천5백억원, 운행을 못하는 데 따른 수입감소액 3조3천2백21억원 등이 주요 손실이다. 10조원이면 서울~부산간 4차선 고속도로를 2개나 건설할 수 있는 엄청난 돈이다. 예산부족으로 지지부진한 경부선 전철화사업도 8 천5백억원만 있으면 조기에 끝낼 수 있다.
경제성 무시 엄청난 빚잔치만 남은 꼴
고속철도 운영 4년(2005년) 만에 흑자를 내고, 16년(2017년) 뒤 부채상환 을 끝낸다는 애초 계획도 이미 물 건너갔다. 경부고속철도는 엄청난 빚잔 치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다. 임채정 의원은 지난 4월21일 국회 건설교통 위 경부고속철도 실태파악소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공청회에서 “경제성을 무시하고 공사를 계속 진행하기보다는 이미 착공한 서울~대전간만 공사를 하고 나머지는 포기하는 대신 경부선 전철화사업이나 고속도로 건설사업 을 벌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애초 상반기 안으 로 사업기간과 사업비를 전면 재조정할 계획이지만 사업 계속 여부를 놓 고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