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꽃잎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

(사진/우리 꽃을 이용한 향수 개발에 성공한 한불화농의 연구실.)

아름다운 자태와 색깔을 가진 꽃은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러 나 꽃은 바라보는 즐거움 외에도, 사람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다. 꽃 에서 추출한 방향성분이나 각종 물질들은 화장품이나 향료, 의약품의 훌 륭한 원료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먼 옛날부터 꽃을 식용과 약 용으로 이용해왔으며, 염료도 꽃에서 얻었다. 꽃의 화려한 색깔과 모양을 응용한 패션산업 등도 꽃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가운데 하나이다.

1백가지 넘는 꽃들 생활용품에 이용돼

꽃이 아름다운 자태와 함께 뽐내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향기다. 그윽하고 은은한 향기에서, 아찔함을 느낄 정도로 강렬한 향기에 이르기까지, 꽃이 갖고 있는 향기는 저마다 다르다. 이 가운데 생활용품에 들어가는 향장향 의 원료로 쓰이는 꽃은 1백가지가 넘는다. 장미나 자스민, 라벤더, 붓꽃, 까모밀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꽃에서 방향성분을 추출해 모은 향료는 향수를 비롯해 각종 화장품 을 비롯해 샴푸, 몸세정제, 세탁용 세제 등에 쓰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하루에 한번 이상 꽃향기를 맡는 셈이다. 식품에 들어가는 향과 연초향 등을 제외한 이런 향장향료의 시장규모는 6백억원 정도로 추산된 다.

향료 전문업체인 한불화농은 최근 우리 꽃의 향기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 했다. 제주도의 특산물인 유채꽃과 감귤꽃을 배합한 향료에서 향수와 미 용비누를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제주’라는 고향땅 이름을 그대로 상 품명으로 사용한 향수는 감귤꽃과 유채꽃 향기가 어우러진 상큼한 향을 내고, 지속성도 뛰어나다고 한다.

향료를 얻기까지는 유별난 세심함이 필요하다. 꽃은 바람이 없고 햇볕이 좋은 날을 골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딴다. 그래야 향기가 그대로 간 직된다. 꽃은 비행기로 실어와 공장에 도착한 즉시, 용제에 담아 보관한 다. 꽃잎이 상하면 향기가 날아가기 때문에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어 몇 단계의 추출과정을 거쳐 향료의 최종 원액을 생산한다.

우리 꽃 향료 개발을 주도한 이 회사 부설 향료연구소 이승훈 부소장은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우리의 기호에도 잘 맞으며, 그냥 버려질 꽃을 이 용함으로써 농가소득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번 가을께쯤 우리 꽃을 이용한 또다른 향료가 나올 것”이라며 “기업 비밀 이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꽃의 향기를 직접 이용하는 방향산업도 해마다 20∼30%의 성장세를 계속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방향제 시장은 일반가정용으로 슈퍼마켓 등에서 주로 팔리는 방향제의 경우만 3백억∼4백억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편 백나무나 소나무향을 이용한 것이 많지만, 라벤더 등 꽃에서 추출한 향기 의 인기도 점차 높아가고 있다.

일반가정용 방향제 시장 규모 4백억여원

최근에는 소비자의 코를 유혹해 매장 이미지를 높이고, 매출증대 효과도 가져오는 이른바 ‘향기마케팅’을 이용하는 곳도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 지난 95년 향기관리 전문업체인 ‘에코미스트 코리아’가 향기마케팅 개념을 도입한 이후, 백화점, 병원, 음식점, 은행 등 3만여곳에서 향기를 이용하고 있다. 에코미스트 코리아는 병원의 진료실 등에는 안정효과가 있는 라벤더향을, 각종 의류매장이나 서비스업 등에는 장미향을 쓰도록 권하고 있다. 우리 생활 곳곳에서 꽃향기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달래 화전이나 국화전 등 식용이나, 모란술 국 화술 민들레술 진달래술 같은 전통술을 담그는 데 이용됐고, 전통민간요 법의 약용으로도 널리 쓰였다. 요즘에는 전통요법의 효과가 하나씩 과학 적으로 입증되면서 현대 약학산업에서도 꽃이 의약품의 원료로 활발히 이 용되고 있다. 국화과 꽃인 제충국에서 살충제를, 역시 같은 국화과인 시 나화에서 회충구제약인 산토닌을, 카모밀레에서 안질치료제를, 사프란에 서는 통경제를 생산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각종 항암제 등도 꽃 을 포함한 식물에서 원료를 얻는 등, 꽃이 신물질의 보고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강원대 약학과 김창민 교수는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으로서 꽃가루받이 를 위해 곤충을 유인하거나 해로운 벌레를 물리치는 각종 정유 성분을 발 산한다”며 “전통요법에 쓰이는 식물들을 연구할 경우, 이들 성분을 신 약개발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꽃의 색깔이나 자태는 디자인이나 염색 등 패션산업에도 좋은 재료와 소 재를 제공해 우리 생활을 풍요롭게 해준다. 봉선화꽃잎을 찧어 손톱에 감 싼 뒤 하룻밤을 새고 난 뒤 설레는 마음으로 풀어보던 것도 먼 옛날이 아 니다. 천연염료로서 쪽이나 홍화, 치자, 꼭두서니, 쑥 등은 오래 전부터 우리 옷을 염색하는 훌륭한 염료로 쓰여왔다.

미래 자원으로 가치 무궁무진

꽃을 응용한 무늬나 문양도 고대로부터 동서양의 왕궁이나 황실에서 왕비 나 공주의 옷을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했다. 특히 패션 전문가들은 올해 는 꽃무늬를 응용한 옷을 입은 여성들이 거리를 누빌 것으로 내다보고 있 다. 오리지날리 박윤정 디자인 실장은 “꽃무늬나 꽃장식은 여성의 우아 함과 원숙미를 표현하는 데 좋은 재료”라며 “올해는 벚꽃이나 무궁화 등 동양적인 꽃을 응용한 패션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한다.

꽃의 가치는 이제 마음의 위안을 주는 정서적 측면을 넘어 그 영역을 넓 혀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알려지지 꽃의 효용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것도 그만큼 미래의 자원으로 꽃의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꽃은 어쩌면 자연이 창조한 반도체인지 모른다.

지창은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