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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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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종주의 전도사 폴린 한슨 의원이 자신을 다수를 위해 희생당하는 순교자로 묘사한 그림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지난 4월15일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시드니. 이날 아시아계 이민자들과 원 주민은 시내 중심부에서 “폴린 한슨 의원 반대, 폴린 한슨 한나라당(Pau lin Hanson One Nation Party)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집회 이름은 ‘ 인종차별 반대 연합집회’. 전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반이민·인종차별 물결이 오스트레일리아에까지 상륙할 움직임을 보이자 ‘인종주의를 반대 하는 캠페인’(CAR) 등 비정부기구들이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규탄 구호 속의 폴린 한슨은 바로 최근 인종차별의 핵으로 등장한 인물이다.
식당주인에서 정가의 신데렐라로 부상
무소속 하원의원인 폴린 한슨은 지난 3월26일 오스트레일리아 선거관리위 원회에 ‘폴린 한슨 한나라당’이라는 신당을 등록했다. 전통적 양당체제 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선 군소정당이 정치적·대중적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수없이 많은 군소정당이 명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린 한슨 한나라당은 이례적이었다. 창당대회도 열지 않고 신당 등록했 다는 사실만으로 온 나라의 관심이 이 ‘초미니 정당’에 쏠렸다. 그리고 이 관심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 바로 이 당의 ‘인종차별주의’강령이다. 폴린 한슨은 흔히 ‘오스트레일리아 정가의 신데렐라’로 불린다. 그는 두번의 이혼경력을 가진 독신녀로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퀸즐랜드주의 입 스위치에서 간이식당을 경영하던 중 지난해 3월 총선 때 옥슬리 선거구에 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아무런 정치적 기반도 없던 그가 내건 공약은 “이민반대, 원주민 지원정책 폐지”였다. 그는 지난해 9월 의회에서 한 첫 연설에서도 “오스트레일리아가 아시아인에 의해 뒤덮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반아시아·반원주민 정책 수립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한슨의 발언은 비록 지식인층의 비판을 받았지만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슨의 지지율은 과반수를 웃돌았다. 기성정치권 이 ‘표’를 의식해 이를 적극 비판하지 못하는 사이 한슨은 인종주의 정 치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한슨의 발언은 대부분 원주민과 아시아 이민자에 대한 공격에 초점을 맞 추고 있다. 그는 백인에 의해 사회·역사적 재난을 겪은 원주민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 시책을 부당한 특혜라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는 아시 아계의 추가이민을 중단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한 슨의 정치적 성공은 일반 대중들이 이런 극단적인 주장을 믿고 싶어 한다 는 데 있다. 즉 경기침체, 해고, 명예퇴직 증가 등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 을 복지제도의 주수혜자인 원주민과 아시아계 이민자에게 돌리고 싶은 것 이다.
이런 분위기는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아시아계에 대한 신체공격까지 잇따 르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한슨파문’의 직접 피해자인 소수민족 공동 체들은 지난해 11월에도 대규모 인종차별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9 월 연설 이후 맹위를 떨치던 한슨파문은 결국 지난 연말 전임 총리들인 폴 키팅과 봅 호크의 눈물어린 대국민 호소를 계기로 가까스로 진정됐다. 그러나 그 당시 한슨의 인종주의 파문이 사회적으로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인종주의라는 ‘마왕’은 잠시 잠 복기를 거친 뒤 이제 한슨 한나라당으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난국 호도 위한 정치적 음모 도사려”
그런데 왜 오스트레일리아는 한슨에 열광할까? 무명의 초선의원이 몇달 만에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정치거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우선 재미있는 사실은 한슨이 정치인이라는 전문직에 어울리지 않는 여러 요소(저학력, 이혼경력, 천박한 화술, 변변찮은 경력 등)를 가지고 있다 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이 바로 서민적이고 친근한 정치인이라는 이미 지 형성에 기여하는 듯하다. 한슨도 이를 의식한 탓인지 간이식당 운영 경험을 항상 강조한다. 그의 문제인식과 해결책은 서민층의 시각을 가장 ‘직설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문제는 대중의 피상적 인식을 아무런 여과없이 대변하고 단순한 해결책을 무차별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자세인가 하는 점 이다. 유력 일간지인 <오스트레일리안>은 한슨의 정치적 부상은 대중의 근거없는 믿음과 정서에 교묘하게 영합하는 “퇴행적 질투의 정치”일 뿐 이라고 비판했다.
한슨 열풍을 가능하게 한 또하나의 요소는 서오스트레일리아의 그램 캠벨 의원을 비롯한 극우보수진영이 그를 ‘얼굴마담’으로 삼아 강력히 뭉쳐 있는 점이다. 또 극우진영 최고의 브레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존 파스콰렐 리는 자청해서 한슨의 보좌관이 되어 막후에서 한슨파문을 총연출했다고 할 정도다. ‘한슨 이전’ 이렇게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던 적이 없는 극 우파로서는 당연한 행동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앞으로 오스트레일리아 극 우세력들이 한나라당이라는 정치적 깃발 아래 총집결할 것은 필연적인 일 로 예상할 수 있다.
폴린 한슨 한나라당은 다음번 연방선거 때는 현재의 양당구조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슨은 이보다 더 나아가 차기 선거에서 모든 선거구에 자당 후보를 공천할 수 있을 것 으로 호언했다. 한슨은 장래 연방 총리까지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종주의 파문과 공식적인 정치과정의 진행은 본질적 으로 다르다고 전제하고 한슨의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크게 부각될 가능 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인종주의라는 주제 자체가 고정적인 지지계층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대중정서에 의존하는 바가 큰 만큼 한 정당의 항구적인 슬로건으로는 적합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도 한슨 한나라당의 창당을 지켜보는 소수민족 공동체 의 태도는 결코 여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한슨파문이 진행되는 동안 인종 차별의 선동적인 힘과 현실적 파괴력에 직접 피해를 본 때문인지 한슨의 정당설립 움직임에 즉각적인 제동과 견제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인종주의를 반대하는 캠페인’의 고든 휴잇도 한슨 열풍에 지속적인 관 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인종주의는 자칫 정치·경제적인 어려움을 호도하기 위한 희생양이나 핑곗거리를 찾으려는 정치적 시도로 증폭될 수 있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항상 현실적 어려움에 대한 좀더 단순하고 선명한 분석과 해결방안을 요 구하기 때문이다. 한슨의 한나라당은 이러한 대중의 퇴행적 정서에 기반 하여 특정 상황과 시점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다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있다. 따라서 지속적인 견제와 비판으로 인종주의의 정치적 확산을 막아야만 한다. 인종주의의 결말은 공멸이기 때문이다.”
“인종주의는 파멸의 전주곡일 뿐이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