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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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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버마 민중은 우리를 지지한다. 우리의 투쟁은 반드시 승리한다." 학생군들은 변치 않는 신념으로 군사독재를 향해 총뿌리를 겨누고 있다.)
지난해 12월2일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는 지난 88년 랑군의 봄 이후 최 대 규모인 2천여명이 참가한 학생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의 발단은 지 난해 말 양곤의 한 식당에서 있었던 정부인사 아들과 대학생간의 사소한 시비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학생들을 마구 구타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한달이 넘도록 지속된 시위에서 학생들은 초기 가혹행위를 한 경 찰의 처벌과 구속학생 석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시위는 차츰 학생조합의 인정, 결사의 자유, 부정부패의 척결, 언론보도의 자유 등 민주화를 요구 하는 정치 투쟁으로 변화했다. 이 시위 과정에서 한 학생은 시위대를 향 해 이렇게 외쳤다.
“오늘, 이밤, 이곳, 이 시간부터 우리 모두는 선배 학생들의 숭고한 뜻 을 이어받아 뭉쳐 싸워야 한다. 반식민지투쟁을 위해 싸웠던 선배들을 기 억해야 한다. 우리 후세와 버마의 민중,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해 군사정 권과 싸워야 한다.” (학생들은 군사정부가 개칭한 국명인 미얀마를 쓰지 않고 계속 옛 이름인 버마를 쓴다.)
무장투쟁 노선 수정해 국제 지원 호소
1988년 랑군의 봄. 당시 학생들은 버마사회주의계획당의 일당독재를 철폐 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민주화 시위는 친위쿠데타가 일어나면 서 군대의 총칼에 처참히 짓밟혔다. 시위에 참가했던 학생들과 시민들은 탄압을 피해 타이,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등과 마주한 미얀마의 국경지 대로 모여들었다. 모여든 사람들은 8천명이 넘었다. 퇴역군인도 있었고, 교사, 상인도 있었다. 연령층도 다양했다. 그들은 버마의 민주화와 버마 민중의 자유를 위해 1989년 11월1일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을 결성했다 . 50여년 동안 자치 독립을 위해 싸워온 버마의 소수민족 카렌족의 도움 으로 그들의 해방구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총을 들고 독재기구 인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와의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 들을 학생군이라 불렀다.
“88년 우리들은 시위를 통해 민중의 요구를 정부에 전했다. 하지만 정부 는 오히려 총부리를 들이댔다. 학생들과 민중들은 정부를 변화시키는 유 일한 길은 무장투쟁이라 생각했다.”
전투사령부의 참모 장교인 웨이 린 틴(41)은 무장투쟁을 전개하게 된 이 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군은 최근 카렌, 카레니, 몽족 등 소수민족 반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 했다. 아세안 가입, 경제개발계획, 자원개발 등을 추진하기 위한 걸림돌 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타이 북부 산악지역인 매홍손의 카레니 난민촌에 자리잡고 있던 학생민주전선 본부도 공격을 받 았고 학생군 3명이 전사했다. 그들은 최근 좀더 안전한 장소인 타이 서북 부 메사리앙 부근으로 본부를 옮겼다. 지난 2월부터 건설에 들어간 이 본 부에는 12가족 1백여명의 식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한때 무장투쟁노선과 외교투쟁노선을 가지고 분열되었던 버마학생민주전 선은 지난해 7월 총회를 통해 다시 통합되었고 의장으로 선출된 나잉 옹( 35)은 최근 정세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국경 상황만 놓고 보자면 몇몇 기지를 탈환당하고 공격을 받은 것 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버마학생민주전선 전력의 약화를 의미하 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움직임에 많은 어려움과 제한과 압박이 있는 것 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버마내부의 민중 투쟁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완벽한 기동성을 갖고 있고 내부와 아주 긴밀한 협조 체제를 갖고 있다. ”
초기 무장투쟁노선을 갖고 있던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최근 잇따른 정부군 의 공세를 겪은 뒤 전략을 수정했다. 국제적인 선전활동을 통해 국제적인 정치 압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타이 군부가 미얀마와의 경제적 이해 관계 때문에 미얀마 군부와 긴밀한 협조 를 원하면서 버마학생민주전선에 대한 정책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 방콕 등 타이 내에 있는 버마학생민주전선의 사무실들이 압수 수색을 당 하거나 타이 경찰의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학 생민주전선 병사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믿고 있다.
“우리는 군사정권하에 있는 버마 민중의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버마 민중은 우리를 지지하고 지원한다.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학생민주전선에 가담한 여학생들도 초기에는 군사훈련을 받았고 위생병이 나 통신병으로 전선에 참여했다. 하지만 투쟁이 장기화되어 9년여의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남녀 학생군 사이에 사랑이 싹텄고 결혼을 해서 아이 들을 낳았다.
“솔직히 가족계획을 권장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이를 가졌다. 어쨌건 나름대로 아이를 키우면서 공동생활체를 만들고 정치적이고 조직 적인 생존능력을 배양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정치적인 교육을 시 키고 있고 여성들은 버마여성연합(BWU)이라는 조직을 결성중이다. 자립을 위해 몇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고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학생민주전선의 구실은 민족의 독립을 목적으로 싸우고 있는 다른 소수민 족 반군들과 다르다. 그들은 전체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다른 소수민족 들과 연대해 투쟁한다. 학생군은 비록 수적으로 소수지만, 다민족국가인 미얀마에서 그들의 투쟁은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버마의 소수민족을 포함한 모든 민중을 위해 싸운다. 민주주 의와 소수민족의 권리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소수민족과 의 연방제를 원한다.”
소수민족 아우른 연방정부 수립한다
학생민주전선은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와의 효과적인 투쟁을 위해 더욱 강 력한 연대 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이들은 연합 조직에 참여해 공동 작업을 수행해내고 있다. 버마연합국가평의회(NCUB)가 그것이다. 국 경에서 가장 큰 조직인 평의회에는 의장인 나잉 옹과 부의장인 모티준이 비서관으로 참여해 법령들을 만들고 재정을 조정하는 구실을 담당하고 있 다.
“우리는 모든 집단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와의 싸움 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금 조성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고, 전반적인 행정의 올바른 결정을 위한 조언자 구실도 하고 있다.” 학생민주전선의 목표는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미얀마의 민주화와 인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다음 소수민족과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모든 소수민 족을 아우르는 연방정부를 수립하는 데 있다.
타이 매홍손·메사리앙=안해룡·한윤복/ 아시아프레스 인터내셔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