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한겨레21

고성의 재앙, 그뒤 1년의 기록

강원도 고성에 다시 생명의 싹이 돋아나고 있다. 지난해 이맘 때 인간의 잘못으로 온산이 숯덩이로 변한 고성땅. 산불이 일어난 지 1년 동안 그 산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현직 신문사 사진기자가 지나온 1년의 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문화일 보> 사진부 김선규(36) 기자는 고성산불이 일어나던 지난해 4월24일 마침 강원도 산간을 취재하다 산불소식을 들었다. 급히 현장으로 달려간 그는 동해파도보다 더 큰 기세로 마을과 산을 집어삼키는 불길에 말을 잊었다. 그건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준엄한 경고요, 분노였다. 3일간의 대화재 뒤 땅 속의 미물들마저 모두 다 타버린 산불현장은 잠시 불이 꺼진 지옥 그 자체였다.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 그는 몇달 뒤인 그해 7월, 다시 그곳을 찾았다. 신록의 계절이었지만 검게 탄 나무들이 시체처럼 서 있는 그곳에는 그늘 하나 없었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바람 조차도 숨을 죽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참을 걷던 그는 불탄 소나무 사이에서 자라나는 싹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숯덩이를 뚫고 푸른 빛을 틔우는 싹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김 기자가 한번쯤 큰 함성 을 질렀음은 당연한 일.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인간의 잘못으로 무참하 게 짓밟힌 자연이 다시 인간에게 보내는 화해와 용서의 몸짓을 느꼈다” 고 표현했다.

이때부터 그의 고성사랑이 시작됐다. 고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였 지만 바쁜 취재일정 중에도 틈나는 대로 고성으로 달려가 조금씩 바뀌는 산불현장을 찍고 또 찍었다.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제 고성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성사진은 그래서 마치 창세기의 축소판과도 같다. 기자생활 10년 만에 첫 사진전을 연 그는 “‘자연’을 대신해 자리를 마련했다”며 어 머니품 같은 자연의 그 너그러움을 전했다. “이제 인간이 더이상 살모사 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오는 4월29일까지 계속되는 그의 사진전 제목 은 ‘나무도 사람도 새도 슬피우네’다. (문화일보 갤러리: 02-3701-5760 )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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