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한겨레21

베를린에 잠든 윤이상의 분노

지난 94년 9월1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은 살아 생전 마지 막이 될지 모를 귀향(경남 통영)의 꿈을 끝내 포기해야 했다. 윤이상음악 제를 주최한 예음문화재단(이사장 최원영)의 초청을 받고 25년 만에 귀국 을 결심한 윤이상에게 한국 정부가 귀국의 전제조건으로 ‘과거 친북활동 ’에 대한 사실상의 ‘사과’를 끈질기게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민족주 의자로서” 자신의 신념과 행동에 투철한 확신을 가졌던 윤이상으로서는 남과 북을 초월한 자신의 음악활동을 ‘정치적 친북활동’으로 매도하고 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 정부의 논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굴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윤이상은 결국 고향 방문의 간절한 소망을 접 은 채 이듬해인 1995년 11월3일 독일 베를린에서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

과연 그는 ‘반성’의 편지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내 귀국을 “애원”했 을까.


명예회복 요청이 ‘반성문’으로 둔갑

`월간조선' 4월호는 ‘독점공개 윤이상씨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귀국을 애 원한 두통의 편지’ 제하의 기사에서 “윤씨가 1994년 6월26일과 7월25일 두차례에 걸쳐 김영삼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귀국을 간청했으며 이중 7 월25일자 편지는 사실상 ‘반성문’이나 다름없는 내용으로, 한국 정부가 이 편지의 공개를 주장하자 윤씨가 귀국 일보전에 한국방문을 포기하게 됐다”는 요지의 기사를 보도했다.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본인의 귀국을 위하여 염려해 주셔서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원래 원치 않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어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켰으나 이제 부터 귀국하면 음악예술활동 외 어떠한 정치 활동도 하지 않기를 약속드 립니다. 1994.7.25. 백림 윤이상.”

이 편지는 비록 짧지만 문면만으로도 내용이 사실상의 사과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보도가 나가자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 윤씨의 부인 이수자(72)씨와 이수자씨의 회고록 출판 및 윤이상 추모음악제 개최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34년 만에 서울에 와 있던 윤이상씨의 딸 윤정(46)씨는 “아버님이 귀국을 위해 한국 정부에 애원한 사실이 전혀 없으며, 특히 `월간조선'이 그 근거로 내세운 ‘7월25일자 편지’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 하고 나섰다. 부인 이씨는 지난 4월16일 기자회견에서 윤정씨가 대신 낭 독한 ‘`월간조선' 앞으로 보내는 공개장’이라는 회견문에서 “`월간조 선'의 기사가 어떠한 검증절차도 없이 있지도 않고 쓰지도 않은 편지를 내세워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중재위에 정정 보도신청을 비롯해 모든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

부인 이씨와 딸 윤정씨에 따르면 윤이상이 한국 정부 인사에게 2통의 편 지를 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첫번째 편지는 `월간조선'의 보 도대로 94년 6월26일 김영삼 대통령 앞으로 보낸 것이 맞지만 두번째 편 지는 당시 이홍구 부총리 겸통일원 장관의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쓴 8월1 6일자 편지라는 것이다. 이홍구 현 신한국당 고문은 이와 관련한 기자의 확인요청에 대해 “당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예음문화재단의 최원영 회장이 부탁을 해 윤 선생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 를 청와대쪽과 상의하거나 이후 귀국교섭 문제에 간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또 필체와 관련해 위 2통의 편지는 윤이상의 자필이 틀림없으나 `월간조선'이 보도한 문제의 ‘7월25일자 편지’는 서명만 윤씨의 필체일 뿐 내용문은 전혀 다른 필체라고 주장하고 이는 윤씨의 다른 편지, 기고 문, 악보, 이수자씨의 글 등을 통해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두통의 편지 중 첫편지는 이수자씨가 대필했고 두 번째 ‘7월25일자 편지’가 윤씨의 자필편지”라고 상반된 보도를 하고 있으며, 이홍구 부총리에게 보낸 편지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 다.


누가 썼는지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왜 발생한 것일까.

가족들에 따르면 당시 윤이상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게 된 데는 윤씨 의 한방 주치의로 윤이상과 가족들의 깊은 신뢰를 얻고 있던 한의사 최형 주 박사가 결정적 구실을 했다. 다음은 부인 이씨의 말. “음악제 초청이 있고 문민정부에 대한 기대도 있던 차에 마침 최 박사가 대통령에게 편지 를 쓰면 자신이 귀국해 그것을 근거로 귀국을 추진하겠다고 설득했다. 처 음에 남편은 그러한 편지를 쓸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했으나 일국의 대통 령이니 귀국문제에 관한 자신의 심경을 전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해 6 월26일자 팩스편지를 보내게 됐다. 그리고 그 내용도 귀국을 애원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공식적인 명예회복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씨의 주장은 중개 당사자인 최 박사의 주장과 일치한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최 박사가 밝힌 요지.

“윤선생의 귀국문제는 평소 친분있는 황산성(전 환경처 장관) 변호사와 상의했다. 이때 황 변호사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해 윤 선생님에게 권유했다. 윤 선생은 김 대통령에게 보낸 첫편지를 내가 알려준 황 변호사의 팩스를 통해 보내왔고 이 편지는 당시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이 편지내용이 불충분하다 고 했다. 그래서 좀더 명시적인 과거 해명을 담은 편지가 있어야겠다는 청와대쪽의 뜻을 윤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7월25일자 두번째 편지 팩스는 이런 과정을 거쳐 황 변호사에게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부인 이씨 등 가족들은 이 두번째 편지는 결코 윤이상이 쓰지 않 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음은 이씨의 주장.

“최 박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첫편지를 김 대통령에게 보냈으나 한동안 회신이 없어 남편은 공연한 짓을 했다며 불쾌하게 여겼다. 그러다가 8월1 1일자로 된 이홍구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의 편지가 팩스로 왔다. 내용은 ‘과거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것과 앞으로 음악예술활동에만 전념한다는 뜻을 밝히면 귀국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8월16일자로 ‘확실한 명예회복이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으면 결 코 귀국하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 어떠한 의사표시 요구도 하지 말아달라 ’는 요지의 답신을 보냈다. 이것이 윤이상과 한국 정부가 주고받은 편지 의 전부이다. 만약 `월간조선' 보도처럼 대통령 앞으로 과거를 사과하고 앞으로 일절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냈다면 그 이후에 이 총 리에게 이런 확고한 입장을 담은 편지를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상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7월25일자 편지’의 진실성 문제는 가족들이 주장하는 조작 가능성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월간조선'의 기사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했던 최 박사는 가족들의 조작 주장에 대해 다소 불투명한 태도를 취했다.

최 박사는 ‘7월25일자 편지’를 윤이상의 자필로 여긴 데 대해 “윤 선 생이 지병으로 손을 많이 떨었는데, 두번째 편지 필체가 몹시 흔들리는 듯 어렵게 쓴 글씨체인 데다, 윤 선생이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집에 써준 서명과 편지의 서명이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 박사는 “ 설사 윤 선생이 아니라 다른 누가 썼든지 간에 내용은 평소 윤 선생이 토 로한 말과 다르지 않다면 윤 선생의 편지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편 `월간조선'의 취재기자는 “취재시의 정황, 편지를 공개한 쪽의 의 도, 윤이상의 필체라고 확인한 최 박사의 말 등에 비춰 편지의 조작 가능 성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어서 확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 다”며 “윤이상씨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고 해명했 다.


명예 실추 노린 정치공작 가능성도

만약 이 편지가 조작된 것라면 누가 왜 무슨 의도로 그랬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의도로는 우선 누군가가 윤이상의 귀국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 윤이상 몰래 썼을 가능성, 윤이상의 귀국교섭에 혼선을 주기 위해 조작됐 을 가능성, 귀국을 일종의 전향으로 기정사실화하려는 고도의 정치공작 가능성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부 인사들은 선의의 편지 조작 가능성 을 개연성 높은 것으로 추측하지만, 어디까지나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든 가족들은 편지 조작이 윤이상의 귀국을 돕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는 만큼 반드시 진실규 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인 생전의 행동이나 신념에 완전히 반하는 이런 편지가 실재하는 것으로 일반에게 받아들여진다면, 고인의 예술적 인간적 이미지는 상당히 굴절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살아 있는 가족들 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인우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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