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달콤한 밀월에 벌꿀주 마신다

전분을 발효시켜 달콤쌉쌀한 ‘신의 물’을 빚은 것이다. 하지만 곡물에 있는 전분은 효모가 직접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곡물로 술을 만들기 위 해서는 먼저 전분을 분해(당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포도주를 담근 것 은 BC 6000년쯤이므로 인류가 당화방법을 아는 데 약 2천년이 걸렸다 할 수 있다. 당화법의 창안은 양조기술의 발달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 룬다.

술은 당에서 나오고 당은 태양에서 나온다. 당이란 식물의 엽록소에서 만 들어진 6탄당(이것을 單糖이라 함)을 기본으로 한다. 식물이 태양에너지 를 받아 탄소동화작용으로 생성한 탄소분자 6개와 수소분자 12개 그리고 산소분자 6개가 술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단당은 구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포도당과 과당이 다. 포도나 과일 등의 과즙에는 당이 단당형태로 들어 있다. 단당분자 2 개가 결합한 게 이당(二糖)이다. 단당과 이당은 사람이 단맛으로 느낄 수 있고, 효모가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식물은 당을 변형해 사용하거나 저장한다. 곡물의 씨앗이나 감 자 따위에 저장된 전분은 단당 몇백만개가 결합한 것이다. 쌀이나 보리를 입에 넣고 오랫동안 씹으면 약간의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 다. 입 속에서 전분이 분해돼 당으로 변하면서 단맛을 내는 것이다.

예로부터 부드럽고 단맛이 강하여 달콤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꿀도 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꿀은 당도가 80% 정도로 그냥 두면 부패(발효)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도를 낮추면 다른 당액과 마찬가지로 알코올발효를 일 으키므로 술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북유럽의 겨울은 길고 한파가 매섭다. 그래서 북유럽인들은 예전부터 술 을 많이 마셨다. 종교의식에는 반드시 술이 제주(祭酒)로 사용될 정도였 다. 그때 제주가 바로 벌꿀주였다. 북유럽인들은 그 술을 미드(Mead)라 불렀다.

미드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로 꿀을 희석하여 당도를 20% 정도로 맞춘 뒤, 구연산 등의 산미와 향초를 넣고 와인용 효모로 발효시킨다. 미 드는 그대로 마시거나 브랜디와 섞어 디저트용으로 마신다.

북유럽의 여러 나라 가운데 노르웨이의 미드가 가장 유명하다. 오늘날 신 혼부부의 달콤한 삶을 허니문(Honey Moon:密月)이라 한다. 이 말은 바로 노르웨이의 벌꿀주 풍습에서 유래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전통적으로 신혼 부부가 한달 동안 이 미드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가장 즐거운 한때, 어찌 술이 함께 하지 않으랴.

우리나라에서도 신혼부부가 첫날밤 조촐한 술상을 마주하고 합환주를 마 시는 풍습이 있다. 이 합환주를 벌꿀주로 쓴다면 가정생활이 꿀같이 달콤 하고 화목하지 않으려나.

이종기/ 두산씨그램 생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