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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01일 제 155호 한겨레21

남성독점에 뒤틀린 정치

김효선

1961년생,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졸업, 여성신문 편집부장,
저서 `우리시대의 결혼이야기'(여성신문사)

한보사건 청문회로 온통 시선이 쏠려 모처럼 서울에서 열린 큰 국제행사 인 제97차 국제의원연맹(Inter-Parliamentary Union:IPU) 서울총회가 제 대로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IPU 전체총회에 대한 기사도 충분 치 못했으니 총회 전날 열린 여성의원회의가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흘러 가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성의원회의에 참석한 우리나라의 여성의 원은 매스컴의 인색한 보도를 가리켜 ‘전멸’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

그러나 이번 IPU 여성의원회의는 우리가 이렇게 박대하기에는 매우 중요 한 결정이 이뤄진 회의였다. IPU 여성의원회의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 대하기 위한 결의문을 채택한 것이다. 그 결의문은 사회 전체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정치분야에서 남녀간의 균형을 이룬 참여가 지극히 중요하다는 관점 아래 각국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정치구조의 변화와 교육내용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정치분야에서의 평등을 성취하기 위 해 남녀동수로 이뤄진 감시단 구성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 결의문은 여성의원회의의 결정사항이지만 IPU 이사회에 보고됐으며 UN 총회에도 보고될 예정이기 때문에 각국에서는 이 결의문의 이행을 위한 조치를 마련해야 할 압력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이 모든 과정은 환경문 제나 인권보호의 문제처럼 정치상의 남녀평등은 세계사의 테마가 되었음 을 알려준다.

이번 IPU 여성회의의 결의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결의문이 서울에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몇년간에 걸친 국제여론의 수렴이었음을 알 아야 한다. 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회의에서 논의의 윤곽이 잡혔 고, 지난 2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IPU 특별회의는 주제를 ‘정치분야에 서 남녀간 동반자 관계’로 정해 국제회의 사상 최초로 참석자의 성비가 50 대 50으로 구성됐다. 이 뉴델리 회의가 이 주제와 관련해 채택한 최종 선언문에는 성차별적인 정당구조의 개선, 할당제의 타당성, 매스컴의 공 정성, 여성정치교육의 중요성 등 실로 ‘고전’으로 기록될 만큼 중요한 논점이 총망라돼 있었다. 이 회의에서 발표된 세계여성정치참여 현황에 대한 리서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회의 여성비 3%로 세계 94위이다. 여성 정치참여의 확대라는 문제는 베이징과 뉴델리를 거쳐 서울로 옮겨졌으며 이번 여성의원회의에서 채택된 결의안은 정확히 말해 이 두 회의의 결정 사항에 대한 후속조치에 관한 결의이다.

여성의원회의가 열린 4월9일의 국회본회의장은 남성독점의 정치무대인 우 리나라로서는 참으로 ‘혼자 보기 아까운’ 현장이었다. 국회본회의장의 거의 모든 의석이 여성으로 채워진 것과 국회의장석에 우리나라 여성의원 인 권영자 의원이 의장으로 앉아 국제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국회사상 처음 만나게 된 장면이었을 것이다.

세계는 성큼성큼 평등사회를 향해 진보하고 있는데 한보라는 고름덩어리 속에서 질퍽거려야 하는 우리의 현실, 94위 나라 대한민국이 갈 길은 참 으로 멀다.

김효선

1961년생,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졸업, 여성신문 편집부장, 저서 <우 리시대의 결혼이야기>(여성신문사)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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