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한겨레21

작은 정성 큰 기쁨- 교사의 보람 일깨운 꽃편지

빼어난 글솜씨가 아니어도 진솔한 내용만 담겨 있다면, 보내는 이의 마음 을 듬뿍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편지다. 인천 동암중 교사 김혜숙(29)씨는 종업식이 있던 지난 2월 말, 한 학부모로부터 그런 편지를 받았다.

종업식날의 교무실 풍경은 시장바닥처럼 분주하고 왁자지껄하다. 담임교 사들은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며 건강기록부 따위를 분류해 후임자에게 넘 겨줘야 한다. 개근상과 우등상을 받을 학생들의 명단도 챙겨야 하고, 반 장을 불러 교실정리도 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 책상 저 책상을 도느 라 정신이 없다. 그때 한 학생의 어머니가 교무실 문을 살며시 열고 김씨 를 찾았다. “뜻밖이었어요. 학기초와 달리 학기말에는 학부모가 거의 찾 아오지 않거든요. 게다가 따로 인사를 한 적도 없던 분이었어요.”

문앞으로 마중나간 김씨에게 그는 머뭇머뭇하며 샛노란 프리지어 꽃다발 과 함께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김씨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촌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학부모는 배시시 웃기 만 했다. 김씨의 속마음을 아는 듯했다. “애 아빠가 선생님께 감사의 편 지를 썼대요.”

김씨는 자리로 돌아와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선생 님과의 만남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다 됐습니다. 교실에서 처음 만 나던 날, 깨끗하고 청순한 인상의 선생님을 보며 억센 남학생을 어떻게 통솔하고 지도할까 걱정도 없지 않았답니다. 하나 오늘 저의 자식을 보면 서 그때 그 생각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 제가 담당 해야 할 부분을 선생님이 훌륭하게 지도해 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 철없던 아이가 이렇게 의젓하게 잘 성장하고 있어 선생님께 진심으로 고 마움을 전합니다.”

콧잔등이 찡했다. “처음에는 가슴이 벅차오르더군요. 교사로서의 보람도 느끼고. 하지만 앞으로 `더욱 잘하라는 채찍으로 여겨집니다.” 김씨는 그 편지를 앨범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용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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