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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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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예방하자.”
최근 전세계적으로 자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 하다. 이를 통해 자살을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자살에 대한 통계를 살펴보면 왜 이들 과학자들이 자살의 원인에 관심을 갖는지 쉽게 알게 된다. 먼저, 자살자는 전쟁사망자보다 훨씬 많다. 무시 할 수 없는 요인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살사망자수는 일반적으로 교통사고 사망자수와 비슷하다. 지난 95년 한해 동안 자살로 숨진 한국인 은 총 7천4백여명(치안본부 통계), 경찰에 알리지 않아 숨겨진 이들까지 치면 수치는 두배로 뛴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실제 자살에 이르지 않았지만 ‘자살충동’을 느낀 경우까지 고려하면 이 수치는 또 몇배로 뛸 것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이 ‘충동’을 병이 아닌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만 본다.
세로토닌 측정법 고안해 다층분석 가능
그런데 자살충동이란 억제될 수 있는 병이고 가까운 약국에 들러 치료제 를 손쉽게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허무하게 세상과 이별하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치료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학자들의 연구동향을 <사이언티픽 아메리컨> 최근호가 자세히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미국 중심의 자살연구는 자살사망자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화학물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에서 가장 눈길 을 끌고 있는 물질은 뇌척수액에서 발견되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대 사물질이다. 이 물질은 뇌를 순환하며 신경전달 기능을 하며, 감정통제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자살자들의 뇌척수 액에는 이 세로토닌의 양이 일반인에 비해 매우 적게 나타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에 세로토닌이 감정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아냈다. 70년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세로토닌이 부 족한 원숭이들은 다른 원숭이들보다 충동적이고 공격적이라는 사실이 밝 혀진 것이다.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이들이 평균적으로 이 세로토닌 결핍 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지난 76년의 일이다. 세로토닌의 존 재가 알려진 이래 과학자들은 이 물질의 변화추이를 연구하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원인을 상당부분 분석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게 됐다.
이후 ‘세로토닌과 자살의 관계’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 미국 컬럼 비아대학의 만 박사다. 그는 세로토닌 방출효과 물질을 이용해 살아 있는 사람의 세로토닌양을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만의 연구는 이제까지 “자살자는 세로토닌이 적다”는 ‘결과분석’에서 벗어나 누가 어떤 상 태에서 세로토닌이 많아지는지를 분석할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는 이 를 통해 다시 한번 세로토닌과 자살유혹과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결국 자살연구자들은 세로토닌의 양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만 있다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 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일반약국에서도 자살과 관련 있는 우울증 방지약을 판매하고 있다. 대표적인 항우울제인 ‘프로작’(Prozac)은 비타민제, 소 화제 등과 함께 아주 일상적인 약품으로 된 지 오래다. 미 시사주간지 < 뉴스위크>의 조사에 따르면 이 약은 미국인들이 여섯번째로 많이 먹는 약 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약이 일반에 보급되지는 않고 정신과 치료에만 쓰일 뿐이다.
한편 만 박사의 동료 빅토리아 알랭고는 알코올중독자가 일반인보다 훨씬 자살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알랭고에 따르면 이는 알코올중독 이 부족한 세로토닌양을 보충할 능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통계수치도 이 사실을 입증한다. 미국의 경우, 원인별 자살률을 보면 정신병자의 자 살률이 10%, 우울증환자의 자살률이 15%인 데 비해 알코올중독자의 자살 률은 무려 18%에 이른다. 정신의학계 일부에서 알코올중독을 ‘만성적 자 살’ 또는 ‘간접 자살’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인근육당 활성화시키는 ‘단백질G’도 효과
그런데 자살의 원인 물질이 세로토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 버밍검 앨라배마대학의 메리 파케코는 우울증 자살자들이 공통적으로 ‘단백질G ’에 문제가 있음을 밝혀냈다. ‘단백질G’는 인근육당(단백질B의 복합물 질 중 하나)을 활성화시키는 물질이다. “만약 단백질G가 제대로 기능하 지 못하는 이유를 밝힐 수 있다면 우울증과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결정적 인 치료법과 효과적인 예방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결국 자살연구는 아직도 진행형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자살에 대한 생물화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 고 있다. 세계자살예방협회 한국대표인 석재호(58·한림대 정신과) 박사 는 이에 대해 “자살을 부끄러워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풍토 탓”이라 며 “대중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예방약품의 개발을 위해서라도 이 분야 의 연구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멀쩡한 사람을 자살로까지 몰아가는 비 인간적인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노력과 함께 개인의 심리적·정신적 예방 과 일상적인 치료약의 개발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