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주장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한겨레21

불황의 멍에를 걷어내자

지금 서민생활이 말이 아니다. 불황의 골이 깊어져 고용불안이 심각하고 민심이 어지러운 판국에 물가마저 크게 올라 이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야 할지 암울하다. 온나라가 한보사태로 날을 지새우는 동안 기업들은 내다 팔 불건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시장 상인들은 이런 불황은 처음이라며 한 숨 짓는다. 주변에선 실업자 친구가 눈에 띄게 늘고 요행히 직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까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학가를 보자. 대학은 더이상 순수학문의 전당이 아니다. 고시열풍이 휘 몰아쳐 ‘모든 과의 법대화’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직장인식이 바뀌면서 좀더 안정적이고 불황시대를 헤쳐나갈 직업을 원한다. 대학 도 서관은 오로지 헌법책과 토익책이 판을 치고 있다. 순수학문은 이제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의 청춘, 사랑, 인생을 논하는 학문의 종말도 멀지 않았다. 우리 후손들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게 될까 겁 이 날 정도다.

정부와 정치권은 입만 열면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 서민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자기희생이 필요 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즉 고통분담은 정부와 정치권이 뼈를 깎는 자세 로 솔선수범해야만 설득력을 지닌다. 그럼에도 솔선수범은커녕 정경유착 이 빚어낸 엄청난 사건에서 허우적거리며 국민들을 계속 실망시키고 있다 .

북녘의 우리 동포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중국으로 집단탈출이 늘어 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정부도 북한난민을 위한 만반의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정부와 정치권의 흔들림에 의해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누가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지 도대체 느낌 이 오지 않는다. 우리는 이 나라가 이렇게 표류하는 것을 더이상 방치해 서는 안 된다. 북한의 만일의 사태에 대해 온 국민의 힘을 모아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국민적 힘을 분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고비용·저효율이라는 경제환경 개선 못지 않 게 경제외적환경 예컨대 정치불안, 한보사태 등 외적요인을 하나하나 제 거해 나가면서 국민들의 사기진작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붇돋워 주는 것이다. 경제외적 요인의 정화, 특히 정치권의 대오각성 등 국민의 시름 을 덜어주는 신바람나는 운동을 전개한다면 자연히 경제내적 요인에 파급 효과를 주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인서/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115-1 10/7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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