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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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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는 나비를 잡지 않는다. 나비표본이 잔인한 사냥행위라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 사진으로 표본을 대신한다.)
그는 나비 같은 사람이다. 몸 안에 나비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처럼 인생을 자주 바꿨는지 모른다. 고시생에서 옷장사로, 옷장사에서 건 재상으로, 그리고 볼트공장 사장으로. 고려곤충연구소 소장이라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너댓번의 변신을 겪었다. 나비로 치면 숙명 같은 탈바꿈 이었다.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그리고 마침내 나비로 훨훨.
떠나버린 나비와 중학교 낙방의 추억
김정환(50)씨. 나이 서른일곱에 나비와 바람이 났다. 남들은 인생의 중간 에서 남은 길을 재고 있을 때건만, 늦바람이 무서웠다. 무작정 나비를 찾 아 샛길로 빠졌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은 인적이 드문 깊은 산 속으로 한없이 뻗어 있었다. 거기서 남몰래 나비를 만났다. 오색영롱한 날개와 가녀린 더듬이, 그리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배에 넋을 빼앗겼다. “덫에 걸린 거죠. 나비는 자연의 덫이었고, 저는 그 덫에 걸린 포로였습니다.”
그가 나비를 만난 것은 사실 그보다 훨씬 옛날이었다. 40년 전 청주는 지 금의 시골 같았다. 요즘이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곤충이라곤 바퀴벌레나 파리, 모기가 고작이지만, 그땐 철따라 온갖 곤충을 만날 수 있었다. 소 년은 잠자리채를 들고 온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나비는 가장 잡고 싶은 곤충이었다. 하늘거리며 이꽃 저꽃을 넘나드는 나비를 쫓다 밥때를 넘기 기도 했다. 나비는 자연이 준 예쁜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 비는 이내 소년의 기억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중학교 입시 때 나비를 다시 만났다. 합격자 발표를 사흘 앞둔 어느 이른 봄날이었다. 소낙비가 떨어지는 꽃밭에 나비 한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뭇 잎 사이에 숨어 비를 피하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합격통지를 초조히 기다 리는 자신의 신세처럼 느껴졌다. 그때 다짜고짜 생각해버렸다. 저 나비가 보이지 않으면 시험에 떨어질 것이라고. 그런데 합격자 발표 하루 전날, 나비는 떠났고 그는 정말 떨어졌다. 나비는 기억 더 깊은 곳으로 사라졌 다. “나비 때문에 미역국을 먹었다는 원망이 생기더군요. 나비가 미웠죠 .”
그날 이후로 나비를 잊고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선 대학입시에 매달려 주변을 돌아볼 틈이 없었다. 대학입시에서 연거푸 낙방의 쓴잔을 들고 나 서는 하루하루가 각박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진학을 고집하기도 힘들 었고, 어느새 수험생이 된 동생들을 볼 면목도 없었다. 도망치듯 군대로 숨어들었다. “동생들에게 장애물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아마 그때도 나 비가 날아들었겠지만 눈길을 돌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죠.”
제대 뒤엔 고시에 매달렸다. 역시 낙방의 연속이었다. 지지리도 못난 놈 이라고 자책하며 인고의 세월을 살았다. 그러는 새 혼기를 놓쳤다. 지금 이야 지난 일로 치고 웃어넘기지만, 젊은 날의 상처치곤 누구 못지 않게 아팠다고 한다. “빈털터리 실업자에게 어느 여자가 오겠습니까. 곤충들 도 짝짓기를 할 땐 암컷에게 선물을 주고 구애를 하는데요. 사람 사는 게 곤충이 사는 법과 다를 것 없어요.”
고시공부를 때려치우고 장사꾼으로 나섰다. 처음엔 옷장사로 시장바닥을 돌았다. 밤낮 책상머리만 지키던 샌님이 거친 장터에서 배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건재상도 해봤으나, 살림은 여전히 궁색했다. 그러다 구로공단 공구상가 구석에 볼트공장을 냈다. 볼트에 대 해 아는 것이라곤 너트의 짝이라는 게 고작이었다. 한심한 출발이었다. 다행히, 마침 운이 따랐다. 호경기를 타고 제법 돈을 모았다.
배낭 메고 산으로, 산으로
살림이 피자 문득 나비가 날아들었다. 어렸을 때 기억 깊숙이 사라졌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며 서서히 떠올랐다. 철부지 동심을 홀렸던 나비의 아 름다운 모습이 점점 뚜렷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미 주변엔 그런 나비가 없었다. 결국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나비를 찾아 산으로 들어갔다. “30 년 만에 나비 연구의 길로 들어선 겁니다. 대학에서 10년이면 될 길을 옆 길로 돌고 돌아온 거죠. 하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학교교육은 틀에 박힌 공부고, 저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먼저 전국을 돌며 나비의 분포를 조사했다. 처음부터 고생길이었다. 나비 에게 다가설수록 모르는 게 속속 튀어나왔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업으 로 치고 독학을 시작했다. 지질학에서 고생물학, 동물학에 이르기까지 관 련 논문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외국의 논문을 읽기 위해 영어와 일어에도 손을 댔다. 볼트공장은 정리해버렸다. “가족을 생각하면 볼트고, 내 인 생을 생각하면 나비였죠. 가족도 중요했지만, 나비를 버릴 수가 없었습니 다. 아내한테는 지금도 미안해요.”
그의 나비 연구는 전복적이다. 나비를 채집하고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를 묻는 게 아니다. 그는 정반대로 묻는다. 여기에 이 나비가 있어야 하는데 , 왜 없을까. 그만큼 발품이 많이 든다. 전국의 깊은 산이란 산은 모두 들어가봤다. 나비를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는 성이 차지 않았다. “우리 나라의 나비는 모두 먼 옛날 빙하기 영향을 받았습니다. 빙하기는 거대한 나비의 이동을 낳았죠.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나비가 그곳에 갇 혀 특산종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 이동경로를 추적하면서 나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산을 타다보면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워낙 깊은 산이다 보니 도중 에 발을 삐거나 길을 잃어버리면 낭패다. 하지만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다 . 곳곳에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산에는 속세를 떠나온 기인들이 많 고, 그들이 어느새 그의 친구가 됐다. 이제는 배고프면 밥을 얻어먹을 데 도 있고, 험한 곳에 갈라치면 동행해줄 벗도 넉넉하다.
곤충과도 친해졌다. 그는 이제 날개 모양이나 색만 봐도 곤충의 성질과 특성을 척 알아본다. 무당벌레의 빨간색에서 독성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읽는 식이다. 곤충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너는 참 오랜만이구나.” 그 러면 곤충이 대답을 해온다고 한다. “저 친구, 또 우리를 못살게 굴려고 찾아왔군.” 그땐 여유있게 받아 넘긴다. “잡지 않고 사진만 찍는다니까 . 도망가지 마!”
그는 정말 곤충을 잡지 않는다. 더이상 표본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 비에서 잠자리로, 메뚜기로 관심영역을 넓혔지만 그것만은 철칙처럼 지킨 다. “어느날 벽에 걸린 나비표본 액자를 보고 엄청난 충격에 빠졌습니다 . 내가 가장 잔인한 나비사냥꾼이라는 걸 알았던 거죠. 나비표본은 의심 할 수 없는 증거였죠. 만신창이가 된 심정이었습니다. 그뒤부터 사진으로 표본을 대신합니다.”
동심으로 쓰는 곤충관찰기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곤충의 세계가 사람의 몸이라면, 이제 사 손가락 마디 하나를 본 것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곤충들의 오묘한 세 계를 알려면 살아 서는 불가능할 게 명확하다. 나비만 해도 벌써 13년째 더듬었지만, 만지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다. 늦바람의 결과치곤 내세울 게 별로 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기쁨은 크다. 그래서 나비 가 늦둥이인 양 소중하다.
그는 요즘 동화를 쓴다. 아이들이 주변에 사는 곤충들의 이름이라도 알았 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한 글쓰기다. 그의 동화에는 곤충들 의 살아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동심으로 쓴 곤충관찰기라 할 수 있다. “곤충은 2억만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았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지구를 지배했던 거죠. 그들이 지금 사람에게 쫓겨 깊은 산으로 숨어들었 습니다. 아이들이 그들을 다시 사람곁으로 데려와주길 바랍니다. 곤충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가장 좋은 환경이니까요.”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