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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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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성 고문을 4월21일 오전 한남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이날 아침 이홍구 고문과 시내에서 조찬회동을 가진 뒤 기자와의 약속시간에 맞춰 다시 자택으로 귀가했다. 평소대로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인터뷰에 응한 그는 내내 `나라와 민족에 대한 헌신성과 ‘사랑’을 수차례 강조했 다. 이번엔 나서지 않겠다던 총리 시절의 언급과 틀리는 것 아니냐고 물 었다. 그의 답변은 담백했다. “그때 얘기가 거짓말이 됐다.”
-최근 행보를 보면 경선 출마 뜻을 굳힌 것으로 보이는데.
=굳히고 안 굳히고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 으려고 했지만 어쨌든 하게 된 상황에서는 현실 속에 나를 던져야 한다고 본다. 선택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확 신이 서면 나설 생각이다.
-확신을 갖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경선주자로 거론되는 분들이 다 역량이 있다고 본다. 다만 일반적인 기 준으로는 민족과 나라에 대한 무한한 헌신성과 국민을 섬기고 존경하는 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라와 국민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심, 애정은 본성적으로 생기는 것이지 목표로 삼는다고 일 시적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나는 다른 분에 비해 별로 못하지 않다는 확신이 있다.
-주변에선 찬성과 반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다고 보는지.
=지난번 광복회 회원들을 모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들이 한결같이 `우 리 민족 국가 장래를 위한 관점에서는 ‘당신이 조금도 남보다 못하지 않 다. 당신도 참여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더라. 애국지사들의 말이라 더욱 무겁게 받아들였다.
-총리 시절까지만해도 차차기에나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그때 얘기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됐다. 젊은 시절에는 정치를 생각하기 도 했지만 총리 시절에는 정말로 정치에 뛰어들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내말을 내가 못지킨 데 대해 변명하지 않겠다. 사족을 붙인다면 내가 원 해서 정치인 노릇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마음을 바꾸게 했는지.
=신한국당 고문으로 임명될 때만해도 솔직히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이 부분에서 `‘말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속으로 약간의 분노가 있었고 약간의 환멸이 있었다(잠시 후 비보도를 전 제로 분노와 환멸을 가진 이유를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그것 이 나를 크게 자극시켰다’고 말했다).
-당내 기반이나 세력이 없는데 경선에 자신이 있는가.
=당내 기반이 있고 없고 또는 정치적 경험 같은 것이 그리 중요하다고 보 지는 않는다. 나는 결심하면 한표를 받더라도 전혀 관계없다. 어떤 결과 가 나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꼭 경선에서 이기 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더 이 나라를 위해 적합한지가 중요하다. -승산이 없더라도 출마하겠다는 것인가.
=되고 안 되고는 관심없다. 대통령이란 자리도 그 자체로는 나에게 의미 가 없다.
-자신감의 역설적인 표현인가.
=원칙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 나는 항상 여백 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주자를 밀 수도 있다는 말인가.
=누굴 밀고 또는 누구로부터 밀림을 받고 할 차원이 아니다. 나보다 더 낫거나 적어도 나하고 같은 정도로 (조국과 민족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 이 있다면 그가 누구라도 돕는다. 그러나 다른 후보와 조건이 비슷한 상 황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이 특별히 중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내가 나가는 거다. 사랑에 관한 한 (남보다) 못할 게 없다는 ‘건방진’ 생각을 나는 하고 있다. 승패는 전혀 관계없다.
-민주계에 이 고문을 추대하자는 얘기가 적지않다.
=나는 민주계의 역량이나 대의원 수에서의 중요성 그리고 역사적 정통성 등을 다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무엇이 되기 위해 그분들을 이용할 사람 은 아니다. 선택은 그들이 할 일이다. 역사의식이 같고 정서가 같으면 누 구하고도 힘을 합해 나가야 한다. 자기 혼자서 잘났다면 얼마나 잘났겠는 가.
-민주계에서는 후보추대 조건으로 대권과 당권의 분리를 주장하기도 하는 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거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의 문 제이다. 서로 존경한다면 당권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서로 힘을 합해 나가 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민주계 인사들은 훌륭한 분들이 많고 당권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 러나 그것이 조건이라면 나에게 아무리 유리해도 안 한다.
-김 대통령과 교감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 김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 사전 교감이니 하 는 것은 전혀 없다.
-일부에서는 이 고문이 당에 대한 공헌도가 없지 않느냐는 지적을 하고 있는데.
=사실 공헌한 것이 없다. 다만 당에 얼마나 있었느냐는 것은 2차적인 문 제다. 누가 더 적합한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공당의 태도라고 본다.
-김현철씨쪽에서 이 고문을 지지한다는 얘기도 있다. 김덕룡 의원도 얼마 전 `민주계 대안론이나 제3후보론이 모두 ‘현철씨쪽 생각’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현철씨는 총리 시절에 한번 그가 인사를 와서 만났을 뿐이다. 김 의원은 민주화 투쟁을 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 를 겨냥해 없는 사실을 말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철씨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법률의 문제로 사실이 중요하다. 법을 위반한 일이 있다면 거기에 맞는 조치가 있을 것이고 위반한 것이 없다면 아무리 국민이 (처벌을) 원해도 안 되는 것이다.
-대북 쌀 지원에 대한 견해는.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 의중을 드러내기 거북하다. 현재 북한 식량난에 대해서는 우리와 북한 주민의 영양상태가 큰 차이가 없다는 보도도 있고 반대로 기아상태에 있다는 견해도 있는 등 의견이 상반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나쁜 쪽을 선택해서 우리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사실은 옳다 고 본다. 개별 단체별 접근은 긴 안목에서 통일정책상 혼선을 초래할 가 능성도 있지만, 적십자사나 경제인단체 또는 신뢰할 만한 종교단체 등이 하는 것은 막을 이유 없다고 생각한다.
-전, 노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주장한 이유는.
=전, 노씨 두명에 대해서만 얘기한 적은 없다. 다만 법 일반론적으로 5, 6공 인사나 그로 인해 피해본 사람들 모두 본인이 진정으로 회오하면 사 면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TK 정서를 끌어안기 위해서 사면운운한 것은 내 진의와 전혀 다르다.
-인맥이 넓은 것으로 소문나 있는데, 사람 사귀기에 기준이 있는가.
=하나의 편견이겠지만, 나는 정직하지 못하거나 신의가 없고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처신을 달리할 수 있는 사람은 깊이 사귀지 않는다. 조금 잘나고 못나고, 돈이 있고 없고 간에 사람 하나하나를 귀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마당발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마당발은 아무 사람이나 대하는 것인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배반해도 나 는 다른 사람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는 `‘못난 유현덕’ 이다. 덕을 가진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진보쪽이냐 보수쪽이냐.
=두개가 구분되는 게 아니다. 굳이 사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회 색분자’라고 어느 글에선가 쓴 적이 있다. 사상을 초월한 상태에서의 민 족의식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나는 `‘올바른 보수’라 고 스스로 평가한다.
-김 대통령의 개혁에 대해서는.
=원칙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개혁 과정과 방법이 국민의 동 의를 지속적으로 얻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과오에 대한 추궁을 먼저 시작한 것은 문제다. 화합과 용서 사랑 이런 데서 개혁을 시 작해서 잘못이 많은 사람은 인선과정에서 저절로 배제하고 아주 잘못이 큰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법적인 처벌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잘못을 따지 자면 우리나라의 역사로 볼 때 잘못 안 한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이뤄 지는 검찰의 정치자금 수사도 마찬가지다. 국민 입장에서는 분노하지만 돈이 필요한데 어떻게 하나. 제도를 바꿔야 한다.
-이 고문은 부친이 경북이지만 본인은 함경도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 랐다. TK라고 생각하는가 아닌가.
=나는 TK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 그러나 내가 경북사람이라는 인식을 한번도 버린 적은 없다. 언젠가 나는 `권력의 이해관계에 젖어있는 사람 은 가짜 TK이며, 나같은 사람이 ‘진짜 TK’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T K 인사지만 TK를 결코 정치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관이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여성을 대단히 존중한다. 배부른 산모를 제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 그러나 이날 이때까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번도 안 했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수적이라는 말이 맞다. 배꼽티 등 젊은 여성들의 노출 패 션은 우리 문화가 아니니까 반대하는 것이다.
-특별한 취미는.
=바둑이 아마 4, 5단 되지만, 요즈음은 거의 두지 못한다.
-전당대회에 시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경선참여자의 의사가 존중돼야 할 것이다.
-6·25 때 납북된 부친에 대해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너무 명백하다. 아버님께서 심장이 불편한 상태에서 인민군에게 끌려가는 것을 내가 직접 봤다. 그뒤 한줄의 편지나 한마디 소문도 못들 었다. 북에서 고위직에 있었다느니 혁명열사릉에 묻혔다느니 하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렇다면 제3국을 통해서라도 확인되었지 않았겠나.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