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김덕룡의 정면승부

과연 김덕룡 의원은 민주계 주류에서 떠나 언제까지 자신의 길을 갈 것인 가.

한사코 부정하던 한보의 검은 돈 수수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기 직전 그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음모론’의 실체를 김현철씨로 지목하며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게다가 주류쪽의 불가론에도 불구하고 민주계 독자 후보론을 고집하며 자신의 지지를 강압적으로 요구했다. 이와 함께 민주 계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수성 고문에 대해서도 ‘음모’의 한 축을 이 루는 것으로 들이받았다.

최근 며칠 사이에 드러난 그의 언급들로 미루어보면 그는 거의 다른 살림 을 차린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인터뷰 내용은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밀실에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면서 국정시스템을 교란해온 그들 세 력은 이제 물러나야 한다”는 말이 내포한 ‘현철씨와 그 인맥 청산’이 그 하나요 둘째는 “27년간 함께 걸어온 길이 끝나면 내 갈길을 갈 것” 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 독자노선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적어도 독자노선에 관한 한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 이다. 현철씨를 매개로 자신의 타격을 만회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 배적이다.

한 측근도 이를 인정했다. “YS를 국정의 중심에 서도록 판단해 도와왔는 데…”라고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은 그는 “이 정도 타격에 주저앉을 수는 없다. 일단 계속 나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움직이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게 김 의원쪽의 고민이 다. 도덕적 상처를 딛고 이전과 똑같은 행보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뚜렷한 묘안이 떠오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다른 한 측근은 “일단 시작 은 하지만 아직은 독자적인 길을 찾기는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실토했 다.

김 의원은 현재 경기도 일원을 돌며 자신의 행보와 관련한 구상을 계속하 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당분간 민주계와 결속을 다지면서 현철 씨 문제를 고리로 삼아 힘을 추스린 뒤, 적당한 시기를 택해 이회창 대표 에게 정면 승부수를 던지는 방식으로 ‘민주계 대안’을 선점한다는 생각 이다

하지만 김 의원의 이런 구상이 얼마나 현실화 될지는 미지수다. 이수성 고문이 “30년 반독재 투쟁을 해온 민주계의 세력 자체가 과오가 있는 것 은 아니며 역사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상처입은 민주계 의원들을 감싸안으며 김 의원의 텃밭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또 민주계 안에서는 “ 이미 DR은 물건너 간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의 발언으로 다시 한번 상처받은 김영삼 대통령이 그의 홀로서기를 얼마나 인정할 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게다가 그에겐 탄력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

민주계 주류쪽은 이에 따라 ‘시간이 약’이라는 식으로 그의 발걸음을 지켜볼 뿐이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