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한겨레21

이회창 흔들고 이수성 세운다?

(사진/이수성 고문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민주계가 내분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4월12일 민주계 중진들의 모임.)

한보수사의 격랑 속에 중진 대부분이 낙마하는 등 난파 직전에 몰린 민주 계가 새로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독자후보 가능성이 사라졌고 이에 따 라 누군가를 대리인으로 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 대권 무욕론’을 펼쳤던 이수성 고문이 사실상의 도전 의사를 밝힌 것은 이들의 선택을 재촉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계에게 이 고문의 이런 움직임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회창 대표에 대해서는 민주계를 와해하려는 음모의 배후로까지 의심했지만 이 고문에 대한 태도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중심없이 휘청이는 민주계에 활로를 열 어줄 수도 있다는 기대마저 그를 보는 시선 속에 섞여 있다.


최형우 고문 “그는 우리 사람”

이 고문의 선언 뒤 한 중진 의원이 “민주계는 모든 사람에게 오픈돼 있 다”고 말한 것이나 ‘민주화 세력모임’의 간사장인 서석재 의원이 최근 “이 모임은 특정주자 지지가 아닌 원점에서 출발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원론적인 표현이지만 이 고문에게는 가능성이 듬뿍 실린 메세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주계는 이 정도의 발언도 한 적이 없었다.

사실 민주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뚜렷한 대권주자를 찾을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이 고문을 주목해 왔다. 민주계의 최대 약점이며 반김 영삼 정서로 대변되는 ‘TK정서’를 끌어안으면서 민주계와 역사적 연고 나 인간적 관계가 두터운 이 고문을 대권주자로 밀 경우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 뿐 아니라 ‘킹메이커’로서 민주계의 영향력도 보장받을 수 있다 는 것이다.

물론 이런 논의가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자신에 대한 지지를 요구해온 김 덕룡 의원의 견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고문 스스로도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한보추문에 휩싸여 김 의원은 민주계 안에서조차 불가론이 대세를 이룬다. 계파를 결속시키는 중심축인 중진들도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대권도전 의사를 표시하고 나선 이 고문에게 민주계가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 민주계 관계자는 “우리가 후보를 내려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세를 몰 아서 누군가를 밀어야 하는 처지에서 이 고문의 등장은 선택의 기회를 높 였다”고 말했다.

이미 이 고문도 민주계쪽에 공을 들여왔다. 경북 칠곡의 선산을 방문해 대권도전의 운을 떼기에 앞서 김수한 국회의장과 김명윤 고문 등 민주계 원로들을 만나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한보수사로 최근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 의장의 경우 이 고문쪽에 상당한 호의를 갖고 있 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그의 접근에 앞서 민주계 안에 포진한 이 고문에 대한 지지 세력도 만만 치않다. 온산계(최형우 고문의 아호)의 경우 이 고문쪽에 상당히 접근해 있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 최 고문은 쓰러지기 직전 부산을 다녀오면서 한 측근이 이 고문이 약진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주자 “그는 우리와 같이 갈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밖에 강성재 의 원은 그에 대한 지지의사를 공식적으로 천명했고 손학규 보건복지부 장관 이나 김호일, 권철현 의원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런 여건에도 민주계가 당장 이 고문 지원에 나설 가능성은 많지 않다. 우선 민주계가 지금 이 고문에게 줄을 서는 모습이 보일 경우 당이 깨지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대표 대세론을 내세 우는 쪽을 포함해 여러 예비주자들이 ‘김심’의 편향을 앞세워 김 대통 령과 정면충돌할 수 있고 그 결과 아예 갈라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는 것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범민주계’의 논의도 여러갈래로 나뉘어 있다.


만약 김덕룡 의원이 박차고 나가면…

우선 민주계 대권주자를 자임하는 김덕룡 의원의 행보도 주목되는 변수이 다. 김 의원은 현재 독자행보를 강력히 고집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민 주계 배제론’과 ‘이수성 대안론’은 현철씨의 작품이라며 한보수사로 궁지에 몰린 중진들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이 YS와 완 전히 결별하면서까지 홀로서기를 시도할 경우 민주계가 김 의원을 도울지 는 의문이다. 그리고 독자행동하는 그를 끝까지 추종할 사람이 얼마나 될 지도 미지수다.

이밖에 김심의 소재를 알 수 없다는 점도 민주계의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 는 요인이다. 이 고문을 맘에 두고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

결국 이런 요인 때문에 당장 민주계의 입장은 애매하다. 일단 내부 결속 을 다지면서 사태의 추이를 더 지켜볼 뿐이다. 실제 중진들은 이 고문을 잠재적인 주자에 포함시켜 몸값을 최대한 높인 뒤 당분간 ‘민주화세력모 임’ 공동사무실 개소와 지도체제정비에 주력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 해도 민주계가 정서적으로 이 고문에 더 가깝다는 것 또한 변함없 는 사실이다. 민주계 일각에서는 “검찰의 정치인 수사가 마무리 된 뒤 검찰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민주계가 움직일 것”이라는 목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이 대표 흔들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대표 흔들기, 그것은 곧 민주계가 이수성 세우기를 시 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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