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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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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 이수성 고문이 드디어 대권전선 전면에 나섰다.
그를 기다리던 사람들이나 설마하며 애써 외면하던 사람들 모두가 그의 전면 등장에 경악하고 있다. 그만큼 그는 특히 다른 누구보다 ‘강한 `괴 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현재 여권의 경선 구도 역시 그의 투 망에 걸려들 부분이 반수 이상일 정도로 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고문이 공식 출마 선언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시 위를 떠난 화살처럼 이미 본격적인 후보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3월4일 총 리직 퇴임과 동시에 신한국당 상임고문에 임명된 이후 그가 걸어온 발자 취는 이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무시할 수 없는‘TK’프리미엄
3월 한달은 비교적 관망하는 듯했다. 그러나 잠복기는 길지 않았다. 잠룡 에서 승천을 위한 용틀임을 시작한 것은 3월31일 선대의 고향인 경북 칠 곡에 있는 선산을 참배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때 대선출마와 관련해 “( 대선에) 나오시는 분들이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흡족하지 못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의 문제는 남아있다”며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가능 성을 드러냈다.
조상들에 대한 고유(告由) 절차를 마친 그는 다음 순서로 `‘나라의 조상 ’을 찾아 나섰다. 효창공원 안의 백범선생 묘소를 찾은 데 이어 4월19일 엔 4�19 묘소를 참배했다. 이튿날 경기도 파주의 율곡 이이 선생 사당과 최영 장군의 묘소를 들렀다.
이 고문은 또 4월30일에는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참배할 계획이며, 5월 초 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남 아산의 현충사를 찾는다. 하나같이 그가 강조한 정치지도자의 나라에 대한 `‘헌신성’을 상징하는 ‘성지’ 들이다. 아울러 그 자신은 부정하겠지만 ‘출사표’를 던지려는 정치인들 이 한번쯤 꼭 들르는 곳들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여의도에 개인사무실을 냈으며, 5월 초에는 광화문에 캠프를 차릴 예정이다. 이 고문과 가까운 한 의원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 라며 그가 올 연말 대선 출마를 목표로 신한국당 경선에 나설 것임을 분 명히 했다.
이 고문 자신도 지난 18일 4�19 특강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경선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삼청공원에 있는 포은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라는 시비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두개의 시비 가운데 총리 시절에는 두번째 시가 마음에 끌렸으나 요즈음은 포은의 시에 더 끌리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백로’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현재 ‘혼자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는 그의 추종자들이 광범위하게 흩어진 구슬들을 꿰고 있다. 무주공산의 민주계에 대한 접촉은 물론이고 민정계쪽에도 손길을 뻗고 있다. 그의 그 물은 단순히 당내에 그치지 않고 야당에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야권 인사들의 자발적인 움직임 형식이긴 하지만 통추위의 경우 조직 차 원의 논의에 들어갔으며 국민회의나 자민련에도 그의 손때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이런 잠재력 때문에 그의 전면 부상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몰고 오고 있 다.
그의 잠재력은 우선 그가 이번 대선의 승부처이자 여권의 강력한 지역 기 반인 TK(대구 경북)의 새로운 대표주자라는 점에 기인하고 있다. 정치인 들이 지역감정을 고려해 지역성을 표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대선주자로서 확실한 표밭이 있고 없고는 천양지차이다. 대통령직선제 부활 이후 지역 기반이 없는 사람은 메이저 리그에 끼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특히 대선 승리는 영남권 주자에게 돌아갔다. 그는 여차하면 여권의 최대 무기인 지 역 대결로 몰아갈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춘 셈이다.
이 고문은 함경남도 함흥 태생인 데다가 성장지도 서울 등으로 본래 의미 의 TK는 아니었다. 그러나 선친들의 고향이 TK인데다 TK 원로그룹의 원조 격인 부친의 후광은 그를 TK 주류 속에 포함시켰다. 이 고문 본인도 총리 취임 초 야권에서 ‘TK 끌어들이기’로 비춰졌을 때 고향 함흥을 거듭 강 조했지만 지금은 거의 깨놓고 ‘TK는 내 고향’이라는 태도로 돌아섰다.
“민주계 정서는 이 고문으로 쏠린다”
두번째 잠재력은 이 고문의 탁월한 친화력에서 나온다. 나이가 한살이라 도 많은 사람은 `‘형’, 적은 사람은 `‘아우’로 부르는 그의 ‘탁 트 인’ 대인관계는 인간관계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되는 한국적 정치 판에서는 최대의 자산임에 틀림없다. 인맥면에서는 가장 늦게 정치판에 뛰어들었으면서도 가장 많은 사람을 깊이 안다는 평을 받을 정도다.
그러나 이 고문이 정치적 주목을 한몸에 받는 것은 이런 내재적인 자질보 다는 사실 여권내의 미묘한 정치적 역학관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 아무리 많고 훌륭한 인맥을 갖고 있더라도 이는 조직화되지 못한 것이 며, TK 주자라는 것도 역시 당내 경선에서는 별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 다. 때문에 이런 자질보다는 당내 최대 세력인 민주계의 대리 주자로 발 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 그의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는 최대 요인 일 것이다. 특히 대표 취임 한달여를 넘긴 이회창 대표가 아직 대세를 형 성하지 못한 채 갈수록 민주계와 대립각만 예리해지고 있어 이 고문의 존 립 기반은 상대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계가 독자적인 후보로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 한 상황에서 이 대표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대안 을 고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박찬종 고문이나 이홍구 고문도 대 상에는 꼽힐 수 있지만 민주계의 정서상 이수성 고문으로 쏠릴 수밖에 없 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이런 기미는 여러 군데서 엿보인다. 사실 이 고문은 민주계쪽에 각 별한 관심을 보여왔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 고 있는 인사도 많다. 평소부터 최형우 고문과 호형호제하던 그는 최 고 문이 쓰러진 뒤 병문안을 몇차례 했으며, 민주계 관리를 대리하고 있는 서석재 의원과도 최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이런 접근에 앞서 민주계의 양 거두들의 그에 대한 입장이 긍정적이었다. 최근엔 “이 고문을 강력히 생각하고 있다”는 말까지 흘러나을 정도이다.
야권도 그의 대권 행보에 들썩거린다. 민주당에서 떨어져나온 `‘국민통 합추진회의’는 아예 통째로 이 고문을 따르는 문제를 놓고 논의하고 있 다. 일부 반대론자도 있지만, 이 고문의 동생인 이수인 의원과 김원기 전 의원 등이 이 고문쪽으로 열린 길을 뚫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자민련의 TK출신 의원들도 상당수 이 고문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향후 접목을 검 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고문쪽도 자민련 TK 의원들과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이 고문은 그러나 5월까지는 세 모으기 작업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인 것 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의원 개개인에 대한 접촉 등은 소총 사격밖 에 더 되겠느냐”며 “우리로서는 대포를 펑펑 쏘면서 큰 물줄기를 잡아 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회창·김덕룡의 벽
그러나 이 고문의 앞길이 훤한 `‘탄탄대로’일 수는 없다. 김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현재 김 대통령이 그를 적극 밀고 있 다는 흔적은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사전교감이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그를 가로막고 있는 벽은 이회창 대표다. 대표로서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기득권을 지닌 이 대표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김 대통령이 만일 이 고문을 지원한다면 이 대표를 ‘팽’시켰다는 정치도의 적 비난과 함께 여권 분열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이 대표와 연대하고 있 는 김윤환 고문 중심의 옛 여권세력의 이탈을 부를 수도 있다.
또 민주계의 김덕룡 의원쪽도 이 고문으로서는 벽이다. 김 의원은 이미 이 고문을 겨냥해 “민주계 대안론이나 제3후보론은 김현철씨쪽이 꾸민 음모”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박찬종 고문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 의원은 민주계 안에서, 박 고문은 여권에서 각각 소수파이기 때문에 얼마 나 유의미한 반발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 고문이 신한국당 대선 후보를 거머쥐게 되면 우리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대권을 잡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전두환 전 대통령도 쿠데타 이후 최소한 1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다. 초유 의 기록을 세우는 시대의 영웅이 될지 의욕만 강한 정치 초심자에 머물지 주목된다.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