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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재벌 |
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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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일관제철소 건설 꿈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는 77년 9월 현대종합제철이라는 회사를 세운 뒤 당시 상 공부에 연산 1천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짓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했 다. 그러나 정부는 이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사업 준비에 참여 했던 현대의 한 임원은 “제철소 터를 현재 LNG 기지가 있는 경기도 평택 시 포승면 일대로 정했었다”면서 희망에 부풀었던 그 시절을 회상했다. 현대는 78년 5월 열원과 원료로 전기와 고철을 사용하는 전기로업체 인천 제철을 인수하며 제철소 건설 의지를 재확인했으나 다시 좌절을 맞봐야 했다.
당시 현대의 제철소 꿈을 정면에서 막은 사람은 박태준 전 포철회장. 박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만나 현대에 일관제철소 건설을 허용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박 회장의 주장은 결국 받아들여졌고 정부는 78년 10월 제2제철은 포항공장과 상호 보완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 로 포철이 짓도록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포철은 6년 뒤인 84년 제2제철 소를 광양에 짓는다고 공식발표했다.
김영삼 정권 출범 이후 박 회장의 몰락은 현대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기회만 엿보던 현대는 94년 7월 “철강수급 안정과 포철의 독점폐해 방지 를 위해 제3제철소를 짓겠다”며 다시 공론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 명예회장의 `‘정치외도’가 걸림돌이 됐다.
거듭된 좌절에도 현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94년 청와대와의 해빙무드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기회만 엿보던 현대는 지난해 1월 정몽구 그룹회장의 취임을 계기로 제철소 꿈을 다시 한번 끄집어냈다. 7월초 박 재윤 당시 통산부 장관의 “현대가 제철소를 건설하겠다면 제도적으로 막 을 수는 없다”는 발언이 나오자 인천제철을 통해 제철소 건설계획을 전 격 발표했다. 정몽구 회장은 10월10일 제철소 부지 후보지 중의 하나인 경남 하동 갈사만지역을 방문하는 등 직접 바람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한 승수 당시 부총리는 지난해 11월11일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석채 청와대 경제수석도 보조를 같이 했다. 통산부는 현대가 사업계획서 를 제출하기도 전에 공업발전심의회를 열어 `‘현대제철소 불가’라는 결 론을 내렸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