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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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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패스트푸드점에서 코카콜라를 마시는 프랑스인들. 코카콜라는 세계 1백97국에 거미줄 같은 판매망을 갖추고 세계정복을 꿈꾸고 있다.)
“로마가 무력과 법으로 세계를 지배했다면, 미국은 코카콜라로 세계를 지배했다.”
어쩌면 후세의 사가들은 20세기의 역사서를 이렇게 시작할지도 모른다. 유엔가입국 수보다 많은 세계 1백97개국에 이미 거미줄 같은 판매망을 갖 추고 있는 코카콜라는 실제로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처음으로 세계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원액만 공급해온’ 성공비결
1세기 전 애틀랜타의 남부 퇴역군인이던 약제사 존 팸버튼이 개발한 코카 콜라가 오늘날 이런 놀라운 성공을 거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코카콜라의 성공비결은 무엇보다도 음료업계 최초로 완제품 대신 원액만 을 공급해 제조권을 넘겨줌으로써 순식간에 거대한 유통체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물론 2차대전 당시 미군당국이 세계 곳곳에 건설한 코카콜라 생산공장을 전쟁 뒤에 넘겨받은 것도 빼놓을 수는 없다. 전쟁 당시 코카콜라의 우드러프 전 회장은 절친한 친구였던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모든 전선의 미군병사들에게 코카콜라를 무료로 공급하겠다” 고 제안했다. 아이젠하워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군 경비로 세계 60곳에 코카콜라공장을 세웠다. 전쟁이 끝나자 이 공장들은 고스란히 코카콜라의 해외생산망으로 바뀌었다. 세계 1만여개의 맥도널드 체인점에서 코카콜라 만을 팔도록 한 계약도 코카콜라의 발빠른 감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철저히 제조비법을 숨긴 채 바틀러(병입업자)에게는 원액만을 공 급하면서, 독자적인 브랜드로 세계적인 생산·판매망 확장에 나선 것 자 체가 코카콜라의 진짜 성공비결이라는 데는 별로 이견이 없다. 코카콜라 의 해외진출은 먼저 현지법인을 설립한 뒤 이를 통해 현지의 생산업자(바 틀러)를 물색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바틀러를 물색할 때 코카콜라는 세가지 기준에 따랐다고 한다. 현지시장 에 대한 이해정도, 경영능력, 자본력 및 코카콜라 경영이념과의 조화여부 다. 90년대 들어서는 `‘신속한 의사결정력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 새로 추가됐다. 물론 코카콜라사의 해외 진출은 언제나 치밀한 준비 속에 이뤄졌다. 중국진출의 예를 보자.
코카콜라가 중국시장의 문을 두들긴 것은 덩샤오핑의 경제개혁이 시작된 이듬해인 지난 79년이었다. 그러나 코카콜라는 중국에 재진출한 지 7년 만인 지난 86년에야 중국 정부로부터 상하이에 본사 직영의 콜라원액공장 을 설립하도록 허가받았다. 그동안 코카콜라는 중국시장에서 가시적인 성 과를 내는 것보다는 시설투자와 인력훈련에 중점을 두고 치밀한 준비를 해온 것이다. 지금은 전세계 판매량의 10%가 중국에서 소비되고 있다.
코카콜라는 90년대 들어서 좌절한 사회주의 나라 사람들에게 탁월한 상징 조작 능력을 보여줬다. 한때는 `미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코카콜라 를 `‘미국식 풍요와 자유의 상징’으로 팔고 나선 것이다.
“세계의 콜라공장 몽땅 넘겨라”
지난 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몰락한 동구사회주의권에 진출하기 시작한 코카콜라는 불과 3년 만에 26개의 현지공장을 세웠다. 지난해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라는 북한에 3만t 규모의 생산공장 건설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진정한 코카콜라의 세계정복은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 른다. 직접투자를 통한 생산·판매망 구축이 그것이다.
코카콜라사는 그동안 해외에 현지생산공장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써왔다. 하나는 코카콜라가 전혀 자본참여를 하지 않고 현지 공장을 완전한 독립법인체로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분을 갖고 참 여하는 방식이다.
물론 독립법인체 방식은 해당 정부의 정책상 지분참여가 불가능하거나 지 분참여시 오히려 사업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채택됐다.
코카콜라는 80년대 중반부터 지분참여 방식으로 돌아섰다. 자본투자와 동 시에 본사가 직간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현지 바틀러의 영업능력을 강화 시킬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특히 해외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거나 현지시장개척이 여의치 않을 때 이 방식이 주로 사용됐다.
코카콜라는 지분참여와 함께 바틀러를 위해 공장설계와 공정·마케팅·품 질관리를 담당하고 종업원 교육을 실시한다. 물론 바틀러의 수익유지에도 세심히 배려한다. 코카콜라와 손잡으면 수익이 보장된다는 믿음을 바틀러 에게 심어주고, 투자이익이 현지에 어느 정도 남기 때문에 수익의 해외유 출에 대한 투자국 국민들의 반발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코카콜라의 해외시장 전략은 90년대 들어 다시 한번 바뀌고 있다. 코카콜라사는 애초부터 어떤 회사를 한번 바틀러로 선정했다고 해서 계속 바틀러로 남게 하지는 않는다. 코카콜라는 바틀러와 5~10년 단위로 계약 을 맺으면서 영업실적이 좋지 않을 때는 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것이다. 코카콜라사는 이제 현지 바틀러를 인수해 직접 생산·판매망을 장악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각국에서 해외자본의 직접투자에 대한 규 제가 풀리고 있는 점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여러개로 나뉘어 있 는 현지 바틀러로는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도 작용했 다.
코카콜라사는 현지 바틀러와의 원액공급계약을 갱신하는 대신 이제 “직 접 생산과 판매를 할 테니 공장을 넘겨달라”고 요청한다. 코카콜라사가 원액공급을 중단해버리면 현지 바틀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약점을 이 용한 것이다. 코카콜라는 이미 영국과 호주에서 이런 작업을 비교적 성공 리에 끝냈다.
‘불매운동 우려’일본선 일단 포기
그러나 코카콜라의 직접투자전략은 현지 바틀러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바틀러로서는 수십년간 일궈온, 적절한 수익이 보장되는 회사를 굳 이 팔아넘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지난 94년 일본의 현지 바틀러 17개사를 통합해 직접 생산판 매를 꾀하려 했으나 바틀러들의 반발에 부닥쳐 결국 무산됐다. 바틀러들 이 불매운동 등으로 맞설 경우 입게될 타격을 우려해 일단 포기한 것이다 .
그러나 코카콜라사가 당장은 바틀러들의 반발에 부닥쳐 이같은 계획을 미 뤘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세계각국의 생산·판매망을 직접 인수하는 방향 으로 나아갈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