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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01일 제 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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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월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범양식품 노동자들의 코카콜라 직수입 반대 시위. 콜라원액 재고가 바닥나는 5월이 되면 이들은 일거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코카콜라사가 범양식품을 헐값에 뺏으려 하고 있다.”
지난 4월18일 오전 서울 광화문빌딩 앞에서는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 6백 여명이 손에손에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25 년 동안 오직 코카콜라만을 제조·판매해온 대구 범양식품 소속 노동자들 .
이틀 동안 계속된 시위를 이끄느라 목이 쇨 대로 쇠어버린 최종직(38) 노 조위원장은 “국내 음료수의 상권을 미국이 완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시 민들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코카콜라 세계지배전략의 완결판
이들은 요즘 콜라를 만드는 대신 공장설비를 정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한국코카콜라사가 지난 4월1일부터 콜라원액 공급을 전면 중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원액이 바닥나는 5월이 되면 이들은 일거리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다국적기업의 대명사 코카콜라가 통합직영체제구축이라는 칼을 뽑아들고 나선 데서 비롯된 일이다.
그동안 두산음료(서울·경기·강원), 범양식품(대구·경북·충청), 우성 식품(부산·경남), 호남식품(전라·제주) 등 4개 바틀러(원액을 들여와 제조·판매하는 회사)에 제조와 판매를 맡겨오던 코카콜라사는 지난 3월 “앞으로 5년 동안 4억달러(3천5백억원)를 투자해 직접 생산시설을 갖추 겠다”고 선언했다.
코카콜라사는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미국 본사에서 자본금 5천만원 전액 을 출자해 `‘한국코카콜라보틀링’사를 새로 설립한 뒤, 국내 바틀러와 생산시설 및 인력을 인수하기 위한 물밑협상을 벌여왔다.
코카콜라사는 이미 지난 3월7일 4개의 바틀러 가운데 우성식품과 호남식 품을 각각 1천1백억원과 4백85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코카콜라는 또 두산음료와도 인수협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코카콜라의 이번 바틀러 통합작업이 무엇보다도 지난 90년 초 코카콜라사의 또다른 브랜드인 `‘스프라이트’가 국내 바틀러간의 불협 화음으로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시장진입에 실패한 것이 크게 작용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것일 뿐, 본질적인 면에서는 다국적기업 코카콜라 가 그동안 꿈꿔온 해외시장지배전략의 `‘완결판’을 드러낸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달콤한 원액을 나눠주듯 현지인에게 부분 적으로 이익을 나눠줘 가며 일단 접근한 뒤, 시장개척이 완료되면 기회를 보아 헐값에 공장시설과 시장을 인수해나가는 코카콜라사의 전형적인 수 법이라는 것이다.
이제 코카콜라는 한국에서도 현지바틀러에 수익의 일부를 굳이 나눠줄 필 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일까?
코카콜라는 계약을 갱신할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 인수협상에서도 원 액공급 중단이라는 무기를 들고 나섰다. 우성식품과 호남식품이 공장인수 요구에 결국 손을 들고 만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범양식품의 저항 은 거의 필사적이다.
범양식품이 코카콜라사와 처음 원액공급계약을 맺은 것은 지난 74년 5월 이다. 코카콜라는 지난 92년까지 2차례에 걸쳐 10년짜리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제3차계약은 5년으로 계약기간을 줄였고, 생산통합을 추진하는 조 건으로 6개월, 그리고 매각협의를 벌인다는 조건으로 지난해 12월부터 3 월 말까지 4개월이 연장된 것이 끝이었다. 직영으로 나가기 위해 계약기 간을 점차 줄여온 것이다.
계약내용, 일방적이었다
놀라운 것은 두 회사간의 계약내용이다.
“바틀러인 범양은 계약기간중 코카콜라 외에 다른 음료는 일체 생산, 판 매, 취급할 수 없다. 바틀러는 코카콜라가 정하는 판매 성장목표를 최대 한 달성해야 한다. 원액의 가격과 공급조건은 전적으로 코카콜라가 결정 하고 또 언제라도 변경할 수 있다. 만약 이에 응하지 않으면 원액공급계 약은 해지된다. 계약은 기간만료시에 자동종료되며 바틀러는 이의 연장을 요청할 수 없다….”
범양의 한 관계자는 “이런 내용의 계약은 코카콜라사의 막강한 힘에 밀 려 사실상 일방적으로 작성, 통보된 것”이라며 “바틀러의 이의제기는 금기시돼 있고, 단지 서명만 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코카콜라사는 이번에도 바틀러를 이런 일방적인 계약으로 묶어놓고 인수협상의 테이블 로 나설 수밖에 없도록 사실상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번 인수협상에서 코카콜라사가 제시한 범양식품의 인수가격은 모두 5백 억원. 범양쪽은 이에 대해 “신탄진 생산공장만 해도 최소한 자산가치가 2천3백억원은 된다”며 코카콜라사가 헐값에 공장을 뺏으려 한다고 비난 한다.
범양쪽은 또 “콜라 원액공급계약을 해지하더라도 다른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이행기간을 2~3년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범양은 “코 카콜라의 사전승인없이는 다른 식품을 제조 판매할 수 없다”는 계약에 막혀 그동안 오직 코카콜라 한가지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상은 결국 결렬됐고, 코카콜라사는 지난 4월1일부터 범양식품에 대해 콜라원액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범양쪽은 이에 맞서 “다국적기업인 코카콜라가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해 국내기업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며 지난 3월31일 코카콜라를 공정거래 위에 제소하는 한편, 지난 4월8일에는 대구지법에 `원액공급 계속을 요구 하는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이에 대해 코카콜라사는 “범양식품의 공장가격이 우성과 호남의 모든 자 산 영업권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또 “5년 전부터 원액공급중단 및 직영판매를 공식적으로 예고해왔고, 지 난해 재계약을 하면서도 다시 계약을 갱신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준 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계약에 의한 법적책 임을 물론이고, 상도의상으로도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범양은 그러나 쉽게 물러날 태세가 아니다. 범양쪽은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코카콜라 불매운동에도 나설 방침임을 내비치고 있다.
두산음료도 그동안 맥주와 함께 두산음료의 얼굴이 돼왔던 코카콜라를 넘 겨주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원액공급을 무기로 코카 콜라가 인수를 강력히 요청할 경우 버티기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 다. 두산쪽으로서도 내색은 않지만 범양을 응원하는 형국인 셈이다.
펩시콜라, 공세적으로 나설 수도
결국 코카콜라로서는 바틀러 통합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경쟁사들에게 시 장을 빼앗길 위험을 얼마만큼 감수할 수 있느냐에 이번 통합작업의 성패 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5월을 넘어서면 국내 시장 가운데 21% 를 차지하고 있는 범양식품의 관할권에서 코카콜라의 판매가 중단될 가능 성이 크다. 그럴 경우 범양뿐 아니라 코카콜라로서도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 게다가 불매운동이 벌어질 경우 장기적인 타격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경쟁사인 롯데칠성쪽은 코카콜라의 통합작업과 관련해 “펩시콜라의 시장 확대보다는 해태음료의 `‘쿨사이다’가 한동안 난공불락이던 칠성사이다 에 만만찮은 도전세력으로 등장한 만큼, 칠성사이다의 수성에 더 역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범양식품과 코카콜라의 싸움이 장기전으로 치 달을 경우 펩시가 공세적으로 나서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코카콜라의 바틀러 통합작업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그 해답은 어쩌면 코 카콜라의 직접상륙에 대해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달려있는지 도 모른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