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난파선! 한보청문회

(사진/한보청문회 특위위원을 사퇴한 이신범(왼쪽) 김재천 의원. 두 의원의 특위위원직 사퇴는 결과적으로 청문회의 파행을 초래했고 국민 불신을 가중시켰다.)

한보청문회가 난파 직전이다.

일부 특위위원들이 도중에 사퇴서를 제출하고 잠적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서 신한국당에서는 한보청문회로 내분까지 일어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 서도 청문회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등 극단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당리당략 앞세워 ‘의원청문회’로 변질

초기부터 불안한 출발은 보이던 한보청문회는 신한국당 특위위원인 이신 범 의원과 김재천 의원이 돌연 지난 4월10일 특위위원직을 사퇴하면서 엉 뚱한 방향으로 파문이 번져갔다. 두 의원의 의원직 사퇴배경은 서로 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의원의 사퇴에 대해서는 이 의원이 그동안 한보사건의 진상규명보다는 야당의원들의 비리의혹을 제기하는 등 돌격대 구실을 맡아왔다는 점에서 별로 탐탁치 않게 보는 여론이 많다. 김 의원의 경우는 그동안 나름대로 성실히 청문회 활동을 펼쳐왔다는 점에서 당내에서는 의외로 받아들여지 고 있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두 의원의 특위위원직 사퇴는 공인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판이 많다. 두 의원의 특위위원직 사퇴는 결 과적으로 청문회의 파행을 초래했고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켰다.

그뿐 아니라 지난 4월7일 정태수 한보총회장을 시작으로 한 증인대상 청 문회가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한보청문회에 대한 기대는 실망감 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증인들의 뻔뻔스런 증언태도와 의원들의 핵심을 벗어난 질문 등으로 한보사건의 진상규명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된 것 이다. 사실 진실규명보다는 ‘때 벗기기’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지우 기 힘든 청문회였다.

청문회의 이런 파행은 무엇보다 증인들의 증언거부와 불성실한 답변자세 에서 비롯됐다. 정태수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증인들이 중요한 질문에 대 해 “모른다”“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오리발 작전으로 나오기 일쑤였 다. 정씨의 경우에는 정치인에 대한 자금지원과 관련해서는 오전에는 사 실상 시인하는 답변을 했다가 오후에는 “그런 적 없다”며 말을 바꾸기 도 했다. 증인이 자기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증언을 번복하며 의원과 국 민을 농락한 셈이다.

청문회에 임하는 의원들의 자세에도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또 의원들의 당리당략적 차원의 접근은 한보청문회를 ‘의원청문회’로 변질시켜 버렸다. 한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보다는 상대당 의원이나 상 대당을 흠집내는 데 질문의 초점을 맞춰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한보사건의 본질이 5조원에 이르는 대출과정의 배후 규명인데도 이들의 상대방 흠집내기로 급기야 검찰의 사건수사가 정치권 의 깃털뽑기로 전개되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자충을 범했다.

또한 의원들이 자기당 의원들의 혐의 벗기기용 ‘대리인 발언’을 일삼아 실망감을 더했다. 특히 신한국당의 민주계 의원들은 정태수씨한테서 김덕 룡 의원이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벗겨주려다 오히려 혹을 붙인 꼴이 되기 도 했다. 정태수씨와 김종국 전 한보재정본부장이 오히려 김 의원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줬기 때문이다.

자기 당 감싸다가 되려 혹 붙이기도

의원들의 질문 가운데는 인신모독과 윽박지르기식 발언도 적지 않았다. 의원들의 준비가 부족하니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접근 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의원들만 탓할 수는 없다.

제도적인 뒷받침도 없이 의원들에게 지나친 기대만 했기 때문이다. 여야 는 현재 청문회의 제도적 측면과 운영방안 등을 보완하는 방안을 강구하 고 있다. 국민회의 김민석 의원은 “청문회에 참여해본 결과 문제점이 상 당히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번 기회에 청문회에 대한 전반적인 개 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청문회 개선사안으 로 △수사 및 금융관련자료의 열람허용 △특위위원 숫자를 줄여 충분한 질의시간 보장 등을 지적했다.

결국 청문회 스타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위원석에 앉았던 여야의원들 사 이에는 벌써부터 스타는커녕 흙탕물만 뒤집어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쏟아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