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장애는 사형선고가 아닙니다

약사 유아무개(26)씨는 지난해 5월 첫아기를 가졌다. “축하합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그저 가슴이 뛰었다. 곧이어 입덧이라는 고통이 시작됐지만, 역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속이 메스꺼워 차를 타고 외출하기도 힘 들고, 밥을 하다가도 구토증이 도지는 힘겨운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임신 2개월째로 접어들면서는 감기 기운까지 겹쳐 한달 가까이 아랫목 신세를 졌다. 그래도 아기에게 해가 될까봐 약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산부인과 에서 권하는 온갖 검사도 날짜를 맞춰 꼬박꼬박 다했다.

선천성 장애아 1년에 2만8천여명 출생

아기는 제왕절개수술로 낳았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는 그날로 아기와 영영 헤어져야 했다. 아기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몸조리를 하는 동안 남편도 아기 얘기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기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었다는 걸 확인한 것은 퇴원하던 날이었다. 아기는 머리가 정상보다 큰 대두아라는 선천성 장애아였고, 세상에서 5분을 살다 죽었다고 했다. “ 그때 감기가 풍진이었나 봅니다. 임신 초기에 태아가 풍진바이러스에 감 염되면, 25~50%가 기형이 된다더군요.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선천성 장애아를 낳는다는 것은 부모로서는 천형과도 같은 아픔이다. 부 모치고 자식이 건강하고 예쁘게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임신을 안 순간부터 힘든 시간을 감내한다. 그러나 현 실은 그런 부모의 꿈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의학계에선 신생아 1백명 가 운데 4명 가까이가 크고 작은 선천성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것으로 추정 한다. 1년에 신생아가 70만명 정도 태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해마다 2만8 천명의 아기가 장애의 멍에를 쓰고 세상에 나온다는 얘기다.

선천성 장애의 종류도 갖가지다. 신생아 1천명당 뇌 이상은 10명, 심장 이상은 8명, 콩팥 이상은 4명, 사지 이상은 2명, 정신박약을 수반하는 다 운증후군은 1명 꼴로 태어난다고 한다. 손가락이 6개이거나, 모두 붙어있 는 따위의 가벼운 이상까지 합치면 장애를 피하기가 만만찮다. 더욱이 최 근 들어선 이런 선천성 장애의 발생빈도가 오히려 늘고 있다. 각종 환경 오염과 공해, 약물 따위가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선천성 장애를 낳는 가장 큰 요인은 뭐니뭐니 해도 유전질환이다. 유전질 환은 곧 선천성 장애로 통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의학계에 보고된 선천성 장애 발생요인을 보면, 유전자 이상으로 인한 경우가 전체의 27.5%를 차 지한다(표 참조). 아직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경우가 60%나 되지만, 이 역시 유전자 이상과 조금씩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교사 김아무개(29)씨는 바로 그 유전자 이상 때문에, 두번이나 아기를 유 산하고서야 건강한 딸을 얻었다. 첫아기는 임신 37주 만에 맥없이 숨쉬기 를 멈췄다. 의사의 권유로 아기를 부검해 보니, 콩팥에 혹이 있는 콩팥낭 종이었다. 열달을 채워 낳는다 해도 자라면서 100% 사망하는 무서운 장애 였다. 두번째 아기도 마찬가지였다. 임신 29주 만에 스러졌다. 역시 같은 이유였다. 김씨는 “한동안 얼굴도 못본 아기 모습이 눈에 밟혀 무척 괴 로웠다”고 고백한다.

김씨는 사실 건강한 아기를 낳을 확률이 75%에 불과했다. 김씨 부부는 겉 보기엔 멀쩡했으나, 모두 비정상적인 유전인자를 갖고 있었다. “담당의 사 말이 부모가 그럴 경우 25%의 확률로 장애아가 태어난다고 하더군요. 50%는 보인자로, 나머지 25%는 정상아로 태어난다는 거죠. 세번째 밴 아 기는 다행히 50%쪽에 있었습니다.”

유전질환이 선천성 장애 주요 원인

유전질환으로 인한 선천성 장애는 크게 다인자성 유전질환과 단일성 유전 질환으로 나뉜다. 다인자성 유전질환은 유전인자와 환경요인이 뒤섞여 발 생한다. 재발률이 높아 첫아기에게 나타나면, 둘째아기도 피하기 힘들다. 언청이, 선천성 심장병, 무뇌아 등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단일 성 유전질환은 순전히 유전자 이상으로 생기는 장애를 가리킨다. 코끼리 거죽 같은 피부나 곱사병, 콩팥낭종, 혈우병, 근육위축증, 자폐증 등을 낳는다고 한다.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선천성 장애의 대표적인 경우가 다운증후군이다. 이 장애는 신생아 7백명에 1명꼴로 나타난다. 해마다 1천명 정도의 아이 가 다운중후군을 안고 태어나는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눈이 작고, 밑으 로 약간 처져 있으며, 코는 납작하고, 귀가 아래로 처진 모습을 띤다. 정 신박약이나 지능 저하, 선천성 심장병을 동반하는 게 일반적이다. 부모가 건강하더라도, 임산부의 나이가 많으면 세포분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기기도 한다.

임산부가 질병을 앓고 있거나, 풍진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아기에게 장애를 일으킬 수가 있다. 특히 당뇨병을 앓고 있는 임산부에게서 장애아 가 태어날 확률은 건강한 임산부의 경우보다 5배나 높다고 한다. 임산부 가 약물이나 방사선에 지나치게 노출돼도 선천성 장애아를 낳을 공산이 있다. 때문에 의학계에서는 임신 12주 이전에는 약물 복용 금지를 권한다 .

최근에는 술과 담배의 유해성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알코올중독에 걸 린 임산부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기형 또는 정서불안 증상을 보였다는 보 고는 많다. 의학계에선 이를 태아성 알코올증후군이라 부른다. 태아의 뇌 에 알코올이 쌓이면 머리가 정상보다 작은 소두아나 정신박약아가 태어난 다고 한다. 담배는 좀더 위험하다. 임산부가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태 아의 혈관을 수축시켜 산소부족 현상을 일으킨다. 유산의 확률이 높아지 는 것이다. 담배는 아기가 일곱살이 될 때까지 악영향을 끼쳐, 읽고 쓰고 계산하는 능력을 해친다고 한다.

의사들은 선천성 장애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기진단 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임신 중 적어도 13번은 전 문의를 찾으라고 당부한다. 실제 효소 부족으로 대사되지 않은 물질이 뇌 에 쌓여 신생아에게 정신박약을 유발하는 질환은 간단한 검사로 예방할 수 있다. 당뇨병이나 약물복용으로 고민하는 임산부도, 식이요법과 치료 제 투입 등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기형아 진단 전문의 김창규(42)씨는 “태아 시기에 체계적인 검사를 통해 상당수의 장애를 극 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병원에서는 임산부의 상태에 따라 염색체 검사를 비롯해, 혈청 검사 , 융모막 검사, 양수 검사, 초음파 검사 등의 방법으로 태아의 선천성 장 애를 진단한다. 진단의 방법과 내용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 이를 이용하 는 임산부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출산 이후에는 선천성 대사 검사를 통해 정신박약 가능성을 찾아내 치료하기도 한다.

60% 정도 장애 원인조차 몰라

하지만 조기진단과 조기치료로 모든 선천성 장애를 극복할 수는 없다. 선 천성 장애의 60%는 아직 그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병원에 선 장애아 진단을 내렸으나, 정작 낳고 보니 정상아인 경우도 많다. 이럴 경우 출산을 결심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부모의 마음고생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의사들도 “오진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털어 놓는다. 더욱이 이는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 선천성 장애아 진단은 우리 현실에서 대개 낙태로 이어진다. 의사의 잘못된 진단이 무고한 생명을 앗 아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치료로 옮아간다. 우리는 아직도 이 런저런 이유로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의 멍에를 쓴 아이들에게 관대하지 않 다. 어떤 부모는 그런 자식을 숨기고 부끄러워 한다. 심지어 거리에 내버 리기도 한다. 재활을 돕는 사회적 장치도 여전히 미약하다. 복지나 고용 의 혜택도 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아 이들에겐 이 사회의 ‘태생적 장애’가 더 견디기 힘든지도 모른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