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1997년04월27일 제 154호

과학은 이상의 노예인가

김 환 석

국민대 사회학과 조교수(과학기술사회학), 영국 런던대 임페리얼칼리지 박사,
과학기술과 사회(STS)연구회 회원, 저서 `선진국의 기술영향평가제도'

지난 3월 말 미국 샌디에이고 근교에서 ‘천국의 문’(Heaven's Gate)이 라 불리는 신흥종교 신자가 39명(남자 18명, 여자 21명)이나 극약을 먹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모두 인터넷상에서 홈페 이지 설계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하이어소스’(Higher Source)의 컴퓨 터전문가였다는 점이다. 이들이 자살한 이유는 헤일-봅 혜성 뒤에 따라온 UFO가 자신들을 외계의 천국으로 데려가 준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 려졌다.

사회적 소외 반영해 육체를 벗었다

물론 혜성 뒤에 따라온 UFO는 없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이 사건을 종말론 혹은 신종 UFO종교를 믿는 광신도들의 어이없는 짓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같은 인기 드라마 한편을 보고난 것처럼 서서히 잊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사건을 대할 때 흔히 사람들이나 매스컴이 취 하는 시각, 즉 “그 집단이 믿었던 신념과 그들이 택한 행위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하는 도덕적 판단의 시각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해보고 싶다 . 대신 그들의 신념과 행위가 나타나게 된 배경과 동기, 이 사건을 받아 들이는 사회의 메커니즘, 그리고 이것이 남길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 차분 히 생각해보도록 촉구하고 싶다. 그래야만 이 사건의 전체적 의미가 드러 나며 이에 대한 바람직한 사회적 대응도 모색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우선 이들은 현존의 사회와 기성종교에 대해서 극도의 불신과 혐오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들의 선언문에 따르면, 현존의 ‘인간왕국’에서는 돈 , 재산소유, 국가 및 가족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법이 존재하고 이러한 관념과 법을 옹호하도록 종교가 왜곡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왕국의 시대 는 종말에 다다랐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인간보다 높은 진화수준의 영 적 존재가 살며 ‘인간왕국’은 신의 법이 지배하는 진짜 천국인 ‘하늘 왕국’으로 대체된다고 믿는다. 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혼을 담 는 그릇에 불과한 육체를 ‘벗고’ 모든 인간포유류적 행태(성, 인간관계 , 탐닉, 습관 등)를 떨쳐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천국에 서 보낸 화신인 ‘대표자’의 인도에 따라 인간왕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 이다. 이러한 생각은 단순한 신비주의라기보다는 물질주의적이고 이기적 인 현 사회에서 이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소외감을 느꼈는가를 잘 반영한 다고 하겠다.

그럼 이들의 행위를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였던가? 살아 있을 때에는 흔한 사이비 종교집단이겠거니 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집단자살이 벌어지 자 상업주의적인 매스컴이 달려들어 대중적인 흥밋거리의 뉴스상품으로, 책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겠다고 난리법석이다. 미디어자본에 큰 이 윤을 남겨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을 빌미로 기성 미디어가 인터넷에 대한 공격을 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터넷에 시청자를 빼앗겨온 텔레비전방송은 앞장서서 인터넷 남용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사실 배척받는 비주류 종 교집단이 자신들의 교리를 설파하고, 또 남의 이목없이 생계를 영위할 수 단으로서 인터넷만큼 적당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인터넷을 비 판하는 기성 미디어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 왔던가?

반과학 내세우며 무비판적 과학 수용

이 사건이 남길 사회적 결과는 무엇인가? 집단자살이라는 단호하고 충격 적인 행위에도 그들이 그렇게 절망했던 현실을 바꾸는 데는 별 영향을 못 미칠 것이다. 그들은 물질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왕국’을 만드는 데 기존의 과학문명이 얼마나 기여하였는지 깊이 생각지 않고, 영적이고 생 태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는 자신의 반과학적 교리를 알리는, 그리고 생계 를 구하는 수단으로서 무비판적으로 과학기술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상적인 세계를 원했지만 그를 위해선 과학기술이 인간적인 것으로 변해 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그들은 결국 기존의 과학문명의 힘을 확 장시키는 데 무의식적으로 기여한 셈이 된다. 여기에 그들의 비극이 존재 한다. 만일 그들의 궁극적인 동기가 공동체적인 인간관계와 사회에 대한 갈구였다면, 그것은 과학문명의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았을까?